• 한국문화사
  • 08권 화폐와 경제 활동의 이중주
  • 제4장 일제 강점기의 화폐
  • 1. 식민지 중앙은행 설립과 은행권 발행 제도
  • 제일은행에서 식민지 중앙은행으로
정병욱

1909년 11월 일본 정부와 통감부는 식민지 중앙은행으로 한국은행을 설립하여 제일은행의 중앙은행 업무를 인수하게 하였다. 왜 제일은행 대신 식민지 중앙은행이 필요하였을까? 당시 통감부가 제일은행에 제시했던 「한국 중앙 금융 기관 설치안」을 보면 “제일은행의 업무에 대하여 정부는 엄밀한 감독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정부는 국채의 모집, 기타 재정 운용에서 중앙은행의 자력(資力)에 의존할 경우가 매우 많은데…… 제일은행은 일개 사립 은행으로 주로 자기 이익을 도모한다.” 하였다.139) 朝鮮銀行史硏究會 編, 『朝鮮銀行史』, 東洋經濟新報社, 1987, p.901. 일본 정부나 통감부는 자신이 장악한 중앙은행의 신용 창조를 통해 식민 지배 비용을 조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 식민 지배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었다. 중상주의 시대만 해도 식민 지배의 본질은 약탈이었으나, 산업 혁명 이후 식민 지배는 안정적이고 항구적인 수탈이 목적이었다. 식민지를 원료 공급지, 상품 시장, 자본 투자처로 재편하기 위해서는 개발이 필요하였다.

일본 정부는 통제 가능한 발권 기관으로서 일본은행의 지점과 별도의 특수 은행 설립 두 가지를 검토하다가 최종적으로 후자를 선택하였다. 은행업이 발달하지 않는 식민지에서는 일반 은행 업무를 겸영할 특수 은행이 필 요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한국에는 일본은행권과 다른 별도의 은행권이 발행될 필요가 있었다. 당시 한국은행 설립을 주도한 탁지부 차관 아라이 겐타로(荒川賢太郞)는 일본 제국 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140) 日本銀行調査局 編, 『日本金融史資料 : 明治大正篇』 제15권, 1957, pp.1358∼1359 : 윤석범 외, 『한국 근대 금융사 연구』, 연세대 경제연구소, 1996, pp.138∼139 재인용).

<표> 조선은행권 발행 제도의 변천
연월 근거법 태환 정화 준비 발행 보증 준비 발행 제한 외
발행세
감독기관
(제한 외
발행 인가)
준비 물건 발행 조건 준비 물건 한도액
1906. 3 제일은행권 및
그 발행 준비취급순서
일본 통화 일은태환권, 금화, 금지금, 은지금
(단 은지금은 총액의 4분의 1 초과 불가
준비 물건과 동액 발행 국·공채, 상업 어음, 기타 확실한 증권 1000만 원 연 5% 이상 통감
1909. 7 한국은행 조례
(법률 22호)
금화, 일은태환권 2000만 원
1911. 3 조선은행법
(법률 48호)
3000만 원 조선 총독
1918. 4 조선은행법
(법률 28호)
5000만 원
1924. 7 조선은행법
(법률 21호)
대장 대신
1935. 3 조선은행법
(법률 1호)
연 3% 이상
1937. 8 조선은행법
(법률 63호)
1억 원
1939. 4 조선은행법
(법률 63호)
1.6억 원
1941. 3 조선은행법 및
대만은행법의
임시 특례에
관한 법률
(법률 15호)
✽최고 발행 한도제
준비 물건 : 금, 지금은, 일은권, 일은 예치금, 국채, 기타 확실한 증권, 상업 어음, 총발행액에 대한 정화준비율은 대장 대신이 결정.
최고 발행 한도 : 대장 대신이 매년 결정 통고. 1941년 6.3억 원, 1942년 7.2억 원.
1942. 2 일본은행법
(법률 67호)
일본은행권
✽배영목, 『식민지 조선의 통화 금융에 관한 연구』, 서울 대학교 경제학과 박사 학위 논문, 1990, 29쪽, 59쪽 ; 오두환, 『한국 근대 화폐사』, 한국 연구원, 1991, 306쪽.

일본은행은 일본 금융 기관의 중추 기관으로서 태환권의 기초를 공고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조선은 경제 상태가 안정되지도 않았고 특히 만주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유사시 경제 상태의 동요를 면치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에 일본은행 태환권을 유통시킨다면 그 기초에 동요를 주지 않을까…… 일본은행 쪽에서 보더라도 조선에 특수 은행을 설립하여 따로 태환권을 발행하는 것이 전체를 위해 안전할 것이란 이유도 있고 해서 특별히 한국은행을 설립한 것입니다.

일종의 ‘식민지 은행 장벽론’이다. 일본의 대장 대신으로 금본위제를 실시하였던 마츠카타 마사요시(松方正義)도 조선은행 이사인 미시마 타로(三島太郞)에게 “한국과 대만은 지금 일본이 일단 정치를 펴고 있으나 언제 어느 때 무슨 사변이 일어날지 모른다. 만일의 경우 일본에까지 전 경제가 파탄에 이르게 되면 큰일이다. 그러니까 국가 백년대계의 견지에서 우선 장벽을 쳐서 일본과 분리하여 별개로 해나가야 한다.”고 하였다.141) 多田井喜生, 신영길 옮김, 『돈의 전쟁』 상, 지선당, 1998(『大陸に渡つた円の興亡』 (上), 東洋經濟新報社, 1997),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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