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6장 멋스러움과 단아함을 위한 치장
  • 2. 몸치장
  • 여인의 소망을 담은 노리개
송미경

노리개는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허리에 차는 부녀자들의 장신구이다. 기원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된 우리 고유의 장신구 노리개는 조선시대에 와서 더욱 다채롭고 화려하게 발전하였다.

노리개는 몸체, 매듭 장식, 술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옷고름에 차기 위해 은이나 동으로 만든 핀에 해당되는 띳돈도 있다. 몸체부터 살펴보면 비녀와 마찬가지로 재료에 따라 명칭이 달라진다. 은으로 만들었으면 은노리개, 칠보 장식이 되어 있으면 은칠보노리개, 옥으로 만들었으면 옥노리개 등으로 분류한다. 또한, 몸체 부분의 모양에 따라 노리개의 명칭을 다시 붙인다. 은으로 투호(投壺) 형태를 만든 노리개이면 ‘은투호노리개’, 가지 모양을 옥으로 만들었으면 ‘옥가지노리개’라고 한다. 다시 노리개의 수에 따라 한 개면 단작노리개, 세 개면 삼작노리개라고 한다. 좀 더 분류를 한다면 은으로 만든 투호가 세 개 매달려 있고, 그 투호의 크기가 작으면 ‘은투호소삼작노리개’라는 긴 이름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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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작노리개
삼작노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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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작 혹은 삼작이라는 숫자의 개념은 근거가 없는 듯싶다. 작(作)이란 궁중의 행사 기록물인 발기나 의궤에 보면 하나하나의 개념이 아닌 ‘벌’의 개념으로 쓰고 있다. 즉, 저고리 두 벌이나 세 벌을 묶어 ‘작’이 되는 것이다. 저고리는 ‘작’으로 표현하였고, 노리개는 두 개나 세 개를 묶어 일줄(一乼)로 불렀다. 순종이 왕이 되기 전 관례를 치를 때 대전의 패물 단자(佩物單子)와 1882년(고종 19)에 행한 순종의 가례 때 패물 단자에는 ‘공작석 선도, 산호선도, 밀화선도 일줄’, ‘밀화몽이 산호수 옥엽 일쌍 일줄’, ‘산호주 밀화주 옥접 일쌍 일줄’의 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노리개 세 개를 묶어서 하나면 ‘노리개 일줄’이지 ‘삼작노리개’가 아닌 셈이다.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 엄씨가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에게 올린 1907∼1911년의 패물 발기의 패물 목록을 적은 문서에는 도금니장산호슈, 도금니장옥뎝일쌍, 도금매화장밀라뭉이는 대삼작으로 기록되어 있고, 비취옥편복, 백옥편복, 만호편복일, 산호투호, 밀라투호, 공작석투호일라고 기록되어 있어 대삼작노리개와 노리개 세 개를 묶어 ‘일’라고 부르는 것이 함께 있다. 순종의 가례 이후 30년 뒤 대삼작노리개가 등장한 것을 보아 그동안 노리개의 명칭이 달라졌을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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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의 혼인 사진
1916년의 혼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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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노리개를 착용할 것인가는 행사의 비중에 따라 달랐다. 1916년 혼인 뒤에 찍은 사진의 신부는 옷고름에 나비 띳돈으로 함께 묶인 은투호노리개를 하고 있는 모습이고, 1917년에 찍은 사진에는 치마허리띠에 나비 띳돈, 산호 가지 그리고 확실하지 않지만 옥나비, 밀화불수삼작노리개와 다른 허리띠 쪽에 니사향갑(泥絲香匣)과 다른 노리개 종류가 많이 달려 있다.

