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8권 화폐와 경제 활동의 이중주
  • 제5장 대한민국의 화폐
  • 3. 화폐의 변신과 지불 수단의 다양화
  • 은행권과 주화의 변천
배영목

조폐 공사가 최초로 제조한 은행권은 1952년 10월부터 발행 유통한 1,000원권과 500원권이었다. 이 은행권의 앞면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화가 있고 뒷면에는 파고다 공원이 인쇄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의 조폐 공사는 원판 제작 능력이 없어 원판은 일본에서 제조되었고, 인쇄 용지도 일본 미쓰비시 제지 회사의 특수 용지를 수입하여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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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폐공사가 제조한 최초의 한국은행권 1,000원권(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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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폐공사가 제조한 최초의 한국은행권 1,000원권(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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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1953년 2월 제2차 긴급 통화 조치 이후에는 필요한 은행권을 모두 조폐 공사가 제조하기는 하였으나, 은행권 용지 생산에 필요한 시설과 기술까지 갖추게 되는 것은 1958년 8월 이후이다. 조폐 공사가 모조지를 생산한 것은 1958년 8월부터이고 ‘한국은행’이 라는 숨은 글씨가 들어간 은행권 용지를 생산하는 것은 이듬해 2월이고, 이 용지는 7월에야 한국은행에 공급하였다.175) 한국조폐공사, 『한국화폐전사』, 1993, pp.370∼371.

한국은행은 제3차 화폐 개혁 때 영국에서 제조한 은행권을 사용하였지만 그것만으로 증가하는 은행권 수요에 충당할 수 없기 때문에 조폐 공사가 제조한 은행권의 사용량을 늘려 나갔다. 한국은행은 1962년 9월부터 조폐 공사가 제조한 10원권과 100원권을 사용하였고 도안도 다양화하였다.

조폐 공사는 그때까지도 평판 인쇄로 은행권 용지를 생산하여 위조의 위험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은행권 위조를 어렵게 할 요철 인쇄 기술을 도입한 대전 인쇄 공장을 1964년 9월 준공하였다. 요철 인쇄 기술은 1965년 8월 발행된 100원권의 앞면 인쇄에 도입되었고, 1966년 8월에는 500원권부터 앞면은 물론 뒷면 인쇄에도 적용되었다.176) 한국조폐공사, 『한국조폐공사 50년사』, 2001, pp.121∼122.

한국은행은 고액권 등장에 따른 물가 상승 심리의 만연을 우려하여 1960년대까지는 500원권 이상을 발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에 접어들어 그동안 물가 상승과 경제 규모 확대에 따라 고액권 필요성이 제기되어 한국은행은 1972년 7월 1일부터 율곡 이이의 초상이 있는 5,000원권, 1973년 6월 12일부터 세종대왕 초상이 있는 10,000원권을 발행하였고, 1973년 9월 1일부터는 이순신 초상과 거북선이 있는 500원권을 다시 발행하였고, 1975년 8월 14일부터는 퇴계 이황 초상이 있는 1,000원권을 발행하였다.177) 한국은행, 앞의 책, 2000, p.216.

한국은행은 1982년 은행권 발행을 재정비하면서 기능적 요소를 추가하였다. 즉, 은행권에 기계 감응 요소를 추가하고 위·변조 방지 요소를 첨가하며 맹인을 위해 점자를 표시하고, 색깔을 넣었다. 특히 시중에 컬러 복사기가 등장하면서 위·변조의 위험성이 더 높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위·변조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였다.178) 현재 위·변조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은화(숨은 그림), 형상 색사, 요판 인쇄, 앞·뒤판 맞춤, 광가변 잉크, 돌출 은화, 부분 노출 은화, 요판 잠상, 미세 문자, 시각 장애인용 점자, 부분 노출 홀로그램 은선, 숨은 막대, 형광 인쇄 등이 있다. 10,000원권은 식별 방법이 아홉 가지에 이른다. 하지만 1998년 컬러 복사기를 이용하여 위조한 일련번호 ‘2741288 마사나’ 10,000원권이 전국적으로 1,000여 장이 유통되었다.179) www.bok.co.kr.

