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2장 옷감과 바느질
  • 4. 점점 단순해지는 조선시대의 옷감
  • 옷감의 종류와 명칭
  • 마직물
조효숙

마직물에는 베와 모시가 있는데 조선시대의 여러 문헌에 베는 ‘마(麻)’ ‘마포(麻布)’로, 모시는 ‘저포(苧布)’, ‘저마(苧麻)’, ‘저(苧)’, ‘모시포 (毛施布)’로 기록되어 있다. 8승, 9승이 일반적이나 고운 것은 15승 이상으로 제직하며 세포, 상포, 극세저포, 상저포로 구분하였다. 『성호사설』에는 우리나라 북도에서 한 필의 베가 절에서 쓰는 바리에 들어갈 정도로 고운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40승 포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마포는 색상에 따라 백포, 황포, 흑포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1469년(예종 원년)에 공조 판서인 양성지(梁誠之)는 전국에 공물을 지역별로 배정할 때 각 지방의 토산에 따라 경상·전라·충청도에서는 면포를 내고, 평안·황해도에서는 면주, 함길·강원도에서는 베(常布), 충청도의 임천과 한산에서는 생모시(生苧)를 납부하도록 건의하였다.121)『예종실록』 권6, 예종 원년 6월 신사. 이를 통하여 15세기 조선에서는 지역별로 특산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베는 기후가 찬 함경도와 강원도에서 주로 생산하였고 모시는 서쪽 해안가에서 생산되었다. 이것은 후대에도 계속되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의하면, 19세기에 모시의 산지는 한산을 비롯하여 서천·비인·남포·청양의 서해안 지방이 이름났고, 베의 산지는 함경도의 회령·경원·온성 등이 유명하였다.122)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 동국문화사 영인, 1959. 특히, 함경도 6진 근방에서 생산되는 베는 ‘동포’, ‘바리내포’라 하여 바리에 들어갈 만큼 작은 실꾸리로 베 한 필을 짠 가늘고 섬세한 포를 의미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안동은 베의 유명 산지가 아니었다. 지금도 모시는 한산이 유명하고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베는 안동이 대표적인 산지가 되었다. 이곳에서는 지방 무형 문화재로 지정된 장인에 의해 9승에서 10승 정도의 모시와 베가 전통 옷감으로 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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