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6장 멋스러움과 단아함을 위한 치장
  • 2. 몸치장
  • 선명하게 허리를 강조한 남자 허리띠
송미경

조선시대 남자의 외투인 포류(袍類)에는 허리에 매는 허리띠가 필수이다. 허리띠는 옷을 단정히 하는 구실도 있지만, 장식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신분을 구별하는 표식으로 기능하기도 하였다. 물론 어느 정도 엄격하게 지켜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경국대전』에는 “1품에서 3품은 홍조아(紅絛兒), 4품에서 9품은 청조아(靑絛兒)를 띤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고종 때는 “당상관의 띠는 홍색과 자색, 당하관의 띠는 청색과 녹색, 유생(儒生)은 혁대(革帶)를 사용”하도록 되어 있지만 남아 있는 조선 후기 유물은 매우 다양한 색상의 허리띠들이어서 정확한 실상은 파악할 수 없다. 허리띠에는 넓게 짠 광다회(廣多繪), 좁게 짠 세조대(細穡帶), 그리고 각대(角帶)가 있다.

광다회는 나비 2.5㎝ 내외로 비단실로 엮어 짠 것으로, 신하들이 왕의 행차를 수행하거나 외국에 사신으로 갈 때 입는 융복(戎服)인 철릭에 주로 하던 띠이다. 남아있는 유물로는 국립 민속 박물관 소장의 변수 묘 출토 광다회가 있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경기도 박물관 소장의 심수륜(沈秀崙, 1534∼1589) 유물이 있다. 이 유물은 약 60년 정도의 시기 차이가 있지만 형태는 매우 비슷하다. 길이는 400㎝ 내외이며, 매우 치밀하게 짠 끈 아래에 화려한 금편을 넣어 꾸민 장식과 풍성한 술이 달려 있다. 이러한 광다회는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전반의 출토 유물에서 종종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 유행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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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 묘 출토 광다회
변수 묘 출토 광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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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대는 한자어로 세조아(細絛兒), 사대(絲帶), 조대(絛帶)라고 하며 ‘술띠’라고도 한다. 세조대는 비단실로 짠 가는 띠로 평상복에 사용하는데, 중치막·도포·두루마기·답호 등의 웃옷에 주로 띠었다. 광다회와 마찬가지로 관리의 품계에 따라 당상관은 홍색·분홍색·자색 같은 홍색 계통을, 당하관은 청색과 녹색을, 상중(喪中)인 사람은 백색의 세조대를 사용하였다.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자화상에 보이는 세조대는 홍색으로 당상관들이 띠던 것이다. 이 세조대의 끝에는 사다리꼴 금편을 넣어 홍색 술띠 장식 아래로 금색이 돋보이며, 그 아래에 풍성한 술이 달려 있다.

이같이 단색으로 된 술띠 이외에도 오색실로 엮어 짠 조대가 있다. 이 오채조(五彩絛)의 술띠는 심의(深衣)에 착용하는 대대(大帶)를 동심결로 묶 은 위에 한 번 더 묶어 장식을 하는 허리띠이다. 심의는 유학자들이 입는 으뜸 예복인 법복(法服)으로, 소색(素色)의 바탕에 검정색 선이 가장자리에 둘린 포의 한 종류이다. 보통 포류에는 허리띠 하나만 하지만, 심의에는 가장자리를 검정색으로 두른, 심의의 옷감으로 만든 넓은 대인 대대 위에 다시 오채조를 띤다.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의 이재(李縡, 1680∼1746) 초상화에서 보이는 오채조는 매우 사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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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황 자화상
강세황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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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 초상
이재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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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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