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5장 전통 사회의 패션 리더들
  • 3. 사대부가의 차림새
  • 초피 명품족
이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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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피를 두른 쓰개류와 토시
초피를 두른 쓰개류와 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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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피(貂皮)는 방한모인 남바위, 풍차, 갖저고리, 배자, 토시 등의 가장자리를 장식하는 담비털로 모피류 중 최상에 해당한다. 평안도와 함경도의 토산품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여진족에게서 얻었다. 물량이 많지 않아 공물 충당에도 무리가 있어 여러 번 감량하였으나 초피의 무역은 줄지 않고 오히려 농기구나 철물 등을 주고 여진족으로부터 구입하기까지 하였다. 이는 풍속이 사치를 숭상하여 복식에 초피와 서피(犀皮)를 사용했기 때문이다.306)『명종실록』 권11, 명종 6년 5월 기해.

초피의 사용에 대한 규정을 보면, 품계가 4품에 이르면 초피 이엄을 착용하고, 모구(毛裘)는 노인들만 쓰도록 하여 사용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나 이 젊은 부녀자들도 모두 초구(貂裘)를 입는가 하면, 이것이 없으면 다른 사람과 만나기를 부끄럽게 여겼다. 모임에 나온 수십 명의 부녀자들 중에 초구를 입지 않은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하였으니,307)『명종실록』 권11, 명종 6년 7월 경자. 초피의 유행 정도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피가 생산되지 않는데 천민까지도 모두 초피를 쓰고 다니기 때문에 초피의 값이 평소보다 네다섯 배나 비쌌으며,308)『선조실록』 권135, 선조 34년 3월 을묘. 조선 중기 이후에는 초피를 무역에만 의존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숙종 때에는 강원 감사뿐 아니라 역관들이 기생을 위하여 초피를 들여와 천류(賤流)들도 모두 초피를 입었다.309)『숙종실록』 권46, 숙종 34년 12월 을묘. 기생을 비롯한 천류들의 사치가 이러할진대 부녀들의 사치는 어떠했을까.310)『영조실록』 권47, 영조 14년 2월 병신. 이처럼 초피로 만든 여모나 이엄 등은 사대부가 부인들의 방한용 난모로 즐겨 사용되었으며, 일반 백성뿐 아니라 기생에 이르기까지 널리 유행하는 명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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