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4장 상징과 의미가 가득한 의례복
  • 3. 남녀의 가약을 맺어 주는 혼례복
  • 초례의 신부복, 홍장삼
  • 활옷 무늬와 상징성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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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온공주 활옷
복온공주 활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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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옷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830년(순조 30)의 복온공주(福溫公主, 1818∼1832)의 활옷이다. 복온공주는 순조의 셋째 딸로, 열세 살인 1830년에 공조 참판 김연근의 외아들 김병주에게 시집갔다. 그때 활옷을 입었는데 현존하는 민간의 활옷과는 문양이나 구성법이 약간 다르다. 화려하게 수를 놓은 활옷에는 원앙문 부금이 장식되어 있다. 마치 수놓은 홍장삼에 노의(露衣) 조각을 붙여 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미국 부르클린 박물관에도 노의의 금박 무늬가 찍힌 조각과 활옷의 자수 조각을 이어서 만든, 활옷인지 노의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214)Young Yang Chung, silken threads, Abrams, 2005, 316∼319쪽, 360∼361쪽. 이러한 유물들은 대한제국 말기에 홍장삼과 노의 조각을 이어서 만든 신부의 활옷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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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왕실의 혼례
1930년대 왕실의 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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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온공주의 활옷에는 연화, 모란, 국화, 석류, 나비 등 10여 종의 화조문(花鳥紋)과 윤보문(輪寶紋) 등 15종의 보문(寶紋)이 장식되어 있다.215)이상은, 『조선 왕조 복식사론』, 일지사, 1992, 161∼162쪽 ; 박성실·조효숙·이은주, 『조선시대 여인의 멋과 차림새』, 단국대학교 출판부, 2005, 162쪽. 복온공주의 활옷 무늬와는 조금 다르지만 덕온공주의 활옷 수본(繡本)216)석주선, 『한국 복식사』, 보진재, 1980, 672쪽.도 일부 전해지고 있는데 봉황과 새끼 봉황, 파도와 괴석, 물결, 가로띠형 무늬에 영지(靈芝)와 작은 꽃이 장식되어 있다. 또한, 1930년대로 추정되는 왕실 혼례 사진에서 신부가 여전히 수놓은 활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1960년에 창덕궁 화재로 타고 남은 활옷 조각에서도 물결, 괴석, 꽃무늬와 봉황, 주위에 다섯 마리의 새끼 봉황이 장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217)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 박물관, 『명품』 하, 2005, 114쪽. 이들 활옷은 모두 궁중 활옷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늬의 구성이나 배치 방법 등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수를 놓는 이의 미적 감각과 역량이 마음껏 표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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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옷의 뒷모습
활옷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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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용 활옷 역시 종류에서는 궁중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꽃과 모란 같은 꽃무늬, 봉황이나 백로, 원앙 같은 새무늬, 물결과 괴석 등의 장생문(長生紋), ‘이성지합(異姓之合)’, ‘백복지원(百福之源)’, ‘만복지원(萬福之願)’ 등의 길상문자문(吉祥文字紋)이 흔히 사용되었다. 부위별로 활옷을 살펴보면 앞길 하단에는 봉황을 중심으로 물결과 괴석, 꽃무늬를, 어깨에는 모란을, 뒷길 하단에는 물결과 괴석, 연꽃을 배치하고 연꽃 좌우에는 백로 한 쌍을 표현하였다. 연꽃 위로는 앞길 어깨와 연결된 모란을 배치하고 등쪽 좌우에는 ‘만복지원’과 ‘이성지합’을 각각 배치하였다. 앞면보다는 뒷면에 더 많은 수 장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삼에도 뒷길 하단 부분에 물결과 봉황, 꽃 등을 배치하였다.

특히, 연꽃과 모란, 나비 등은 남녀의 인연, 사랑 등을 상징하였다. 활옷 유물을 보면 연꽃과 모란꽃의 봉오리나 소담스럽게 핀 무늬가 많다. 보통 연꽃의 의미를 불교 사상과 연결시키기도 하지만 활옷의 연꽃은 인연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싶다. 중국 민간에 퍼져 있는 연꽃에 얽힌 의미나 꽃말은 남녀의 애정이나 화합과 관련된 것이 많다.218)나카무라 고이치, 조성진·조영렬 옮김, 『꽃의 중국 문화사』, 뿌리와 이파리, 2004, 143쪽. 합근례에 해홍사(解紅絲)라고 하는 붉은 줄로 신랑 신부의 술잔을 묶는 것 역시 부부의 인연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처럼 혼례에는 인연을 상징하는 많은 것들이 동원되었다.

한편, 활옷의 뒷길에는 연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는데 그 좌우에 흰 해오라기가 한 마리씩 표현되어 있다. 옛날에 그림을 그릴 때도 연꽃에는 해오라기를 함께 그렸다219)빙허각 이씨(憑虛閣李氏), 정양완 역주, 『규합총서(閨閤叢書)』, 보진재, 1984, 143쪽.고 하는데 그림 그릴 때 무늬를 조합하는 요령이 활옷의 무늬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던 것이다.

부귀와 애정의 상징인 모란 역시 활옷 무늬에서 빠지지 않는다. 모란을 부귀화로 일컬어 부유한 재산과 높은 지위를 가리켰던 것은 모란이 주는 호화스러운 인상 때문이었다. 그리고 본초학적(本草學的)으로 볼 때 모란은 부인과의 여러 질환에 약효가 있으며 이 경우도 ‘생식’, ‘다산’에서 파생된 ‘애정의 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220)나카무라 고이치, 앞의 책, 84∼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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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편람』에 제시된 염의
『사례편람』에 제시된 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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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모란에는 사슴을 그리되 나비를 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221)빙허각 이씨, 정양완 역주, 앞의 책, 143쪽. 모란 곁에 나비가 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비 는 여름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부부간의 금실을 상징하기도 한다.222)C.A.S. 윌리엄스, 이용찬 외 옮김, 『환상적인 중국 문화』, 평단문화사, 1985, 69쪽. 그러므로 나비 역시 남녀의 사랑을 뜻하는 곤충이다. 상상의 새인 봉황과 봉황 새끼, 장수를 의미하는 물결과 불로초, 괴석 등도 자주 등장한다.

등 좌우에는 주로 ‘이성지합’, ‘만복지원’ 등의 좋은 의미를 담은 문자문도 사용되었다. 활옷 전체를 가득 채우는 하나하나의 무늬는 의례복식 중에서도 활옷이 가장 많은 상징과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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