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5장 전통 사회의 패션 리더들
  • 5. 조선의 커리어우먼, 기생
  • 마무리는 은장도로
이민주

노리개는 궁중이나 상류 사회에서 평민에 이르기까지 여인들이 애용하던 장신구로 궁궐이나 민가에서 경사가 있을 때 달았으며 간단한 것은 일 상생활에서도 즐겨 사용하였다. 장신구로 착용하는 노리개는 방아다리와 같이 귀이개로 사용하여 실용적인 목적을 겸하기도 하였다. 또 가슴 앞에 차는 바늘통은 여인들의 일상인 침선(針線)을 위한 바늘이기도 하지만 급체하였을 경우 손을 따기 위한 비상 도구 구실도 하였다.

은장도 또한 노리개와 같이 장식적인 목적으로 차기도 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순결을 지키는 데 사용되었다. 조선시대는 ‘내외법’을 법률화시키면서 여성들의 실생활에 상당한 규제를 두었다. 특히, 양반 여성들은 외출할 때 걸어서 다닐 수 없고 반드시 가마를 이용하거나 얼굴을 가려야 했다. 훤한 대낮이라도 뜰에서조차 놀면 안 되고 이유 없이 대문 밖 출입을 해서는 안 되었다. 외출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도 제한되어 사촌 이상은 만나기 힘든 감옥 같은 생활을 하여야 하였다. 남녀가 말도 섞지 않는 상황에서 비록 대문간이라 하더라도 남녀가 유별하니 굳게 닫힌 대문의 안과 밖에서 얼굴도 보지 않은 채 목소리만 오갔다.323)김용숙, 『한국 여속사』, 민음사, 1990, 160쪽.

확대보기
은장도 노리개
은장도 노리개
팝업창 닫기

이리 오너라! 김 생원 계시냐고 여쭤라.

안 계시다고 여쭤라.

어디 가셨냐고 여쭤라.

박동 이 주사 댁에 가셨다고 여쭤라. 그런데 어디서 오셨느냐고 여쭤라.

이렇게 남녀의 관계가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은장도가 과연 무슨 필요가 있었을까? 더욱이 기생이라고 하는 신분에 있어서랴. 여기서 우리는 여성 심리의 양면성을 또 한 번 상기해야 한다. 기생은 시와 서예 능한 교양인으로서 남성 사회의 관심 인물이지만 천인 신분으로 남자들의 노리개에 지 나지 않았다. 따라서 대부분의 기생은 기생으로서의 삶보다는 일반인으로서의 삶을 원했으며, 벼슬아치의 첩이 되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하였다. 물론 기생의 복식이 당시의 새로운 유행 스타일로 반가 부녀자들의 복식 구조를 바꿔 놓은 것도 사실이지만, 양반 사대부의 첩이 되어야 하는 지상 최대의 과제를 갖고 있는 기생에게는 늘 양반 부녀자의 복식이 관심사였을 것이다.

짧아지고 좁아진 저고리, 짧게 걷어 올려 휘감아 입은 치마, 짧아진 치마 아래로 드러난 겹겹의 속옷 등 의도된 노출을 통한 성적 매력을 표현하는 동시에 은장도로 정숙성을 강조하는 완벽한 미의식의 추구는 기생의 복식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을 것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