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8권 화폐와 경제 활동의 이중주
  • 제5장 대한민국의 화폐
  • 1. 광복과 우리 돈
  • 조선은행권과 미국 군표
배영목

광복 직전에는 조선은행이 발행한 조선은행권이 주요 화폐이었지만 일본 정부가 발행한 화폐도 유통되었다. 지폐인 조선은행권으로는 100원권, 10원권, 5원권, 1원권 등이 있었다. 조선은행 지급 어음(仕拂金票)이라고 부르던 보조 지폐 50전권, 20전권, 10전권 등의 소액 지폐도 사용되었고, 주화(鑄貨)로는 일본 정부가 주조한 10전, 5전, 1전의 동화(銅貨) 등이 사용되었다. 그 밖에도 일본은행권과 대만은행권이 유통되었고, 일본군이 점령지에서 사용하였던 군표(軍票)도 유통되고 있었다.157) 군표는 점령군이 전쟁 중인 지역에서 물자나 인력을 동원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지급 수단으로, 점령군이나 그 정부가 태환을 보장하는 일종의 일람불 어음(一覽拂於音)으로 지폐의 일종이다. 일본군은 러일전쟁(1905) 때 군용 수표로 은10원권, 은5원권, 은1원권, 은20전권, 은10전권을 사용하였다. 이 군표는 한글과 일본어로 은과 교환해 준다고 명시하고 있고, 위조에 대해 엄벌을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본군은 다른 점령지에서도 군표를 새로 제조하여 사용하였기 때문에 여러 유형의 군표가 일본군 점령지에서 유통되었고, 그 일부가 조선으로까지 유입되었던 것이다. 광복 당시 발행된 조선은행권 100원권을 보면, 발행 기관은 조선은행이고 단위는 원(圓)으로 표시되어 있고 이전의 조선은행권과 달리 영어 화폐 단위인 엔(Yen) 표시가 없다. 이 은행권에는 같은 액수의 일본은행권으로 교환 또는 태환할 수 있다는 태환 규정이 있다. 10원권, 1원권은 도안이 같고 액면에 따라 크기만 작았다.

미군은 일본 점령지에서 사용할 화폐를 이미 준비하고 있었는데, 엔 단위로 표시된 군표가 바로 그것이었다. 미군 사령부는 포고(布告) 제3호(통화)로 미국 군표(이하 미군표)와 조선은행권 등을 법화(法貨)로 지정하고 일 본의 군표를 무효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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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당시 발행된 조선은행권 100원권(앞면)
광복 당시 발행된 조선은행권 100원권(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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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당시 발행된 조선은행권 100원권(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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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고 제3호(통화)

제1조 법화

1. 점령군이 발행한 보조 군표인 ‘A’인 원(圓)통화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지역에서 공사의 변제에 사용하는 법화로 지정한다.

2. 점령군이 발행한 보조 군표 ‘A’인의 원통화와 현재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지역에서 통용되는 법화인 보통 원통화는 일본은행과 대만은행이 발행한 태환권을 제외하면 액면대로 교환할 수 있다.

3. 기타의 통화는 북위 38도 이남의 지역에서 법화로 인정하지 아니한다.158) 조선은행, 『조선경제연보』 Ⅱ, 1948, pp.36∼37.

미국은 일본 점령지에서 사용하기 위해 100원권, 10원권, 5원권, 1원권, 50전권, 10전권까지 인쇄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한자와 영어가 들어가 있으나, 일본어로 표시되어 있는 은행권이었다. 화폐명은 원(圓)이고 영어로는 엔(Yen)이다. 이 금액은 당시 조선은행권 액면과 동일하나 소액권인 10전권이나 소액 주화는 별도로 준비되지 않았다.

미점령군이 포고령을 발포한 결과로 미군이 발행한 ‘A’인 엔통화가 조선은행권 등의 원통화에 추가되어 유통될 수 있게 되었던 반면에 일본 군표 의 유통은 금지되었다. 미군정은 1945년 11월 2일 군정 법령 제21호로 「조선은행법」을 존속시킴에 따라 조선은행권은 법화로서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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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인 미국 보조 군표 100엔권(앞면)
‘A’인 미국 보조 군표 100엔권(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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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인 미국 보조 군표 100엔권(뒷면)
‘A’인 미국 보조 군표 100엔권(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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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은 1946년 2월 21일부터 군정 법령 제57호에 의거하여 일본은행권 및 대만은행권을 회수하고, 같은 해 7월 1일부터는 군정 법령 제95호에 의거하여 ‘A’인 엔통화를 법화로서의 지위를 정지하고 회수하였다. 미군정이 미군표(美軍票)를 회수한 것은 이미 조선은행권이 오랫동안 법화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회수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군표를 계속 유통시키면 발행 주체나 성격이 다른 두 종류의 화폐를 사용하는 데에 따른 혼란을 우려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일본은행권은 조선은행권과 1 대 1로 교환되는 화폐로 광복 전에 조선은행권과 함께 유통되었으나 1946년 2월 21일부터 대만은행권과 함께 회수되었고, 같은 해 7월 1일에는 대만은행권과 함께 법화로서의 자격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 군표도 미군이 발행한 A 보조 군표가 유통되는 9월 7일부터 유통이 금지되었다. 일제의 패망과 국권의 교체라는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복잡했던 유통 화폐는 조선은행권으로 통일되고 여러 종류의 화폐 이용에 따른 혼란이 도리어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은행권이 일본의 식민지 은행권이었지만 이미 남한의 화폐로서 뿌리를 내려 관습적으로 화폐로서의 신뢰를 가지고 있었고, 그 화폐 발행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따라 이 은행권이 미군의 군표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게 되었고, 그 결과 미군정이 지배하고 있던 남조선에서 유일한 법화가 되었다. 조선은행권 통용 지역은 비록 남조선으로 제한되었지만 1946년 7월부터는 이 은행권이 유일한 법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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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직후 화폐 종류별 법화로서의 유효 기간
광복 직후 화폐 종류별 법화로서의 유효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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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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