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8권 화폐와 경제 활동의 이중주
  • 제4장 일제 강점기의 화폐
  • 2. 은행권 발행과 도안
  • 조선은행권, 지배와 저항의 타협으로서 노인상
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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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한국은행권-1910년에 발행된 1원권(앞면)
각종 한국은행권-1910년에 발행된 1원권(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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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 발행된 1원권(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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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에 발행된 5원권(앞면)
1911년에 발행된 5원권(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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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에 발행된 5원권(뒷면)
1911년에 발행된 5원권(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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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에 발행된 10원권(앞면)
1911년에 발행된 10원권(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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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에 발행된 10원권(뒷면)
1911년에 발행된 10원권(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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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조선은행은 은행권 발행 준비가 충분치 않아 우선 제일은행권 및 한국은행권을 조선은행권으로 간주하여 유통시키고 은행권의 제조를 일본 내각 인쇄국에 발주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자 조선 총독부 인쇄국에 은행권 제조를 의뢰하여 1914년 9월 ‘조선은행’을 기명한 100원권이 발행되었다. 이듬해 8월과 11월에 1원권, 5원권 10원권이 발행됨으로 써 기존 한국은행권과 일본은행권은 회수되었다. 당시 조선은행권은 주로 조선 총독부 직영의 공장에서 제조되었으며 일부는 일본 내각 인쇄국에서 일본은행권과 함께 제조된 것도 있어, 네 권종은 조선 총독부가 제조한 것과 일본 내각 인쇄국이 제조한 것으로 구분된다. 표면 하단에 전자는 ‘조선 총독부 인쇄’ 후자는 ‘대일본 제국 정부 내각 인쇄국 제조’라는 명판을 넣었다. 기호의 괄호 모양도 조선 총독부는 ( )(아래 그림 참조), 일본 내각 인쇄국은 { }로 표시하였으며 아라비아 숫자 자형도 상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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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총독부 직영 공장에서 제조된 조선은행권에 표시된 괄호 모양
조선 총독부 직영 공장에서 제조된 조선은행권에 표시된 괄호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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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행권 100원권(앞면)
조선은행권 100원권(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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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행권 100원권(뒷면)
조선은행권 100원권(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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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행권의 도안을 보면 100원권에는 대흑천상(大黑天像)이, 다른 권종에는 노인상이 인쇄되었다. 대흑천상은 불교에서 삼보(三寶, 불·법·승)를 옹호하고 음식을 넉넉하게 한다는 신으로, 일본 민간에서 발전·번영·건강을 기원하는 칠복신(七福神) 중 하나이다. 일본 최초의 지폐라고 하는 17세기 ‘야마다하가키(山田羽書)’에 그려져 있으며, 1885∼1886년 일본은행이 최초로 발행한 은행권들에도 장식된 일본 지폐를 상징하는 도안이다.

노인상의 정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우선은 김홍집 내각 때 외무 대신이었고 일제 강점 때 자작의 작위를 받은 김윤식(金允植, 1835∼1922)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의문이 있다. 하나는 은행권 발행 당시 그는 생존 인물이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친일 인맥을 대표해서 선정되었다 하더라도 그는 1919년 3·1 운동을 지지하여 작위를 박탈당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고대 일본의 무장이자 대신인 타케우치노 스쿠네 (武內宿禰)라는 설도 있는데, 일부 일본인이 선호하는 주장이다. 그는 신공 황후(神功皇后)를 도와 야마토 조정이 일본을 통일하고 한반도의 삼한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이 인물은 이미 1899년에 발행된 일본은행 1엔권과 5엔권에 사용되었으며, 1916년에도 5엔권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긴 수염을 제외하면 그다지 닮지 않았다.146) 김윤식설은 한국조폐공사 홈페이지(http://museum.komsco.com), 타케우치노설은 多田井喜生, 『朝鮮銀行』, PHP연구소, 2002, p.7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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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상
노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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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견해로는 장수 노인상이라는 설이 있다.147)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홈페이지(http://museum.bok.or.kr) 및 최호진, 『한국화폐小史』, 서문당, 1974 참조. 장수 노인 역시 대흑천상과 함께 일본의 칠복신 중의 하나인데, 일본은행권에 사용된 적은 없었다. 조선은행권의 대흑천상이 일본풍 그대로 도안되었다면 이 인물은 갓을 쓴 한국인상이다. 앞의 두 설의 인물도 모두 장수하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김윤식은 87세까지 살았으며, 타케우치노는 284세를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볼 때 조선은행권의 인물은 한국인 장수 노인상으로 추측된다. 물론 김윤식을 장수 노인의 모델로 삼았을 수는 있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 화폐에는 해당 지역 노인상이 도안되는 경우가 많았다.

은행권의 도안은 보통 문화와 전통 등 해당 국가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소재가 채택된다. 곧, 지폐는 그 나라의 얼굴이자 국민 정서의 표상이며, 문화 수준의 척도라 할 수 있다. 인물 초상이 도안 소재로 자주 사용되는 이유는 다른 소재에 비해 일반인이 위·변조를 쉽게 판별할 수 있기 때문인데, 그 바탕에는 도안된 인물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심이 깔려 있다. 일본에서 1910년대 발행된 지폐 속의 인물들(菅原道眞, 和氣淸麻呂, 武內宿禰)은 모두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일본 천황을 보필하였다고 전해지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식민지에서 발행되는 지폐의 초상은 어떤 인물이 적당할까? 적 어도 다음 두 가지는 충족시켜야 했을 것이다. 하나는 너무 식민지 피지배민의 반감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경제 침략에 앞장섰던 제일은행장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적합하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그렇다고 해서 식민지 피지배민을 통합시키거나 민족 감정을 조장할 만한 위인이어도 안 된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경로 사상이나 장수 기원에 기대어 한국인이 무난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한국식의 장수 노인상이 선택되었던 것 같다. 이 노인상은 1938년부터 개(改)100원권에도 도안됨으로써 모든 조선은행권의 얼굴이 되었다. 장수 노인상은 광복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었고 정부 수립 이후 1949년에 신권이 나오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야말로 장수한 셈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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