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2장 옷감과 바느질
  • 4. 점점 단순해지는 조선시대의 옷감
  • 옷감 무늬와 그 속에 담긴 의미
  • 식물무늬
조효숙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무늬는 식물무늬이다. 다양한 종류의 꽃과 과실을 소재로 화사하게 도안한 옷감을 즐겨 입었는데 이 무늬 역시 시대에 따라 유행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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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만초문
연화만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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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만초문
모란만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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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식물무늬는 연꽃이나 모란을 중심에 배열하고 주위를 만초(蔓草, 덩굴풀)가 C자형으로 휘감고 있는 연화만초문과 모란만초문이 가장 대표적이다. 연꽃이나 모란의 형태도 일정한 모습이 있고 만초 덩굴도 정해진 기본 곡선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대부분의 옷감이 거의 유사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17세기에 들어서는 소재 선택에서도 전형적인 연꽃이나 모란의 틀에서 벗어났고 구성 형태도 좀 더 자유롭게 바뀌었다. 연화만초 외에 국화, 매화, 동백, 난초, 복사꽃, 석류꽃과 같은 길상의 의미를 가진 다양한 꽃과 결합하여 자유로운 분위기가 더 드러난다. C자 형태의 만초에 감겨 충전된 느낌을 주었던 전기의 연화·모란무늬와는 달리 이 시대의 꽃은 짧은 가지가 연결된 절화형이며 좀 더 사실적인 사생풍으로 도안된다. 각종 꽃 사이에 새·나비·벌과 같은 동물을 넣어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복숭아·석류·불수감·여지 같은 과실을 함께 도안하여 다양한 소재가 자유롭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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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화문
원형 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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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부터는 또 다른 유행이 나타나는데 꽃의 형태를 강조하기보다는 각종 길상 식물과 동물을 단순하게 원형이나 타원형, 사각형 형태의 덩어리로 도안하여 드문드문 배열한 무늬가 많이 나타난다. 이 무늬는 사대부 남자들의 편복 포에 자주 애용되었는데, 간결하고 여백이 있는 느낌이 화려함을 피하고 단아함을 추구하던 유교 사회의 기풍과 부합하였기 때문이었던 듯싶다.

조선시대 옷감에 많이 보이는 연꽃, 모란, 만초는 모두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연꽃은 인도에서 불교 문화와 함께 전래된 것으로, 진흙 속에 살면서도 항상 깨끗한 자태를 보여 주어 속세를 떠난 청결함을 상징한다. 모란은 ‘목단(牧丹)’이라고도 하며 본래 중국이 원산지이다. 모란은 풍요로운 꽃잎 때문에 부귀와 다복을 상징하는 꽃으로 인식되어 조선시대의 각종 장식품에 널리 애용되었다.

세화문(細花紋)은 16세기 유물에서 많이 보이는데 형태를 알 수 없는 작은 꽃이 불규칙하게 나열되어 있다. 얼핏 보면 꽃이 작아 형태를 알 수 없 으나 자세히 관찰하면 봄 동백, 여름 연꽃, 가을 국화, 겨울 매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경우가 많다. 『연산군일기』에 기록된 ‘세화문단’, ‘사양화문저사’ 등이 이러한 무늬를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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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문
길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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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의 의미가 있는 과실무늬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조선 말기의 ‘도류불수무늬’와 ‘호리병박수자무늬’이다. ‘도류불수무늬’는 천도(桃), 석류(榴), 부처님 손을 닮은 열매를 형상화한 불수감(佛手柑)이 짜임새 있게 도안되어 수십 년 동안 인기를 누렸다. 천도는 장수를, 석류는 다남(多男)을 상징하고, 불수감은 복을 기원한다. ‘호리병박수자무늬’는 숙고사와 생고사의 무늬인데 호리병박과 수(壽) 자를 아름답게 조화시켜 지금까지도 한복 옷감으로 전승되고 있다. 호리병박은 모든 귀신이나 해독을 박 속에 가둘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밖에 매, 난, 국, 죽의 사군자 무늬도 고결한 자태를 상징하여 옷감에 가끔씩 사용되었다. 매화는 용기와 고결을, 난초는 우정과 고아(高雅)를, 국화는 군자의 고귀함을, 대나무는 곧은 지조를 나타낸다. 매화는 까치와도 조화를 이루어 기쁜 소식을 전해 주기를 바라며 남녀의 옷감 무늬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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