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2장 옷감과 바느질
  • 2. 대단한 공예품 고대의 옷감
  •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옷감
조효숙

백제에 관한 여러 문헌 자료에는 다양한 직물과 함께 생산 기술도 일본으로 전파하였다는 내용이 있어 당시 백제의 직조 기술이 우수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문헌 자료와 더불어 1971년에 발굴된 무령왕릉이나 1998년에 발굴된 능산리 고분에서 여러 직물 조각이 나와 당시의 직물 실태를 추론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백제에서는 일찍이 부세(賦稅)로 견포 및 미곡 등을 바치되 그 해의 풍흉에 따라 차등을 두었으며 세금을 거두어들일 때 비단이 납세의 수단으로 채택되었다57)『북사』 권94, 열전 제82 백제전.고 하니 옷감이 물품 화폐로도 통용될 정도로 빈번하게 유통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확대보기
백제 금직물 조각
백제 금직물 조각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백제 금직물 조각
백제 금직물 조각
팝업창 닫기

백제의 정안나(定安那)가 일본인에게 금직(錦織) 기술을 전수하였다58)『일본서기(日本書紀)』 권14, 웅략왕(雄略王) 7년.고 하며, 554년에도 성왕이 호금(好錦) 두 필과 탑등(毾㲪) 일 령(領)을 보냈다는 기록59)『일본서기』 권19, 흠명왕(欽明王) 15년.도 있고, 신공황후(神功皇后) 시절에는 일본 조정에서 두 명의 사신을 백제로 파견하였을 때 근초고왕은 그들에게 오색채견(五色綵絹) 각 한 필을 하사하였다는 내용60)『일본서기』 권9, 신공왕후(神功王后) 섭정(攝政) 46년.도 있다. 이러한 자료는 백제에서 금이나 견과 같은 고급 직물을 특산품으로 생산하였고, 이미 탑등과 같은 모직물도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탑등은 모사(毛絲)로 타피스트리(tapestry)나 첨모직의 방식으로 제직한 모직물이며 원래 서역이 주요 생산지였다. 탑등은 요즈음의 양탄자(carpet)와 같으며 문양이나 제직 방식에서 신라에서 생산한 구유(氍毹)와 서로 유사하나 구유보다 더 섬세하게 만들어졌다고 한다.61)周汛·高春明 編著, 『中國衣冠服飾大辭典』, 上海 : 辭書出版社, 1996, 537쪽.

확대보기
백제 나직물 조각
백제 나직물 조각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백제 나직물 조각
백제 나직물 조각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백제 자수 직물 조각
백제 자수 직물 조각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백제 자수 직물 조각
백제 자수 직물 조각
팝업창 닫기

무령왕릉에서는 금·능·나·수·평견(平絹) 등의 다양한 견직물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금이나 수가 다량 포함되어 있어 당시의 화려했던 옷감을 짐작하게 한다. 직물의 상태는 매우 건조하고 경화되었으며 색상도 변색되었으나 제직법만은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금은 4∼6세기경 중국에서 많이 발굴된 경금(經錦)의 방식으로 제직되었고 밀도가 치밀한 것에서부터 성근 것까지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금동리(金銅履) 안쪽에 부착된 경금으로 만든 신발 조각도 출토되었다. 비록 작은 조각이지만 여러 점이 발견되었는데 두 올, 네 올, 여섯 올, 여덟 올의 씨줄이 번갈아 가며 1조로 짝을 지어 날줄과 엮이면서 문양을 만들어 마치 거미줄과 같이 성글고도 섬세하였으 며, 제직이 고려나 조선시대의 것보다 더 정교하였다. 또한, 사슬수(鎖繡, chain stich), 변수(辮繡, button hole stich) 등의 자수를 놓은 옷감도 많이 출토되었다. 이 밖에 편직, 매듭 끈, 풀솜, 실 등이 발굴되었다. 특히, 매듭 끈을 엮는 방식이 다양하게 나타났는데 일본 도다이사(東大寺) 쇼소인(正倉院)에 남아 있는 각종 매듭 대(帶)와 유사하였다. 청동 다리미에 작은 모시 조각이 붙어 있었는데 직물 상태가 양호하였으며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는 중요 무형 문화재 제14호 충청남도 한산의 모시짜기로 생산한 저마가 12승임을 감안한다면, 무령왕릉에서 나온 저마가 얼마나 정교한지 알 수 있다.62)국립 공주 박물관, 『무령왕릉 출토 유물 분석 보고서』, 2006, 148∼150쪽.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직물은 중국이나 일본에 남아 있는 5세기 전후의 옷감과 제직 방법이 유사하며, 고려나 조선시대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섬세하다. 이 유물들을 조사하면서 그 당시 직물의 정교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며, 요즈음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옷감과는 차원이 다른 일종의 섬유 공예 작품이라고 느꼈다.

그 밖에 부여에 위치한 능산리 고분에서도 소량이지만 주(紬)·사·나의 작은 조각이 발굴되었는데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직물과 유사하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