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6장 멋스러움과 단아함을 위한 치장
  • 3. 발치장
  • 꽃신에서 비단 구두까지
송미경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현재 나이 사오십 대 어른들이 어렸을 때 많이 불렀던 노래이다. 노래 가사에 나오는 ‘비단 구두’는 정말 비단으로 만든 구두일까? 아니면 조선시대의 꽃신이었을까? 조선시대 여자의 신은 가죽신과 가죽 위에 비단을 덧입힌 비단신, 짚·부들·삼으로 만든 짚신과 미투리, 나무로 만든 나막신 등이 있다. 물론 재료로 구별하면 남녀 모두 동일하지만, 신의 형태와 크기가 다르다. 비단에 예쁜 수를 놓아 만든 신을 꽃신이라고 한다.

가죽신과 비단신의 바닥에는 징이 달려 있다. 징의 개수에 따라 마른신, 진신, 징신으로 다시 구별한다. 마른신은 날씨가 좋은 맑은 날에 신는 신을 말한다. 진신은 진날, 즉 흐리고 비가 와서 땅이 질척한 날에 신는 신으로, 신 자체에 들기름을 여러 번 칠하여 신의 겉면에 일종의 방수 처리를 하였다. 징은 비가 오고 난 뒤 땅이 질척하면 길이 미끄러운데 이때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하여 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날씨가 좋을 때 신는 마른신에도 밑창 가장자리에 징이 달려 있다. 이 징의 용도는 신을 오래 신기 위함이다. 이런 신은 한 두어 번만 신어도 바닥의 가죽이 금방 닳는다. 이렇게 딱딱한 신을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신었을까? 그 대답은 이러하다. 조선 후기 사대부 여인들이 실제 비단신이나 가죽신을 신고 땅을 밟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가마를 타고 내려서 댓돌까지 몇 걸음만 떼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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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혜
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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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도에 보면, 사대부가의 여인이나 기녀들은 매우 날렵한 비단신이나 가죽신을 신었고, 일반 서민들은 짚신을 신었다. 이러한 조선 후기 신의 형태는 1920년대 고무신에 고스란히 남았다. 특히, 오늘날 여자 고무신의 모습은 수백 년 이상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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