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8권 화폐와 경제 활동의 이중주
  • 제6장 북한의 화폐
  • 2. 북한 화폐의 변천
  • 1979년 화폐 교환
이영훈

1979년 화폐 교환은 1979년 4월 6일 「중앙 인민 위원회 정령」에 의거하여 1979년 4월 7일부터 12일까지 6일간에 걸쳐 실시하였다. 구화폐는 신화폐와 1 대 1 비율로 교환되었으며 1959년 때와 마찬가지로 교환 한도를 정하지 않고 낡은 화폐 전량을 새 화폐로 바꾸어 주었다. 새롭게 1원, 5원, 10원, 50원, 100원권의 은행권이 발행되었다. 유통의 편의를 위하여 50전 주화를 새로 발행하였고 종전의 1전, 5전, 10전화는 디자인을 바꾸지 않고 계속 통용시켰다.

그러나 교환 내용을 보면 교환은 1회에 한하며 교환할 때 일부 및 전부를 저금할 수 있도록 하고 기관, 기업소, 협동단체는 1979년 4월 6일 현재 소유하고 있는 구화폐를 1979년 4월 8일까지 은행에 입금시켜 필요한 금액만을 신권으로 사용하여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이처럼 1979년 화폐 교환에서는 교환 한도를 두지 않았으나 저금을 적극 권장하거나 강제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북한은 1979년 화폐 교환의 동기를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다만, 화폐의 도안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을 따름이다. “새 돈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대를 이어 영원히 충성으로 높이 모시려는 우리 인민의 념원을 반영하여 그이의 존귀하신 영상을 (100원권에) 정중히 모시도록 하였으며 혁명의 료람, 우리 혁명의 뿌리, 주체, 천리마, 3대 혁명 그리고 주체 조선의 자랑찬 현실과 찬란한 미래를 조화된 전일적인 체계를 갖추고 형상하도록 하였다.”219) 『경제사전』 2, 사회과학출판사, 1985, p.603.라고 밝히고 있다.

확대보기
1979년 화폐 교환 은행권 50원권의 주체 군중상
1979년 화폐 교환 은행권 50원권의 주체 군중상
팝업창 닫기

따라서 북한의 공식적인 설명과 도안을 통해 1979년 화폐 교환이 주체 사상화의 요구에 부응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당시 김일성 개인 숭배의 발전 과정을 간략히 보면, 북한은 1967년 5월 이후 김일성 유일 사상 체계의 확립을 명분으로 개인 숭배를 대폭 강화하였다. 모든 의식을 김일성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하였고, 대중 학습은 김일성의 혁명 활동 암송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언론은 김일성의 위대성을 증명하는 일을 자신의 첫 번째 의무로 삼게 되었다. 이러한 우상화는 우민화를 수반하였는데, 대표적인 예가 양서의 말살이었다. 1967년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도서 정리 사업’으로 체제와 수령을 찬양하는 정치 서적, 수령의 노작과 교시집을 제외한 대부분의 책이 제지 공장으로 실려 갔다.220) 북한에서 5·25교시는 좌경 극단주의에 의한 북한판 문화혁명이라 할 수 있으며, 결정적으로 이 사건은 우민화 및 침묵의 문화를 촉진하였다고 할 수 있다. “북조선 사람들은 모두가 ‘60년대까지는 살기 좋았다.’고 말한다. 정확히 말한다면, 5·25교시 전까지는 북조선은 그래도 사회주의 인민의 나라였다. 그러나 5·25교시를 계기로 계급 투쟁과 프로 독재의 강화, 수령 우상화의 심화, 인텔리 혁명화를 몰아치는 가운데 사회 전반에 극좌적인 바람이 불어 닥쳤다.……나에게 가장 큰 의문을 던진 것은 책의 말살이었다. 5·25교시 이후 전국적으로 실시된 도서 정리 사업은 거의 197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전국의 모든 가정, 모든 직장의 책 페이지가 일일이 감열되는 방대한 캠페인이었다.……직장마다 제지 공장으로 실려 나가는 책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한마디로 그것은 거의 대부분이 양서였다. 남은 것은 체제와 수령 찬양의 정치 서적, 그리고 수령님 노작과 교시집이었다.” 성혜랑, 『등나무집』, 세계를 간다. 2001, pp.312∼414.

김일성 우상 숭배 캠페인을 주도했던 인물은 김정일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곧바로 정치 활동을 시작하여 노동당, 정부, 군을 장악해 갔다. 또한 주체 사상을 김일성주의로까지 격상시켰고 그의 가계 전부를 신화화하였다. 이러한 우상화의 과정은 김일성뿐만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절대화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1980년 6차 노동당 대회를 통해 김정일 후계 체계가 공식적으로 천명되었으며 이후 김정일은 김일성과 함께 공동으로 북한을 통치하게 되었다. 1984년에 김일성은 ‘김정일에 대한 충실성이 나에 대한 충실성’이라 하였고 ‘현 시대는 김정일 시대’라고 선언할 만큼 김정일 의 권한은 더욱 강화되었다.221)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임영태, 앞의 책, 8·9장 참조.

