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8권 화폐와 경제 활동의 이중주
  • 제4장 일제 강점기의 화폐
  • 4. 화폐 발행과 물가 추이
정병욱

일제 강점기의 통화 증가는 물가 상승을 이끌며 양자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은행권 발행고와 물가의 증가율 추이는 1910∼1915년 정체, 1915∼1920년 성장, 1920∼1931년 불황·공황, 1931∼1937년 성장, 1937∼1945년 전시 경제의 형성과 붕괴라는 식민지 경제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식민지 조선은 1910년 강점 이후 정체가 지속되다가 1910년대 후반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일본의 호황에 조응하여 대일 농산물 수출을 중심으로 고성장을 기록하였다. 이 시기는 인플레이션에 의한 전형적인 소득 재분배가 일어나는데, 물가 상승에 비해 임금의 상승 속도는 느려 임금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저하하였다. 조선 총독부가 물가를 조절하기 위해 값싼 만주 좁쌀을 본격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으며, 조선은행은 수입 자금을 지원하였다.151) 「조선(朝鮮)과 만주속이입(滿洲粟移入)의 현재 급 장래(現在及將來)」, 『개벽(開闢)』 56, 1925년 2월.

1920년대 일본은 공황의 연속이었다. 1920년 반동 공황, 1923년 지진 공황, 1927년 금융 공황, 1929년 대공황이 이어졌으며, 식민지 조선도 그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다. ‘산미 증식 계획’도 예상대로 진행되지 못해 1926년 갱신 계획이 수립되었으며, 대부분의 금융 기관은 경영난에 빠졌다. 조선은행도 부실 대출로 인해 대대적인 정리가 단행되었으며 감독 기관이 총 독부에서 대장성으로 바뀌었다. 인플레이션 시기에도 협상가격차(鋏牀價格差)가 나타나지만 디플레이션 시기에는 더욱 심하였다. 쌀값의 지수는 1919년 100에서 1931년 38로 하락하였다. 이 시기 농민은 살기 위해 도시로, 북선(北鮮)으로, 만주로 이주하였으며, 1926년 전체 인구 중 11%를 차지했던 세민·궁민·걸인은 1931년 28%로 늘었다. 이제 만주 좁쌀은 단순한 물가 조절용이 아니라 대용 식량으로 수입품 중 상위를 차지하였다.152) 강만길, 『일제시대 빈민생활사 연구』, 창작사, 1987, pp.101∼114 ; 송규진, 『일제하의 조선 무역 연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2001,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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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은행권 발행, 임금, 물가 추이
일제 강점기 은행권 발행, 임금, 물가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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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부터 1937년까지 일본은 금 수출 재금지 이후 대대적인 통화 팽창을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섰고, 만주 침략은 호재였다. 이 시기 조선도 ‘만주붐’, ‘공업화’로 상징되는 성장기였다. 같은 성장기인 1910년대 후반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통화 팽창이 물가 지수나 임금 지수에 비해 더 가파르게 상승하여 활황을 이끌었다는 점, 일본의 만주 침략에 따라 식민지 조선의 일본 권역 내 역할이 식량·원료 공급에서 경공업 생산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편, 농업에서는 식민 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소작 관계 조정, ‘농촌 진흥 운동’이 추진되었으며, 쌀 단작화의 위험을 피하 고 대용 식량의 자급화를 위해 ‘전작 개량 증식 계획’이 실시되었다.

1937년 이후 1945년까지 식민지 조선의 경제는 일본의 전쟁 수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물자, 인력, 자금을 동원해야 되는 전시 체제였다. 식민지 조선에서 그 재원은 주로 통화 증발을 통해 조달되었다. 조선은행권 발행고는 1936년에 비해 1945년 9월 말 41배로 늘었으며, 같은 기간 동안 물가는 45배로 증가한 반면 임금은 3배 인상되는 데에 그쳤다. 그런데 도표 ‘일제 강점기 은행권 발행, 임금, 물가 추이’를 보면 물가가 급상승한 것은 1945년 광복 이후이다. 통화가 남발되는 가운데 가격 통제와 물자 배급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했던 것이다. 또한 강제 저축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실시되었다.

