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4장 상징과 의미가 가득한 의례복
  • 2. 상투 틀고 쪽 찌는 관례복
  • 상투 틀고 갓 쓰는 총각
이은주

‘상투 틀고 갓 쓴다’는 말은 어른이 된다고 하는 남자 관례의 상징적인 표현이다. 관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고려사』에서 처음 보인다. 965년(광종 16)에 왕자가 원복(元服)을 입는 예식을 치렀으며181)『고려사』 권2, 광종 16년 2월. 1121년(예종 16) 봄 정월에도 왕세자의 관례를 거행하고 백관이 글을 올려 축하하였다.182)『고려사』 권14, 예종 신축 16년 정월 신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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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안 초상
김이안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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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朱子)의 『가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조선에서는 건국 초부터 관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1404년(태종 4)에 공신과 종친의 후손들에게 『가례』의 내용에 따라 열다섯 살에 관례를 행하도록 하였다.183)『태종실록』 권8, 태종 4년 8월 갑오. 그러나 조선 초에는 제도가 갖추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관례를 행하지는 않았다. 세조 때에도 종실 자녀에서부터 사대부의 자녀에 이르기까지 열세 살이 되면 관례를 행하되, 관례를 치르지 않은 자는 입학을 허락하지 말자는 등의 제재를 함으로써 관례를 실행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하였다.

사대부가 자녀들의 관례는 중종 때조차도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184)『중종실록』 권26, 중종 11년 11월 병신 ; 권34, 중종 13년 7월 갑자. 1534년(중종 29)에 상류층에서만 관례를 행하기 시작하여185)『중종실록』 권77, 중종 29년 3월 경오. 선조 때 비로소 사대부가 자녀들의 관례가 행해졌다.186)『선조실록』 권44, 선조 26년 11월 신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기 영조대에도 관례를 하지 않는 사람 들이 있었는데, 이는 관례가 사치스러워짐에 따라 부자처럼 관례를 치르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이다.187)『영조실록』 권70, 영조 25년 9월 병인.

관례를 치를 사람이 처음 등장할 때 입는 옷인 초출복(初出服)은 어린아이가 평상시 입는 평상복을 말한다. 머리 모양은 땋아 내린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의례를 중시하는 집안에서는 중국 어린아이의 머리 모양인 쌍계(雙髻)를 하기도 하였다. 관례를 치를 동자는 채색 옷을 입는데 동자가 화려한 옷을 즐기기 때문이다.188)김장생(金長生), 『가례집람(家禮輯覽)』 제2, 관(冠). 그래서 조선 후기에는 색이 고운 사규삼을 즐겨 입었다.

초가 때는 관직이 없는 자의 옷이자, 선비들의 옷으로 인정되었던 심의(深衣)에 치포관(緇布冠)이나 복건을 착용하였다. 치포관이나 복건은 검은 옷감으로 만들었으며 심의 역시 대포(大布), 마포(麻布) 등의 소박한 옷감을 사용하였다. 이렇듯 심의를 입는 초가를 통해 고고한 선비의 자세를 가르치고자 하였다. 김이안(金履安, 1722∼1791)의 초상화에서 복건을 쓰고 심의를 입은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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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구 초상
윤봉구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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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 때에는 성인의 옷인 갓에 도포를 입었다. 이는 대장부로서의 기본 자세를 깨우쳐 주기 위한 단계에 적절한 옷이다. 그리고 삼가 때에는 대부(大夫)의 옷인 공복이나 생원·진사 창방(唱榜) 때 입는 옷인 난삼(襴杉)을 입도록 하였다. 삼가에 난삼을 입는 것은 생원이나 진사 합격을 기원하는 마음과 함께 관리로서의 몸가짐을 익히고자 하는 마음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윤봉구(尹鳳九, 1725∼1775)의 초상화에서 동파관(東坡冠)에 난삼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른 의례복도 그렇듯이 관례복 역시 시대에 따라 옷의 종류나 형태가 바뀌었다. 그리고 집집마다 관례의 시기나 구체적인 절차, 관례의 단계에 따라 입는 옷도 차이가 있었다. 또한, 삼가의 관례 절차를 모두 따르는 것도 아니었다. 간략하게는 사대부의 기본적인 옷이라고 할 수 있는 갓과 도포, 세조대, 운혜 일습(一習)으로 갈아입는 한 번의 단계로 관례를 치르는 경우도 있었다.189)수산(綏山), 『광례람(廣禮覽)』 혼인제구(婚禮諸具) 부혼구(附昏具)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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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례 모습
관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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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옷을 갈아입는 과정은 태어나 성인으로서 이루어야 할 목표와 삶의 방향을 일러 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단계별로 옷을 바꾸어 입는 경우, 각 단계별로 격을 높여 가며 입는 원칙은 항상 지켜졌으며 아울러 그 시대에 그 옷이 지닌 의미를 적용하여 관례의 단계별로 유지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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