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5장 전통 사회의 패션 리더들
  • 2. 유행 스타일은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 조금씩만 새롭게
이민주

유행은 새로움의 산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옛것을 토대로 하여 좀 더 새로운 것을 원할 뿐 아주 새로운 참 의미의 유행은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통 유행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보이는 대신에 스스로를 갱신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즉, 옛것을 통하여 새로운 것을 얻는 것이다. 옛것이 새롭게 비쳐지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새롭게 남의 시선을 끄는 것 역시 사람들은 구성의 일부분에만 관심을 갖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심리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청연군주(淸衍君主, 1754∼1821)의 저고리를 보면, 기본 형제(形制)와 세부 구조는 달라짐이 없는데도 등 길이와 소매가 절반 이하로 줄자 새로운 스타일로 인식하게 되었다. 깃 모양에서도 직사각형의 목판깃이 조선 초기에는 완전히 밖으로 내어 달렸다가 점차 들여 달린 반목판깃으로 변하였다. 그 후 동그래깃에 깃 코를 약간 깃 밖에 내어 달아 코를 형성한 당코깃이 되자 새로운 양식의 저고리로 인식하게 되었다.

치마는 저고리만큼의 변화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구성에 있어서 수산리 고분 벽화의 여인들의 치마와 신윤복(申潤福, 1758∼1813 이후)의 야금모행(夜禁冒行)에서 보이는 기생의 치마 모두 허리에 주름을 잡아 말기를 단 똑같 은 형태이다. 그런데도 치마를 자연스럽게 착용하였는지, 아니면 치맛자락을 걷어 올려 몸에 밀착시켜 착용하였는지에 따라 전혀 새로운 형태의 옷으로 인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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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리 고분 벽화의 치마
수산리 고분 벽화의 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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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치마의 여밈 방향이 새로움을 표현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른손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인 문화이기 때문에 여미기 편리한 오른쪽 여밈이 오랜 기간을 거쳐 형성되었다. 안동 권씨(1664∼1722) 묘에서 출토된 염습의는 오른쪽 여밈으로 되어 있다.273)경기도 박물관, 『조선의 옷매무새』, 민속원, 2002, 66∼67쪽. 그러나 18세기 풍속화에서는 오른 여밈과 왼 여밈이 공존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노론가인 안동 김씨의 출토물에서는 왼 여밈이 보이고 있다. 이는 노론이 다른 당파와의 차별화를 위하여 치마 여밈을 오른 여밈에서 왼 여밈으로 바꾼 것인데,274)이은주, 「한국 전통 복식에 투영된 좌우 개념」, 『복식』38, 1998, 346∼347쪽. 이 또한 새로움을 원하는 노론 측 사람들의 내면적 추구의 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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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권씨 치마
안동 권씨 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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