최근에 발견된 위조 지폐 장수가 2001년 1,547장, 2002년 3,016장, 2003년 3,896장 2004년 4,353장으로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은행권 위조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은 2005년 6월 기존 도안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되 위조 방지 방안을 강화하면서 국제적 규격에 근접시키고 더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크기가 줄어든 고품질의 은행권을 보급하기로 하였다. 예를 들어, 보는 각도에 따라 빛깔은 물론 그림(우리나라 지도, 액면 숫자와 태극, 4괘 무늬)이 달라지는 홀로그램이 들어 있고, 5,000원 금액 색도 보는 각도에 따라 황금색으로 녹색으로 변하는 5,000원권이 2006년 초부터 보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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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등장한 고액 은행권-5,000원권(앞면)
1970년대에 등장한 고액 은행권-5,000원권(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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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원권(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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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권(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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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권(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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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광복 이후에 소액 거래에 필요한 소액 화폐는 광복 전에 사용하였던 소액 지폐나 소액 주화를 1953년까지 이용하였다. 조선은행은 증가하는 소액 화폐 수요에 대응하여 1949년 9월부터 50전, 10전, 5전 은행권을 발행하였고 이것도 1953년까지 이용되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만성화되고 화폐 가치의 하락으로 발행 은행권이 고액화함에 따라 1원권, 5원권 등이 소액 거래에 주로 이용되었다.

한국은행은 1958년 물가가 안정되고 화폐 가치 하락도 완만해짐에 따라 소액 거래의 편의와 화폐 제조비의 절감을 도모하기 위해 미국 필라델피아 조폐국에서 제조된 100환화, 50환화, 10환화 주화를 수입하여 광복 후 처음으로 유통시켰다.180) 한국은행, 앞의 책, 2000, p.218.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주화는 한국은행이 1959년 10월부터 미국에서 제조한 100환, 50환, 10환 등 세 종류의 화폐를 수입하여 유통함으로써 다시 등장한다. 이 주화의 도안으로 100환화는 이승만 대통령 초상, 50환화는 거북선, 10환화는 무궁화를 이용하였고 주화의 소재로는 백동, 양백, 황동 등 주로 구리를 이용하였다. 이 가운데 100환 주화는 1962년 6월 제3차 긴급 통화 조치로 유통이 정지되었으나 50환화, 10환화는 해당 원화 액면으로 1975년까지 통용력을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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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처음 발행된 주화-100환권(앞면)
광복 후 처음 발행된 주화-100환권(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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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환권(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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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환권(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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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환권(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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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환권(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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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환권(뒷면)
10환권(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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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1966년부터 조폐 공사가 제조한 10원, 5원 1원을 통용시킴으로써 주화 생산의 국산화를 실현하였다. 한국은행은 1970년 100원화를 처음으로 주조하고, 1972년에는 50원화를 발행하여 주화 체계를 확립하였다.181) 한국은행, 앞의 책, p.218. 이와 같이 1970년대에 접어들어 은행권은 10,000원 시대로, 주화는 100원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한국은행은 1980년대에 접어들어 자동 판매기 등 주화 사용 기기의 확대에 따라 주화 수요가 급증하여 소액화된 500원권을 대체하는 방편으로 500원 주화를 1982년 6월부터 발행하여 유통시켰다. 새로 등장한 500원 주화는 학을 소재로 하고 주화도 크고 톱니도 있어 기존 주화와 구분되도록 하였다. 이 500원 주화가 500원권을 점차로 대체해 감에 따라 500원 은행권은 1993년부터 더 이상 발행되지 않았다.182) 한국은행, 앞의 책, p.219.

한국은행은 고액 주화인 500원을 발행하면서 주화 체계 전반을 정비하기 위해 새로운 주화로 100원화, 50원화, 10원화, 5원화, 1원화를 발행하였 다. 새로운 주화는 기존의 주도안, 규격, 소재 등은 그대로 유지하되 화폐별 액면, 제조 연도 등의 표시 방법을 통일하고 도안을 조정하였다. 현재의 주화 체계는 1980년대 조정된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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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시대의 주화-500원화(앞면)
원화 시대의 주화-500원화(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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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원화(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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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원화(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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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원화(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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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원화(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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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원화(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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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원화(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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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원화(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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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원화(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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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원화(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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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원화(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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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폐 공사는 은행권, 주화는 물론이고 각종 증지, 우표 등을 제조하여 국내에 공급하면서 동시에 수출의 길도 열었다. 조폐 공사는 1970년 5월 태국에 소비세 증지를 수출하는 것으로 시작으로 1973년에는 필리핀, 1977년에는 방글라데시에 증지를 수출하였고, 1977년에는 쿠웨이트에 우표도 수출하였다. 이어 1978년에는 방글라데시에, 1989년에는 부탄에 은행권을 수출하였고, 1985년부터 태국에, 1986년에는 인도네시아에, 1987년에는 나이지리아에, 1997년에는 중국에, 1999년에는 필리핀에도 은행권을 수출하게 되었다. 조폐 공사는 1966년에서야 주화를 처음 제조하였지만 1973년부터 대만에 주화를 처음으로 수출하였고, 1985년에는 인도에, 1986년에는 싱가포르에 주화를 수출하였다.183) 한국조폐공사, 앞의 책, 2001, pp.274∼288의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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