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6장 멋스러움과 단아함을 위한 치장
  • 1. 머리치장
  • 계절 따라 쌍가락지도 다르게
송미경

가락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인의 징표로 많이 사용하였다. 동아대학교 소장 미인도에는 산호 비녀와 짝을 이룬 산호가락지를 엄지손가락에 낀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가락지는 보통 쌍을 이루고 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굵은 은가락지를 옷고름에 차서 노리개 대용으로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헌종의 후궁인 순화궁(順和宮) 경빈 김씨(慶嬪金氏)는 삼간택(三揀擇)까지 올랐으나 궁중의 정치적 영향으로 후궁이 되었다. 헌종이 왕자 때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고 후궁이 되고 난 뒤에도 왕비보다는 경빈 김씨를 훨씬 더 아꼈다고 한다.376)김용숙, 『조선조 궁중 풍속 연구』, 일지사, 1987, 429∼432쪽. 경빈 김씨의 것으로 전해지는 『사절복색자장요람(四節服色資粧要覽)』이 있다. 이 자료는 행사 때 입는 옷과 장신구를 기록해 놓은 일종의 수첩이다. 이에 의하면 “겨울인 10월부터 정월까지는 금가락지, 2월과 4월에는 은칠보가락지, 5월 단오에는 옥가락지나 마노를, 더위가 심한 8월에는 칠보가락지를 껴서 9월까지 계속한다. 규칙이 이러하니 여름에는 금을 못 끼고, 겨울에는 옥을 못 끼지만 봄가을에는 마음대로 낀다.”377)『졀복장요람』고 하고 있어 계절에 따라 가락지를 바꿔 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궁중의 제사 에는 호사로운 패물을 몸에서 제거했지만 호박으로 만든 가락지는 해도 된다고 하였다. 이는 서양에서 진주가 장례식에서 할 수 있는 장신구인 것처럼 조선 왕실에서 호박이 그런 역할을 하는 패물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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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절복색자장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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