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2장 옷감과 바느질
  • 4. 점점 단순해지는 조선시대의 옷감
  • 옷감 무늬와 그 속에 담긴 의미
  • 동물무늬
조효숙

동물무늬에는 용, 봉황, 학, 까치, 공작, 원앙, 박쥐, 다람쥐, 학, 나비 등의 무늬가 나타난다. 용은 가뭄으로 인해 죽어 가는 농작물을 살리기 위한 염원에서 천우신조를 바라는 것을 의미하므로,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용은 비옥한 토지를 가져다주는 가장 중요한 상징이었다. 용은 신분의 상징으로 왕실의 복식에만 사용되어 다섯 개의 발톱을 가진 용은 왕, 네 개는 세자, 세 개는 세손의 관복 장식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조선 말기에 왕실이 약 화되면서 왕실의 상징인 용무늬가 일반에게도 쓰이게 되더니 순식간에 확산되어 용을 원형으로 도안한 ‘쌍용무늬’가 가장 인기 있는 옷감 품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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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무늬 보
용무늬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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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은 전설적인 길조(吉鳥)로 고대부터 공예품에 즐겨 사용되었다. 『심청전』의 심청이를 일컬어 “여자 중의 군자요, 새 중의 봉황이요, 꽃 중의 모란이다.”라고 노래하여 모든 새의 왕으로 여겼다. 봉황무늬 역시 궁중의 전유물로, 왕비의 복식에서 봉황문단을 짜서 의복을 만들고, 봉황문 금박을 찍고, 봉황문 수를 놓아 보(補)를 만드는 등 왕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박쥐는 중국어로 ‘복(福)’과 ‘복(蝠)’이 같은 음으로 발음된다는 데에서 애용되는 문양이며, 새끼를 많이 낳아 다남(多男)과 장수를 상징하는 영물로 인식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오복수(五福壽)라 하여 가운데 수 자가 있고 그 둘레를 다섯 마리의 박쥐가 원형을 이루며 도안된 커다란 원형 무늬가 유행하였다. 다섯 마리의 박쥐는 장수, 부, 평화, 미덕의 사랑, 행복한 죽음의 다섯 가지 행복을 의미한다. 그 밖에도 박쥐를 단순하게 도안한 무늬가 다른 무늬에 부분적으로 삽입된 점으로 보아 굉장히 선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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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문 직금
봉황문 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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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무늬는 청나라에서 민간인이 즐겨 사용했던 무늬를 상류층의 고급 직물에 적용시킨 경우이다. 자식을 의미하는 다람쥐(松鼠)와 풍요를 뜻하는 포도 덩굴이 잘 어울린 포도다람쥐무늬는 다자(多子)와 부(富)를 상 징한다. 이런 포도다람쥐무늬 옷감은 17세기 말의 출토품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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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문
박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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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한 자태의 학은 다리가 길고 깨끗하여 새들의 우두머리로 여기며 예로부터 ‘학수천년(鶴壽千年)’이라 하여 장수를 상징한다. 대표적인 것은 조선시대 문관의 흉배 무늬이며, 때로는 구름과 함께 옷감의 무늬로도 사용되었다.

까치는 학과 달리 다리가 짧고 부리가 둥글고 작게 특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중국에서 까치는 기쁨을 상징하는 새로 희작(喜鵲)이라고도 한다.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새로 칠월 칠석에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하기 위하여 다리를 놓았다는 민간 전설에 따라 ‘희작답매(喜鵲踏梅)’라 하여 봄 소식을 의미하는 꽃인 매화와 함께 도안하여 남녀의 좋은 인연을 상징하는 길상 문양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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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다람쥐무늬
포도다람쥐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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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학문
운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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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즐거움과 행복의 상징이다. 나비가 덩굴 식물과 같이 그려질 때에는 덩굴의 뿌리와 줄기가 끊임없이 뻗어 나가면서 꽃과 열매를 맺기 때문에 연생(連生)을 의미하고 그 주변에 날아드는 나비는 화목을 상징한다.

그 밖에도 1614년에 사망한 장기 정씨의 치맛감을 비롯하여 17세기의 옷감에는 벌이나 잠자리와 같은 곤충도 꽃무늬와 함께 나타나는데, 『역어유해』에 ‘천화봉’, ‘봉간매’라 쓰고 ‘봉이 곳ㅣ 나드는문’, ‘벌이 매화로문’이라고 풀이한 옷감 명칭이 바로 이런 종류의 무늬를 뜻하는 듯싶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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