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3장 궁궐 안 특별한 사람들의 옷차림
  • 2. 왕실 혼례의 옷차림
  • 왕의 혼례복
임재영

왕의 혼례복으로 납채·친영·동뢰연 의식에 입는 면복은 왕 최고의 예복으로 혼례 때 외에도 나라의 큰 경사가 있을 때 주로 착용하였다. 면복은 면류관(冕旒冠)과 곤복(袞服)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례와 즉위식, 명절(정월 초하루와 동지) 때 하례식 등에 입는 대례복(大禮服)이자, 종묘와 사직에 제사 지낼 때 입는 제복(祭服)이었다.

면복은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고려시대부터 착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명칭에 대한 기록은 1065년(문종 19) 거란에서 전래된 때부터 보이는데, 이것은 구류면 구장복(九旒冕九章服)이었다.154)유희경·김문자, 『한국 복식 문화사』, 교문사, 1998, 117쪽. 조선시대에는 1403년(태종 3)부터 왕이 즉위할 때마다 명나라로부터 왕으로 인정한다는 고명(誥命)과 함께 면복을 사여받았다.155)『태종실록』 권6, 태종 3년 10월 신미. 이때의 제도는 중국 관복 제도의 이등 체등 원칙(二等遞等原則, 2등급 낮게 책정)에 따라 중국 황제와는 등급이 달랐다. 그러나 구한말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로 격상되면서 황 제의 면복 제도인 십이류면 십이장복을 착용하였다.

면복은 왕과 왕세자, 왕세손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이다. 따라서 면복에는 왕의 위상과 역할을 상징하는 의미가 전체 구성과 각 부속물의 곳곳에 가득 담겨 있다. 주로 무늬로 그 의미를 표현하는데 각 부속물에 표현된 무늬가 9종류이면 구장복, 12종류이면 십이장복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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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관복도
원유관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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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衣)·상(裳)·중단(中單)·대대(大帶)·혁대(革帶)·폐슬(蔽膝)·패옥(佩玉)·수(綬)·방심곡령(方心曲領)·규(圭)·말(靺)·석(舃)으로 구성되는 일습(一襲)을 이루는 옷을 곤복이라 한다. 의는 심청색이나 현색의 사 또는 견으로 만든다. 깃·도련·소매 끝에는 의색(衣色)과 같은 색의 선을 두르며, 다섯 개의 장문을 그려 넣는다. 양어깨에는 용(龍), 등에는 산(山), 양 소매에는 화(火)·화충(華蟲)·종이(宗彛)의 무늬를 그렸다. 상은 붉은색 무늬가 있는 비단으로 만들며 조(藻)·분미(粉米)·보(黼)·불(黻)의 네 개 무늬를 수놓는다. 의와 상에 있는 무늬의 개수로 구장복인지 십이장복인지를 구 별한다. 십이장복에는 황제의 상징인 해·달·별의 세 가지 무늬가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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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복
구장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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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는 왕의 위상과 왕이 갖추어야 될 덕목과 역할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용은 상상의 동물이지만 신기한 변화를 일으키는 존재로 여겨 왕의 무한한 능력을 기대하는 마음을, 산은 구름을 감싸 안아 비를 가져다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여 농사가 잘되어 나라가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상징한다. 화는 불꽃무늬로 세상을 밝게 비춘다는 의미이며, 꿩무늬인 화충은 문장력이 뛰어나고 글씨체가 수려하다는 뜻이다. 종이는 제기(祭器) 안에 호랑이와 원숭이 무늬를 그려 넣은 것인데 호랑이는 용맹함을, 원숭이는 지혜로움을 상징한다. 조는 풀줄기가 뻗어 가는 모양으로 문장력과 글씨의 수려함을 의미하며, 분미는 곡식 알갱이가 모여 있는 무늬로 선량한 백성을 나타낸다. 보는 도끼무늬로 결단력을, 불은 기(己) 자를 서로 등진 모양으로 악을 멀리하고 선을 가까이 함을 뜻한다. 이러한 아홉 가지 무늬 이외에 더해지는 해·달·별은 우주 만물의 중심이라는 의미로 황제에게만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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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십이장복 착용 모습
순종의 십이장복 착용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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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은 백색의 사로 만들며, 깃·도련·소매 끝에는 청색 선(襈)이 둘러지고, 옷깃에 11개의 불문(黻文)이 있다. 대대는 홍백(紅白)의 무늬 없는 비단으로 만든다. 폐슬은 상의 색과 같이 하고, 상과 같은 무늬를 수놓으며, 다섯 가지 색으로 된 실띠와 두 개의 둥근 고리형의 옥구(玉 鉤)가 달려 있다. 수는 흰색 바탕에 백·표(縹)·녹의 세 가지색으로 짠다. 규는 청색 옥으로 만들며, 적색의 버선과 신을 신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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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어진
고종 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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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복에 쓰는 관모는 면류관으로 앞뒤로 유(旒, 구슬)가 늘어진 것이 특징인데 겉은 검은색, 안은 붉은색이다. 머리에 닿는 부분 위에 네모난 천판이 놓이고, 천판의 앞뒤에 구슬을 꿴 형태의 면류를 단다. 앞이 뒤보다 1촌(寸) 정도 숙여지므로 ‘면(冕)’하다 하여 면관이라 하며, 황제는 십이류면에 일곱 가지 색의 옥을, 왕은 구류면에 다섯 가지 색의 옥을, 왕세자는 칠류면 또는 팔류면에 세 가지 색의 옥을 꿴다. 양옆 귀 부위에는 솜으로 동그랗게 만든 광(纊)을 붙이고 끈 형태의 진(瑱)을 늘어뜨렸다. 유·광·진의 장식은 왕의 역할과 위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유는 시야를 밝혀 사물을 가려 보라는 의미이며, 양옆의 광과 진의 장식은 귀를 막아 진언(眞言)을 가려서 들으라는 뜻이 담겨 있다.156)유희경·김문자, 앞의 책, 190∼192쪽. 구장복은 현재 고궁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으며, 고종이 입기 시작한 십이장복은 순종이 착용하고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납징·고기·책비 의식에 입는 예복인 원유관·강사포는 왕의 조복으로 면복 다음가는 왕의 예복이다. 가례 이외에도 초하루 보름의 제사 의식인 삭망(朔望)과 이른 아침 강연관(講筵官)이 왕에게 학문을 강연하는 조강(朝講), 동지나 정월 초하루, 왕의 생일 등의 경사스런 날에 왕에게 옷의 겉감과 안감을 바치는 의식인 진표리(進表裏), 신하가 왕을 뵙고 알현하는 의식인 조현(朝見) 등의 의식에 입었다. 또 가례에서는 가례 후 대비전에 인사 올리는 조현 때에도 입었다.

강사포는 면복의 곤복과 제도는 같으나 무늬가 없고 색이 다르다. 포·상·폐슬은 진홍색(絳色), 중단은 백색(깃·수구·도련은 붉은색)이다. 원유 관은 아홉 개의 검은색 양(梁)이 장식되었으며 금잠(金簪)을 꽂는다. 대한제국 때 고종 황제는 원유관 대신 12량인 통천관(通天冠)을 썼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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