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3장 궁궐 안 특별한 사람들의 옷차림
  • 3. 궁궐 안의 특별한 옷차림
  • 후계자 임명식, 왕세자 책봉례
임재영

조선시대에 왕의 후계자는 세자 책봉례를 거쳐야 공식적으로 인정되는데 책봉에 관한 의식과 규정은 『국조오례의』에 수록되어 있다.159)『국조오례의』 권4, 가례, 왕세자 책봉 의식. 보통 책봉례는 성인식인 관례를 행한 후 길일을 택하여 거행한다. 책봉되는 세자는 문무백관과 종친들이 모인 자리에서 왕으로부터 임명장인 죽책문(竹冊文)을 받는다. 죽책문은 대나무로 만든 책에다 임명 사실을 기록한 문서이며,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종이 대용으로 대나무를 사용하던 데서 비롯된 유풍이다. 세자는 왕이 세자에게 당부하는 글인 교명문(敎命文)과 세자를 상징하는 도장인 세자인(世子印)을 전달받으며 중국 황제가 세자로 인정한다는 고명을 받는다. 의식 후에는 성균관(成均館)에 가서 공자의 위패를 모신 문묘(文廟)에 예를 올리는 의식인 작헌례(酌獻禮)로 끝맺음을 한다.

세자 책봉은 대신들의 요청으로 시작된다. 원자의 나이와 학문이 세자로서 손색이 없다는 점이 강조된다. 대신의 요청을 받은 왕은 봄철 길일을 택하여 책봉례를 행하도록 명한다. 일정한 형식을 따르는 책봉례인 만큼 의식의 절차와 갖추어야 할 예비물도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모든 사항은 『국조오례의』에 기록되어 있다.160)신명호, 『조선 왕실의 의례와 궁중 문화』, 돌베개, 2002,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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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효세자책례계병
문효세자책례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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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 책봉례는 원자를 세자로 책봉한다는 임명서를 수여하는 임명 의식이다. 원자를 세자로 책봉하는 임명권자는 왕이지만, 사후에 형식적으로 중국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몹시 엄숙하게 진행되는 세자 책봉례는 대궐 정전 앞에서 행해진다. 문무백관과 종친들은 지위에 따라 문신은 동쪽에 무신은 서쪽에 선다. 조정의 관리들을 모아 놓고 책봉례를 거행한 이튿날에는 종친·문무백관이 왕과 왕비에게 축하하는 의식이 있으며, 이어서 당사자인 왕세자에게도 축하한다. 이러한 의식을 마친 후 길일을 택하여 종묘에 이 사실을 고하고 백성에게 알린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세자의 임명을 선포하는 셈이다.

책봉례 때 왕세자는 면복을, 문무백관은 금관 조복을 입어 최고의 의식임을 과시하였다. 1784년(정조 8)에 거행된 문효세자의 책봉례 장면을 묘사한 문효세자책례계병(文孝世子冊禮契屛)에서 금관 조복을 입은 문무백관이 하례를 드리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왕세자의 면복은 왕의 면복과 약간 차이를 두었는데 면류관의 유가 8류이고 무늬의 수도 일곱 개로 팔류면 칠장복이다. 칠장문은 의에 세 개(화·화충·종이), 상에 네 개(조·분미·보·불)가 표시되는데 왕의 무늬 아홉 개에서 산과 용 무늬가 제외된 것이다. 이후 왕세자는 공인된 차기 왕 후보자로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는 왕과 더불어 면복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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