<표> 공정 가격과 암시장 도매 가격의 비교
단위 : 원, 지역 : 서울
가격
물품
공정 가격 암시장 가격
1945년 6월 1945년 6월 1945년 3월 1944년 12월
쌀(1두) 5.09 500 (98) 200 (39) 110 (22)
콩(1두) 4.30 200 (47) 190 (44) 80 (19)
밀가루(22㎏) 10.78 200 (19) 120 (11) 70 (6)
설탕(1근) 0.46 80 (174) 50 (109) 30 (65)
쇠고기(1근) 3.52 30 (9) 20 (6) 10 (3)
배추(1관) 1.65 15 (9) 15 (9) 10 (6)
소주(1되) 3.70 80 (22) 60 (16) 40 (11)
광목(1마) 0.6 - 25 (42) 25 (42)
연탄(1톤) 60.0 900 (15) 750 (13) 300 (5)
세숫비누(1개) 0.1 20 (200) 8 (80) 5 (50)
빨랫비누(1개) 0.48 40 (83) 25 (52) 90 (188)
양말(1족) 0.44 15 (34) 15 (34) 11 (25)
구두(1족) 26.14 400 (15) 200 (8) 150 (6)
✽암시장 가격의 ( )는 1945년 6월 공정 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한 배수(倍數).
✽조선은행 조사부, 『경제 연감』, 1949년판, I-113쪽.

이러한 억제된 인플레이션 아래에서는 정부가 아무리 단속한다 하더라도 암거래가 성행하기 마련이다. 1945년 6월 공정 가격과 암시장 가격을 비교해 보면 쌀값은 98배, 설탕은 174배, 빨랫비누는 무려 200배나 암시장 가격이 비쌌다. 쌀의 경우는 1943년 이후 생산량이 급격하게 감소한 반면 공출량은 사전 할당제를 통해 증가하였고 배급량은 감소하여 열악해진 쌀 수급 상황을 반영한 것이었다. 당시 ‘사치성’ 생필품인 설탕, 세숫비누는 거의 공급이 끊겨 돈이 있더라도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도표 ‘일제 강점기 은행권 발행, 임금, 물가 추이’의 광복 이후 물가 폭등은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전시기(戰時期) 실제 물가가 사후에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물가와 임금 증가율의 현격한 차이는 민중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말해 준다.

암거래에는 폭리를 취하려는 상인들의 영리 행위도 있었지만, 민중들이 생존권 차원에서 행한 ‘범법’ 저항이 많았다. 사체(死體)로 위장하여 식량을 운반한다거나, 부인이 식량을 아이처럼 업고 간다고 단속 순사가 찔러보았다가 아이가 죽었다는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한편 전시 말기에는 현금이 있어도 물건이 없어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자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각종 물물 교환 거래가 등장하였다. 이는 암거래와 함께 민중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고육책으로, 전쟁은 상품 화폐 경제를 다시 물물 교환 경제로 돌려놓았던 것이다.153) 이송순, 「전시기(戰時期, 1937∼1945) 조선의 농촌시장 통제와 ‘암거래’ 확산」, 『한국민족운동사연구』 34, 2003, pp.289∼302.

그런데 전시 인플레이션은 표 ‘일본과 그 식민지 권역의 도매 물가 지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일본과 그 식민지 권역 안에서 차등 있게 진행되었다. 앞서 보았듯이 일본 식민지의 화폐 제도는 일본은행권의 발행 없이 신용을 창조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일본은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현지에서 조달함으로써 격렬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였지만, 상대적으로 일본 안은 인플레이션이 심하지 않았다. 조선은행권은 일본은행권을 대신하여 만주에 이어, 화베이(華北) 지역에서 화폐 공략의 선봉에 서서 팽창되었는데, 1945년 말 조선 이외의 발행액이 40%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표 ‘조선은행권의 발행 준비별 추이’ 참조). 조선은행권은 인플레의 파급을 막아 내는 장벽으로서 기능하였다. 조선은행 설립 당시 나왔던 ‘식민지 은행 장벽론’이 실현된 것이다. 1944년 12월에 소집된 제86회 일본 제국 의회에서 조선 총독부는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표> 일본과 그 식민지 권역의 도매 물가 지수
지역
연월
도쿄 경성 창춘(長春) 베이징 상하이
1936       100 100
1937. 6 100 100 100    
1937. 12 101 104 100    
1938. 12 108 123 125 141  
1939. 12 133 151 159 261 226
1940. 12 132 157 198 409 567
1941. 12 146 164 208 518 1,650
1942. 12 151 173 232 817 3,399
1943. 12 164 193 254 1,382 11,066
1944. 11 185 216 336 4,622 94,170
✽羽鳥敬彦, 「전시하(1937∼1945) 조선에서의 통화 인플레이션」, 『식민지 시대 한국의 사회와 저항』, 백산 서당, 1983, 209쪽.

특히 대륙의 물가고에 영향을 받고 있는 조선으로서는 제국의 인플레이션 방위를 위한 제일선으로서 중요한 책무를 통감하면서 시책을 적정선으로 조성하기에 부심하고 있다.154) 近藤釰一 編, 『太平洋戰爭の朝鮮』 (5), 巖南堂書店, 1964,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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