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8권 화폐와 경제 활동의 이중주
  • 제6장 북한의 화폐
  • 3. 화폐 경제로의 이행
  • 시장 경제의 진전
이영훈

1990년대 들어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비효율이 누적된 데다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됨에 따라 사실상 소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북한 경제는 전반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경제 생활에 토대가 되는 식량·에너지·원자재난이 심화되었으며 공장 가동률이 30% 미만으로 떨어지고, 1990∼1998년 동안에는 매년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이와 같은 경제 위기는 국가의 재정을 고갈시켜 계획 경제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게 하였으며, 가계와 기업에 대해 ‘자력 갱생’을 강요하였다. 우선 북한 정부는 제3차 7개년 경제 계획(1987∼1993) 이후 경제 계획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경제를 정상적으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주민들은 식량 및 임금을 정상적으로 받지 못하게 되자 개인 생산과 상거래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면 근로자의 임금은 ‘생활비’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식량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성인 1일 600g 정도가 배급되었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 급격히 줄었다. 그에 따라 시장에서 식량을 구입해야 하나 한 달 임금으로는 쌀 2㎏ 정도밖에는 구입할 수 없었다. 물론 쌀값의 2분의 1에서 3분의 1 정도의 가격을 유지하는 옥수수를 구입한다 하더라도 한 달 임금으로는 성인 한 사람의 일주일 식량조차 구입할 수 없었다. 더욱이 1992년 초에는 김정일이 “국가가 손해보는 한이 있더라도 정상 노임의 60% 수준을 유지하라.”고 할 정도로228) 국가안전기획부, 앞의 책, 1994년 4월. 노동자의 임금조차 정상적으로 지급되지 않고 있었으며,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아예 지급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공장·기업소의 경우도 국가로부터 자금 및 물자를 정상적으로 공급받지 못함에 따라 자체적으로 운영 자금을 마련하고 물자를 구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8·3 작업반, 부업지 경작, 외화벌이 등 계획 외의 경제 활동을229) ‘8·3작업반’ 활동은 공장의 폐자재를 이용하여 신발, 의류, 공책 등의 소비재를 생산하고 직매점을 통해 판매함으로써 수입을 거두는 경제 활동을 의미하며, ‘부업지 경작’은 기업소들이 자체적으로 일정 규모의 농경지를 확보하여 식량을 비롯한 각종 부식물을 생산하는 경제 활동을 의미한다. ‘외화벌이’는 무역을 통해 조직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얻는 경제 활동을 의미하는데, 1992년에 들어서면 과거와 달리 무역에 종사하지 않던 일반 기업과 기관도 외화벌이를 통해 필요한 자금을 확보해 왔다. 통해 얻은 수입으로 자체 운영 자금을 확보하고 그중 일부를 해당 근로자들에게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군수 공장, 수출 기업소, 주요 기간 산업의 공장·기업소 등을 제외하고는 공장·기업소 차원에서 해당 근로자들의 생계를 보장할 수 없었다.

따라서 국가뿐만 아니라 공장·기업소로부터 경제적으로 보호받지 못했던 주민들은 사경제 활동을 통해 생계 수단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사정은 특히 식량 배급이 중단되어 아사자들이 급증하는 ‘고난의 행군’기에 현저해졌다.

<표> 북한의 임금, 식량 배급, 쌀값 추이
구  분 1980년대 1992 1995 1998 2001 2004
임금(원/월) 70 100 100 100 100 2,000
근로자 식량 배급(g/일) 600 492 0 197 300
쌀의 배급 가격(원/㎏) 0.08 0.08 0.08 0.08 0.08 45
쌀의 시장 가격(원/㎏)   20 80∼200 77 49.5 900
✽이영훈, 「북한의 ‘자생적’ 시장화와 경제 개혁의 전개」, 『통일 문제 연구』 44, 평화 문제 연구소, 2005,

살 구멍 찾기 위해 장마당 나가야 하고, 장사할 밑천이 없으면 산에 가서 나무라도 해서 팔아야 산단 말입니다. 그렇게 안 하면 굶어죽어요. 아침에 장마당에 나가면 길 옆에 죽은 사람 가뜩해요.230) 이영훈, 앞의 글, 2005, p.30.

시장 활동과 연계된 주민들은 개인 생산물을 시장에 직접 내다 파는 소생산자와 타인 생산물을 구입하여 되파는 전문 상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개인 텃밭을 경작하고 자체적으로 두부, 기름, 술, 의류 등을 생산·판매하는 사람들로 대다수가 여기에 속한다. 후자는 주로 쌀이나 수입품을 취급하는 상인들로 거래 규모가 크며 일부는 수입한 원자재를 자신이 운영하는 생산 조직에 제공하여 생산된 물품을 내다 파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국가의 식량 및 생필품 배급과 생산재 공급이 대폭 줄면서 필요한 것을 시장에서 현금으로 구입해야만 했기 때문에 화폐 유통은 크게 확대되었다.

2002년 1월에는 생산재를 거래하는 ‘사회주의 물자 교류 시장’이 공식적으로 등장하였다. 소비재뿐만 아니라 생산재도 시장 거래를 허용한 것이다. 더 나아가 2002년 7·1 조치를 통해 “이제부터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가 탄 생활비로 생활, 절대로 공짜·평균주의는 없다.”고 강조하면서 국가부담에 의한 가격 보조의 폐지, 생산성을 초과하여 지불되는 임금 및 각종 수당을 폐지하였다. 이는 국가의 도움 없이 자기의 노동에 대가로 벌어들인 화폐 소득에 기초하여 생계를 유지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내용상 현물 경제에서 화폐 경제로 이행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북한 정부는 시장을 합법적인 상품 유통 체계의 하나로 인정하여 2003년 3월에는 ‘종합 시장’을 개설 하였다. 과거 통제 대상이었던 농민 시장을 자본주의 상설 시장 형태의 종합 시장으로 확대 개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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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의 소득 유형
북한 주민의 소득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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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북한은 자연 발생적으로 주민들에 의해 상거래와 개인 생산이 확대되는 ‘자생적 시장화’ 과정을 거쳐 왔으며, 그 과정에서 북한 경제는 현물 경제에서 화폐 경제로 이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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