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8권 화폐와 경제 활동의 이중주
  • 제5장 대한민국의 화폐
  • 4. 돈의 관리와 가치
  • 변모하고 있는 돈
배영목

수표든 카드든 현금이 아닌 결제의 대부분은 최종적으로 은행의 예금 계좌의 이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물건 값을 지불하거나 채무를 청산할 때 은행이 고객의 예금 계좌를 이용하여 결제를 대신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화폐(통화)가 중앙은행의 지폐나 주화만이 아닌 은행의 예금에 의해서도 창조되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따라서 중앙은행인 한국은행도 은행권이나 주화의 양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돈을 관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은행이 취급하는 예금까지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은행이 등장한 것은 개항기부터 150년을 넘지 않지만 이제는 모두가 은행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은행에 의존하여 생활하고 있다. 우리가 자신의 돈을 예치하거나 남의 돈을 대출받고자 하거나 다른 사람과 대금 결제를 할 경우에도 은행을 이용하게 된다. 은행과 더 가까워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금보다 예금을 더 많이 가지게 되었다.

고객이 현금 또는 수표로서 은행에 예치한 화폐가 예금이다. 은행의 입장에서 보면 예금은 고객이 요구하면 현금이나 자기앞 수표로 지급해야 할 부채이지만 고객의 입장에서 보면 예금은 현금 대신 지급에 이용할 수 있는 자산이 된다. 예금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지만 보통 만기 유무를 기준으로 요구불 예금과 저축성 예금으로 구분한다.

요구불 예금은 저축성 예금에 비해 지급되는 예금 금리는 낮은 대신에 언제라도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다. 당좌 예금의 경우에는 당좌 수표를 이용할 수 있고 해당 요구불 예금으로 결제하는 각종 카드를 이용할 수도 있다. 누구라도 당좌 수표나 은행의 자기앞 수표를 이용하면 도난의 위험이 큰 거액의 현금을 직접 지급하지 않더라도 은행이 나중에 대신 지급해 주는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

도표 ‘요구불 예금/현금 비율의 추이’에서 보듯이 요구불 예금/민간 보유 현금의 비율이 광복 직후 0.4에서 출발하여 계속 증가하다가 6·25 전쟁으로 일시 감소하였지만 이후 계속 늘어나 1991년 4.7까지 증가하였다가 다시 감소하여 2.5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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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불 예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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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통화(은행권+주화)에 대한 예금 통화(요구불 예금+저축성 예금)의 비율은 계속 증가하여 1987년이면 10배를 넘어서게 되었다. 2000년을 기준 으로 보면 요구불 예금은 2.5배, 저축성 예금은 20.2배, 총예금으로는 22.7배이다. 특히, 1990년대에는 민간이 요구불 예금을 저축성 예금으로 전환함에 따라 요구불 예금의 비율은 급격히 낮아졌다.

지금은 은행에 예금 계좌를 가지고 있는 고객이라면 구태여 현금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어음, 수표 등의 장표를 이용하거나 카드 등을 이용하여 재화나 서비스의 대가를 지급할 수도 있고, 현금 자동 지급기, 전화, 인터넷을 이용하여 직접 송금할 수도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각종 서비스를 받고 대금을 지급할 때 은행권이나 주화와 같은 현금보다 장표나 카드를 이용하고 은행은 그 거래 내역에 따라 결제를 대신해 줌으로써 예금 통화가 점차로 현금 통화의 자리를 잠식하였던 것이다.

지금은 현금이 아닌 예금, 특히 요구불 예금이 은행권 또는 주화와 같은 결제 수단이 되거나 가치의 저장 수단이 되고 그 계산 단위도 같기 때문에 역할이나 기능에 차이가 없다. 그래서 현대의 경제 생활에서 경제학자는 물론이고 일반인도 자신이 소유한 예금도 현금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은행 이용이 일상화된 시대에 접어들면, 화폐(통화)라면 현금 통화는 물론 예금 통화까지 포함해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도 화폐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간단하지 않다.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가진 화폐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화폐의 정의가 명확하게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나라마다 은행 등 금융 제도나 금융 시장의 발전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각 통화 정의의 구체적 범위가 약간 차이 나게 마련이다. 더욱이 한국은행이 통화 금융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정의하는 화폐의 범위, 이른바 통화량 지표는 우리가 생각하는 화폐와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한국은행이 일반인의 화폐 정의와는 무관하게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관리하고자 하는 화폐로서 여러 가지의 통화량 지표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까지 가장 널리 사용되었던 화폐 정의로는 화폐 발행고, 본원 통화, 통화(M1), 총통화(M2), 유동성(M3) 등이 있다. 한국은행은 1951년부터 M1, M2를 편제하여 사용하였고, 1982년부터 M3을 편제하여 통화 지표로 사용하고 있다.

화폐 발행고는 가장 오래된 화폐 정의로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발행한 은행권과 주화의 합, 즉 현금의 양이 된다. 그리고 본원 통화는 민간이 보유한 현금과 예금의 원천인데, 이는 화폐 발행고와 중앙은행 예치금의 합이 된다.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통화 지표 M1은 과거 통화라고 하였고 지금은 협의의 통화라고 한다. 현재 M1은 지급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는 화폐의 총량을 측정하는 통화 지표이다. 이 양은 과거에는 민간 보유 현금과 예금 은행의 요구불 예금의 합으로 측정하였으나, 최근에는 요구불 예금 대신에 결제성 예금과 현금의 합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결제성 예금에는 당좌 예금, 보통 예금 등의 요구불 예금은 물론이고 저축 예금, 수시 입출식 예금 등도 포함된다.190) 한국은행, 『알기 쉬운 경제지표 해설』, 2004, p.11.

그다음으로 오래 사용된 통화 지표 M2는 과거 총통화라고 하였는데, 현재는 광의의 통화라고 한다. M2는 유동성이 크고 과거에는 가치 저장 수단이라는 화폐적 특성을 가진 현금, 요구불 예금과 저축성 예금을 말하는 통화 지표였다. 이 양은 과거에는 M1에 저축성 예금을 추가하는 것에 그쳤으나, 지금은 2년 이상의 장기 예금을 제외한 양도성 예금 증서, 환매 조건 부채권, 표지 어음 등 시장형 금융 상품과 금전 신탁, 수익 증권 등은 물론이고 실적 배당형 금융 상품 등을 모두 포함한다. 이 통화는 전통적 화폐 개념과는 거리가 있으나 과거에는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아 이 통화량 관리를 중시하였다.191) 한국은행, 앞의 책, p.11.

M3은 1982년부터 은행뿐 아니라 비은행 금융 기관까지도 포함하는 전 금융 기관의 유동성 수준을 측정하는 통화 지표이다. M3은 M2에 유동성이 높은 금융 자산을 더 포함시킨 가장 넓은 범위의 통화 지표이다. 이 통화의 정의는 일반인의 돈 또는 화폐의 개념과 큰 차이가 있으나 이 유동성(M3)을 변화가 이자율, 물가, 경기 등과 더 밀접하다고 보기 때문에 한국은행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에는 통화량 지표에서 M3을 가장 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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