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6장 멋스러움과 단아함을 위한 치장
  • 3. 발치장
  • 버선과 양말
송미경

전족의 문화가 비단 중국만의 것은 아니다. 조선에서도 자고로 발이 작은 여성을 미인으로 인식하였다. 치마 밑으로 하얀 버선과 꽃신이 살짝살짝 보일 때의 아름다움은 성장(盛裝)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버선은 한자로 하면 말(襪)이다. 양말(洋襪)은 서양에서 건너온 버선이라는 뜻이다. 신석정은 「고풍(古風)」이라는 시에서 우리 옷을 “분홍색 회장저고리 남 끝동 자주 고름 긴 치맛자락을 살며시 치켜들고 치마 밑으로 하얀 외씨버선이 고와라.”라고 읊었다. 외씨란 오이씨의 준말로 가늘고 끝이 뾰족한 모양을 버선코에 비유한 것이다. 언제부터 이런 버선을 신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임진왜란 전후에 사망한 인물의 무덤에서 요즈음과 같은 바느질법의 버선이 출토된다.

400년 전 버선의 모양은 지금과 조금 달랐다. 그 당시에는 남녀의 버선 모양이 다르지 않았는데, 지금과는 달리 매우 각이 진 모양이다. 시집가는 처녀가 버선을 혼수로 장만하여 어른들에게 선물하기도 하였지만, 형편이 넉넉하면 평생 신을 버선을 마련해 갔다. 그래서 혼수 가운데 버선만 머릿 장으로 하나 가득 채워갔다는385)경기도 박물관, 『경기도 사람 경기도 이야기』, 2005, 89쪽. 어른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렇게 혼수로 버선을 수십 죽(한 죽은 열 켤레)을 해간 것은 비단 1940∼1950년대의 일만은 아니었던 듯싶다. 곽재우 장군의 조카며느리인 진주 하씨의 무덤에서 솜버선이 18켤레나 출토되었다.386)유희경·김미자, 『망우당 곽재우 종질 곽주의 재실 진주 하씨 묘 출토 문헌과 복식 조사 보고서』, 건들바우 박물관, 1991, 3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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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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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은 여름에도 솜버선을 신었다고 한다. 가족마다 각자의 버선본이 있어 버선 옆에 이름이 써 있고, 버선본을 보관하는 버선본집 또한 정성스럽게 수를 놓아 보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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