여인의 옷고름에 차는 노리개는 아름답게 꾸며줄 뿐 아니라 여인의 소망과 실용성을 나타내고 있다. 노리개의 모양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면 나비나 박쥐는 화려하고 복을 받기 위함이며, 방아다리·투호·가지 모양의 노리개는 자손의 번창을, 범발톱 노리개는 나쁜 악귀를 쫓는 뜻을, 원앙은 부부의 금실을 나타낸다. 투호란 조선시대 사대부 남자들의 놀이에 사용되는, 금속으로 만든 항아리 모양에 화살을 던져 넣는 기구이다. 남자들의 놀이인 투호를 노리개로 만들어 달면 사내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또한, 조선시대 여인들의 정절을 상징하는 은장도노리개, 그 밖에도 구급약이나 향을 보관하는 향갑노리개도 있다. 바늘집, 귀이개, 작은 족집게, 장도 등이 달린 실용적인 것도 있다. 또한, 비단에 수를 놓아 장식한 노리개도 있다.

노리개라고 하여 모두 보석으로 꾸민 것은 아니다. 조개껍질을 이용하여 만든 것은 어린아이가 엄마 곁에서 소꿉놀이처럼 바느질을 배우는 첫걸음에서 시작하는 노리개이다. 작은 조개껍질에 밥풀을 짓이겨 넣고 옷감 조각으로 조개껍질을 감싼 후 비단실로 작은 고리를 매달면 작은 노리개가 완성된다.

노리개에는 매듭과 술이 달려 있다. 노리개에 다는 매듭은 다양하고, 매듭에 몸체를 달아 몸체가 더욱 돋보이게 하는 구실도 하였다. 술의 모양에 따라 낙지발을 닮았다고 하여 낙지술, 딸기처럼 술의 머리가 둥근 딸기술 등으로 나뉜다. 매듭과 술을 만드는 실도 굵기와 형태에 따라 노리개를 더욱 아름답게 꾸미는 데 큰 몫을 한다.

노리개는 궁중에서 사용하는 것과 민가에서 사용하는 것을 구별하였다. 궁중에서 사용한 것이라고 알려진 비취발향노리개는 향을 원통형으로 만들어 자른 후에 물총새의 목덜미 털이라고 전해지는 비취모를 입히고 줄에 꿰어 발처럼 늘였다. 궁중에서 나이 든 상궁들이 치마 안에 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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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개
노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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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개는 많이 남아 있지만 조선 후기의 풍속화에는 노리개를 찬 여인들의 모습이 드문 편이다. 간송 미술관 소장의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는 가체가 유행한 조선 후기 여인의 아름다움을 잘 묘사하고 있다. 잘 빗어 땋은 머릿결이 하나하나 살아 있고, 가체 끝에 보이는 자색의 좁은 댕기와 귀밑머리, 그리고 좁고 짧은 저고리의 자색 당코깃과 견마기, 옥색 끝동, 그 아래로 살짝 보이는 다홍색의 속고름과 자주색 옷고름에 달려 있는 삼천주구슬노리개의 파란색 술과 주름이 하나하나 살아 있는 풍성한 남색 치마가 어우러져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조선 여인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다. 노리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손끝과 무심해 보이는 시선이 이 여인이 발산하는 조선의 아름다움이다. 또 노리개를 착용한 다른 그림으로는 동아 대학교 소장의 미인도가 있다. 이 그림에서 주인공은 옷고름에 장도로 보이는 노리개를 차고 있는데, 붉은색의 딸기술과 매듭 장식이 달려 있다.

순종 황제비가 입었던 황원삼과 거기에 단 노리개가 남아 있다. 이 노리개는 산호노리개, 옥나비 한 쌍, 그리고 밀화불수노리개가 띳돈에 달려 있다. 산호는 산호 가지를 그대로 살려서 만들었고, 옥나비는 옥판을 나비 모양으로 조각한 후 금도금 판을 옥나비 위에 올리고 그 위에 산호나 청강석, 진주로 장식하였다. 밀화불수노리개는 밀화로 부처님 손 모양을 닮았다고 하는 열대 과일인 불수(佛手) 모양을 조각하였다. 밀화는 소나무 송진이 오랜 시간 땅속에서 열과 압력을 받아 짙은 노란색이나 투명하게 변한 호박의 일종이다. 단단하며 색이 아름다워 여러 가지 모양으로 조각하여 여자들의 패물에 많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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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효황후의 대삼작노리개
순정효황후의 대삼작노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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