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6장 멋스러움과 단아함을 위한 치장
  • 2. 몸치장
  • 아기자기한 주머니
송미경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전쟁, 반란 진압 등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을 공신으로 봉하고 상을 내려주며, 오늘날의 기념 사진에 해당되는 공신 초상화를 그려 주었다. 1506년 중종반정을 일으킨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에 임명된 유순정(柳順汀, 1459∼1512)의 공신상에는 다른 공신상이나 초상화와 달리 주머니가 그려져 있다. 원색에 가까운 화려한 관리복에 금실로 짠 공작흉배와 코뿔소 뿔 장식이 있는 허리띠는 1품 관리의 격에 맞는 당당함과 우아함을 나타낸다.

우리나라 한복에는 주머니가 없다. 구한말 개항기 때 들어온 조끼가 주머니가 달려 있었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우리 옷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봐서 주머니가 얼마나 필요했는지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의 풍속화를 보면 남자들이 여러 가지 주머니를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담배쌈지, 안경, 간단한 필기구 등 주머니나 가방에 넣어야 되는 것이 상당히 많다.

주머니는 모양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별한다. 모양이 둥글면 ‘두루주머니’, 귀의 끝이 뾰족하게 각이 있으면 ‘귀주머니’라고 한다. 궁중에서도 정월 첫 자일(子日)과 첫 해일(亥日)에는 콩을 볶아 붉은 종이에 싸서 주 머니에 넣어 찼다고 한다. 농가에서는 쥐(子)와 산돼지(亥)가 농작물에 피해를 주어 그것을 방지하고자 논두렁에 쥐불을 놓고, 궁중에서는 내시들이 횃불 행렬을 하며 “쥐부리 글린다. 돼지 부리 지진다.”라고 외친다. 그리고 곡식의 종자를 태워서 주머니에 넣어 신하들에게 주었다. 이것은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이었다. 주머니를 하사하는 풍습은 폐지되었다가 정조 때 다시 부활하였다. 주머니는 비단으로 만들었는데, 해낭(亥囊)은 둥글고 자낭(子囊)은 길다.380)유득공, 『경도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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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순정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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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소답청(年少踏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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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담배 따위를 넣고 다니는 작은 비단 주머니는 보통 오렌지색이나 파란색으로 언제나 옅은 색인 우리 옷에 단조로움을 없애 주었으며, 여인들 역시 작은 주머니 안에 보석, 가위, 은장도, 행운을 비는 호랑이 발톱, 향낭, 금은으로 만든 고누판을 가지고 다녔다. 이처럼 실용과 미를 겸한 주머니는 용도와 사람에 따라 색상, 소재, 문양 등을 달리하여 호화롭게 만들어 찼다. 그러나 상을 당하면 남녀 모두 흰 무명 주머니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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