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8권 화폐와 경제 활동의 이중주
  • 제5장 대한민국의 화폐
  • 4. 돈의 관리와 가치
  • 우리 돈의 대외 가치
배영목

우리가 외국을 여행하거나 다른 나라의 물건을 수입하거나 투자를 하려면 그보다 앞서 우리나라 돈인 원화를 정해진 환율(換率)에 따라 그 나라의 화폐로 바꾸거나 아니면 달러화, 유로화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화폐로 바꾸어야 한다. 달러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용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돈은 우리나라를 벗어나면 아무도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나라의 돈을 다른 나라의 돈으로, 그것도 얼마로 바꿀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될 것이다.

광복 후 일본이 발행하였던 조선은행권은 일본은행권과 더 이상 교환되지 않음으로써 조선은행권은 다른 나라의 돈으로 바꿀 수 없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은행이 일본은행권이나 일본은행 예금 등으로 결제 준비금을 가지고 있어 조선은행권의 일본은행권으로의 교환(태환)이 가능하였으나, 조선은행은 광복 직전에 대외 준비 자산을 거의 상실하였다. 조선은행권은 광복과 함께 다른 나라의 돈으로 바꿀 수 없었고 외국으로의 송금도 불가능하였고, 우리나라 돈의 대외 가치를 알려 주는 다른 나라 돈과의 교환 비율, 즉 환율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외국과의 무역에서 물물 교환이 이루어졌던 것이다.195) 한국산업은행, 앞의 책, p.506, p.509.

한 나라가 만성적으로 국제 수지 적자국이 되면 대외 준비금이 부족한 상태에서 외환 위기 또는 국제 수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때 그 나라의 통화 가치 폭락을 우려하여 자본이 외국으로 이탈하게 되면 그 나라는 극단적인 경우 대외 준비금을 상실하여 경제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1980년 중반까지도 만성적인 국제 수지 적자로 외환 부족에 늘 직면하였기 때문에 원조, 차관, 수출 등을 늘려 외환 공급을 증대하는 한편, 각종 외환 규제를 실시하여 외환 수요를 줄여 최소한의 대외 준비금을 유지하여 왔다. 특히, 우리나라는 외국에서의 지출, 외화 자산의 보유, 해외 송금, 외국 투자액에 각종 제한을 두거나 한도를 두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후반 경상 수지 흑자국으로 전환된 이후에야 단계적으로 외환 규제를 완화시켰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한 직후인 1997년에는 국제 수지의 급격한 악화로 외환 보유액이 39.4억 달러까지 줄어들자 국제 통화 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는 외환 위기를 겪었다. 다행히 2001년에 외환 보유액이 1,000억 달러를 넘어서고, IMF 차입금도 조기 상환하여 외환 위기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켰다.196) 한국은행, 『우리나라의 외환 제도와 외환 시장』, 2003, pp.136∼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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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원화의 대달러 환율
우리나라 원화의 대달러 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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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환율 제도는 여러 차례 변하였다. 정부는 광복 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환율을 거래 종류에 따라 달리 적용하는 복수 환율제와 모든 거래에서 동일한 환율이 적용되는 단일 환율제를 번갈아 사용하되 환율을 고정시키고 필요에 따라 대폭 인상시켰다. 1964년 5월부터 단일 변동 환율제를 도입하면서 소폭이지만 일상적인 환율 변동을 허용하였고, 1980년 2월부터 미달러화 이외에도 다른 나라의 통화도 포함하여 환율을 결정하는 복수 통화 바스켓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하였으며, 1990년부터는 시장 수급에 따라 환율을 일정 한도 내에서 변동하는 시장 평균 환율 제도를 도 입한 후 변동 폭을 점차적으로 확대하였다. 1997년 외환 위기에 직면하는 것을 계기로 환율 변동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음에 따라 자유 변동 환율제가 시작되었다.197) 한국은행, 앞의 책, pp.107∼111.

미군정이 1945년 10월 원조액과 민간에 대한 채무액을 정하기 위해 원화와 달러화의 교환 비율, 즉 원/달러 환율을 처음으로 정하였다. 그 당시의 원화(圓貨)로는 15원(현재의 원화로는 0.015원)을 1달러로 책정하였다. 그래서 우리나라 최초의 공정 환율(정부가 공식적으로 정한 환율)은 0.015원/달러(15圓/달러)였다. 정부 수립 후에는 450원(현재 원화로 0.45원)을 책정하였다. 정부는 1964년 단일 변동제를 채택하면서 사실상 225원으로 안정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원화는 달러에 대해 계속 절하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나라가 경상 수지의 흑자로 처음으로 들어간 1980년대 이후에야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는, 다시 말해 달러에 대한 원화가 가치가 상승하는 현상이 처음으로 나타났다.

원화의 대달러 환율은 도표 ‘우리나라 원화의 대달러 환율’에서 보듯이 1950년 말 2.5원/달러(2500圓/달러), 1960년 말 65.0원/달러(650환/달러), 1970년 말 316.7원/달러, 1980년 말 659.9원/달러, 1990년 말 716.4원/달러, 2000년 말 1264.5원/달러로, 표시된 원화의 금액이 점차적으로 늘어나는, 다시 말해 원화의 대외 가치는 점차 하락하였다. 1945년과 2000년의 대달러 환율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화폐의 가치는 달러에 비해 1/84,300 (0.0000119)배로 줄어들었다. 달러화도 가치가 하락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적인 하락은 그보다 더 큰 것이었다. 광복 후 지금까지 생산자 물가가 7만 배, 소비자 물가가 11만 배 상승함에 따라 대달러 가치는 8만 배 정도 떨어졌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돈의 대외 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하였지만, 1980년대 후반에는 도리어 상승하는 국면이 전개되었다. 이와 같이 미국의 돈과 비교한 우리나라 돈의 가치는 계속 하락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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