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6장 멋스러움과 단아함을 위한 치장
  • 2. 몸치장
  • 지식인의 상징, 안경
송미경

안경은 서양에서 발명되었다는 설과 중국에서 발명되었다는 설로 나뉜다. 중국에서는 안경을 중국에 전한 네덜란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애체(愛逮)’라고 불렀다. 중국을 통해 전래되었기 때문에 우라나라에서도 ‘애체’라고 하였다. 중국의 구전 설화 가운데 몽골 지방에서 모래 바람을 막기 위한 도구로 안경을 오랫동안 사용했다는 내용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안경이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명나라 장수 심유경(沈惟敬)과 왜의 승려 현소(玄蘇) 모두 작은 글자를 크게 보이게 하는 안경을 사용하여 가늘고 작은 글씨를 읽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보지 못하던 것이라고 하였다.381)이수광, 『지봉유설』. 안경은 송·원나라 이래로 있었으나 성행하지 않다가 명나라 선종 때에는 인기가 높아 좋은 말과 바꿀 정도로 비싸 아무나 사용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사용한다고382)이덕무, 『청장관전서』. 하여 안경이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정조가 안경을 썼다는 기록383)『정조실록』 권51, 정조 23년 3월 병인.이 있어 16세기 말부터 안경이 사용되어 18세기에 이미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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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경이 일반화되었다 하더라도 조선시대에는 자신보다 지위나 연령이 높은 사람 앞에서는 안 경을 쓸 수 없었다. 이러한 현실은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이어져, 심지어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볼 때 안경을 벗고 면접관을 응시했다는 일화가 심심치 않게 전해진다.

헌종 때 이조 판서를 지낸 조병구(趙秉龜, 1801∼1845)는 시력이 나빠 임금 앞에서도 안경을 써 임금으로부터 미움을 샀다. 당시 젊었던 헌종은 어린 자신을 무시해서 그가 안경을 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늘 불만을 품고 있던 헌종은 조대비(趙大妃) 앞에서도 안경을 낀 외숙 조병구를 발견한 뒤 크게 책망하고 물러가게 하였다. 이때 조병구는 충격을 받고 집에 와 극약을 먹고 자살하였다. 눈이 나쁜 조병구는 조대비의 친동생이었기에 누님 앞에서 안경을 쓰고 만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다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한 것이다. 이렇듯 임금과 친인척 사이에서도 안경을 쓴다는 것은 매우 불손한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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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화옹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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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문화가 다른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안경 착용을 두고 외교 분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1891년 일본 공사 오오이시(大石正己)는 고종을 알현하면서 안경을 벗지 않았다. 내시들은 통역을 맡은 현영운(玄暎運)에게 안경을 벗을 것을 종용했지만 오오이시는 끝내 벗지 않았다. 고종은 몹시 불쾌했지만 외국의 사신인 까닭에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차후 조정에서는 우리나라를 얕보고 임금에게 불경한 태도를 보인 오오이시의 무례한 행동을 문제 삼아 항의 문서를 일본 정부에 전달했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왕의 노여움을 풀 방법이 없었던 신하들은 통역을 맡았던 현영운만 애꿎게 매질하여 유배하였다.384)금복현, 『옛안경과 안경집』, 대원사, 1990, 66∼108쪽.

조선시대의 안경은 둥근 것이 많으며, 테는 대모나 우각 등으로 만들었다. 안경다리는 금속으로 만들어 꺾은 것은 꺾기다리, 실로 귀에 걸 수 있 게 한 것을 실다리라고 한다. 안경이 필요에 의한 실용성이 중시되는 물건이긴 하지만 안경집은 안경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실용적인 용도와 더불어 허리춤에 주머니와 함께 매달고 다님으로써 장신구 역할도 하였다. 접을 수 있었던 안경은 접어야만 안경집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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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과 안경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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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집을 만드는 재료는 오동나무부터 자수, 가죽, 어피, 나전칠기 등 매우 다양하였다. 자수 안경집은 유명한 글귀나 사군자를 수놓아 선비의 품격을 드러내었다. 상어 껍질로 만든 안경집도 있다. 상어의 거친 비늘을 숫돌에 갈면 매끈해지면서 작은 물방울무늬가 나타난다. 이러한 안경집은 장식품으로도 손색이 없었기 때문에 돌을 맞는 아이들에게 채워 주는 주머니에도 작은 안경집 노리개가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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