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2장 옷감과 바느질
  • 5. 바느질 풍속과 도구
  • 바느질과 조선시대 여인들
조효숙

침선(針線)은 바늘과 실로 바느질하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처음에는 실용적인 목적에서 발생되었으나 문명의 발달과 함께 복식은 물론 생활용품, 장식품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 필요하게 되었다. 침선은 현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역사 속에서 중요한 분야였다. 특히, 조선시대는 예의를 숭상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예의의 표현인 의복 제작에 필수적인 침선 활동을 중요시하였다. 여성의 도리를 가르치는 각종 문헌에서 침선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1475년(성종 6)에 인수대비가 부녀자들의 교육을 위하여 국문으로 쓴 『내훈(內訓)』128)소혜왕후 한씨, 이청림 옮김, 『내훈(內訓)』 도서출판 임마누엘, 1985, 174쪽.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귀감으로 전해지고 있다. 『내훈』에는 “열 살이 되면 여자는 실과 골무를 다스리며 베와 비단을 짜고 곱고 가는 끈이나 굵은 실을 꼬며 여자의 일을 배워서 의복을 만들어 바치게 한다.”고 하여 침선을 중요시하였다. 또한, 영조 때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이 쓴 『여사서(女四書)』에는 “아들을 낳으면 상 위에 뉘어 구슬을 주어 놀게 하고 딸을 낳으면 상 아래 뉘어 실패를 가지고 놀게 한다.”고 하여 침선이 태어 나면서부터 여자에게 뗄 수 없는 중요한 교육이었음을 역설하였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침선을 중요하게 여겼음은 물론 결혼 후에도 부녀자들이 갖추어야 할 주요한 일이었으며, 심지어 여성의 덕목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사소절(士小節)』에서 “부인이 바느질, 길쌈, 음식 만들기를 모르면 이것은 마치 남자가 시서육예(詩書六藝)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129)이덕무(李德懋), 『사소절(士小節)』, 부의(婦儀), 복식(服飾).고 하여 침선은 상류층 여인도 익혀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양반집 여인들의 행실에 대하여 “실을 잦고 솜을 타며 옷을 다리고 비단을 다듬질하는 일은 비록 아랫사람이 하는 일이라 하여도 양반집 여인들도 손수 익혀야 할 것이다.”130)이덕무, 『사소절』, 부의, 복식.라고 하였다. 즉, 아랫사람이 있어도 의복을 다루는 일은 손수 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조선시대 여인들은 누구나 침선을 익혀야 하지만 그 중에는 바느질을 직업으로 하는 침모(針母)와 침선가(針線家)도 있었다.

침모는 남의 집에 고용되어 바느질을 도맡아 하는 여인을 말하며, 신분은 대개 양민 이상이었다. 양반집의 침모는 솜씨가 뛰어나야 했기 때문에 보통 서민 여성의 인품 및 실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침모의 출신 계층 중에는 몰락한 양반집 독신녀이거나 과부, 혹은 중인 계급의 여인도 많이 있었다.131)김용숙, 『한국 여속사(女俗史)』, 민음사, 1989, 261쪽. 침모는 성격상 반가의 고용인이지만 지니고 있는 기술 때문에 찬모(饌母)나 안잠자기와 같은 고용인에 비해 우위에 있었다. 침모는 대체로 성품이 조신하고 손끝이 여물었다. 항상 마루에서 기거하며 바느질을 하기 때문에 옷은 언제나 깔끔하였고 치마는 길게 늘여서 입었다.

침모와는 구별되게 침선가는 자신의 집에서 삯바느질을 하는 민간 여인을 말한다.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의 관복이나 제복은 만들기가 매우 까다로웠고 도포 짓는 것 또한 쉬운 작업이 아니었으므로 이 일들은 침선가에게 맡겼다. 침선가는 남성들의 웃옷뿐만 아니라 혼수 옷, 어린이들의 복건, 굴레 같은 것도 제작하였다. 18세기에는 정치 권력이나 경제적 부가 한양에 거주하는 일부 문벌 가문에 편중되면서 양반 가운데 벼슬은 물론 생업도 갖지 못한 사람이 속출하였다. 그래서 생계를 위해 선비의 아내라도 일하고 장사하는 사례가 있었다. 양반 계층의 여인이 침선 활동을 한 일례로 19세기 『조침문(弔針文)』 저자인 유씨(兪氏) 부인을 들 수 있다. 유씨 부인은 사대부 가문으로 시집갔으나 과부가 되어 삯바느질을 하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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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녀재봉(三女裁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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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모와 침선가 외에도 궁궐 안의 상의원(尙衣院)에는 침선장(針線匠)을 두어 왕과 왕실 가족의 침선을 맡게 하였다. 상의원은 원래 경복궁 영추문 안과 창경궁 성인문 안에 있었는데 내의원과 혜민서의 의녀(醫女)들이 가무(歌舞)를 겸행하듯이 상의원 소속의 궁녀들은 침방과 수방에서 왕과 왕비의 옷을 만들어 바치는 일을 하면서 기업(妓業)을 겸하여 이를 상방 기생(尙房妓生)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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