또한, 이러한 정치 구조의 변화는 문화 예술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1980년대 이후 김일성과 김정일을 대등하게 놓은 작품들이 나타났다. 김철의 「백두의 새날」(1982)에서는 ‘두 필의 준마’, ‘두 태양’으로 그들을 표상하고 있다.222) 윤재근·박상천, 앞의 책, p.307.

오, 백두야 조선의 산아 말하라

언제 어느 아침에 두 필의 준마

천지의 맑은 물로 목을 추기고

영광의 만리길을 다시 이어갔더냐

네 그날부터

두 태양을 함께 모시었나니

조선의 어제와 오늘과 래일이

네 우에 함께 빛나도다 백두산!

1980년 6차 노동당 대회는 김정일이 후계자로 대내외적으로 공개됨과 동시에 김일성·김정일의 공동 통치 시대가 개막되는 중요한 당 대회였다. 따라서 1979년의 화폐 교환은 김일성을 우상화하면서 김정일 후계 체계를 공고화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확대보기
1979년 화폐 교환 은행권 100원권(앞면)
1979년 화폐 교환 은행권 100원권(앞면)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1979년 화폐 교환 은행권 100원권(뒷면)
1979년 화폐 교환 은행권 100원권(뒷면)
팝업창 닫기

한편, 1979년 화폐 교환은 1959년 화폐 교환과 달리 저금을 강제하거 나 권장했던 것으로 보아 유휴 화폐를 회수하려는 목적이 있었으며, 유휴 화폐를 회수하게 된 데에는 경제가 악화되면서 경제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북한은 1976년 서방에 대한 채무 불이행 사태(default)에 놓이게 되었고 제1차 6개년 경제 계획(1971∼1976)을 1년 연장하여 1978년부터 새로운 제2차 7개년 경제 계획(1978∼1984)에 들어설 만큼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있었다. 물론 1978년부터 경제 사정이 호전되고, 1978년과 1979년에는 예외적으로 무역 흑자를 기록했으나 1980년 이후 다시 침체 국면으로 들어서게 되었다.223) 북한의 경제발전 전략에 대해서는 이영훈, 「북한 경제발전 전략의 지속과 변화」, 『탈냉정기 한반도와 주변 4강』, 매봉, 2004 참조.

확대보기
1979년 화폐 교환 외화와 바꾼 돈표 1원권(앞면)
1979년 화폐 교환 외화와 바꾼 돈표 1원권(앞면)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1979년 화폐 교환 외화와 바꾼 돈표 1원권(뒷면)
1979년 화폐 교환 외화와 바꾼 돈표 1원권(뒷면)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1979년 화폐 교환 외화와 바꾼 돈표 10원권(앞면)
1979년 화폐 교환 외화와 바꾼 돈표 10원권(앞면)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1979년 화폐 교환 외화와 바꾼 돈표 10원권(뒷면)
1979년 화폐 교환 외화와 바꾼 돈표 10원권(뒷면)
팝업창 닫기

1979년 화폐 교환에서는 내국인이 사용할 수 있는 일반 화폐와 외국인이 사용할 수 있는 외화와 바꾼 돈표라는 특수 화폐를 발행하여 이원화시켰다. 그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은행’의 명칭이 들어 있는 1원, 5원, 10원, 50원, 100원권 등 다섯 종의 일반 통용 은행권과 50전 주화 한 종 이외에, 외화와 바꾼 돈표 1원, 5원, 10원, 50원권 다섯 종을 별도로 발행하였다. 일반 통용권과 외화와 바꾼 돈표를 비교해 보면, 1원, 5원, 10원, 50원권의 도안은 동일하지만 외화와 바꾼 돈표에는 김일성 초상이 들어 있는 100원권이 없다는 점이 다르다.

이처럼 외화와 바꾼 돈표를 새롭게 발행한 이유는 1970년대 들어 북한 이 서방 선진 국가와의 무역을 확대하고 차관을 도입하는 등 자립 경제 노선을 완화하면서 유입되는 외화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이에 따른 화폐 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 판단된다.

1988년 조선중앙은행 산하 무역은행은 그동안 중앙은행에서 담당하여 오던 외화와 바꾼 돈표의 발행 업무를 수행하게 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역은행’ 표시의 새로운 은행권을 발행하였다.

확대보기
1988년 발행 무역은행권 외화와 바꾼 돈표-5전권(앞면)
1988년 발행 무역은행권 외화와 바꾼 돈표-5전권(앞면)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5전권(뒷면)
5전권(뒷면)
팝업창 닫기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