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6장 멋스러움과 단아함을 위한 치장
  • 3. 발치장
  • 짚신과 미투리
송미경

짚신과 미투리는 모양은 같으나 재료에 차이가 있다. 삼국시대의 짚신을 만드는 신발 골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짚신은 매우 오래전부터 신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료를 구하기 쉽고 만들기도 쉬워 남녀노소가 평상시에 즐겨 신었다. 짚신은 짚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요즈음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친환경적이다. 과거를 보러 가거나 보부상이 장사를 위해 먼 길을 떠날 때, 괴나리봇짐 옆에는 여행 일수와 비례한 짚신이 길게 매달려 있었다. 짚신의 신울을 세우는 총을 촘촘하게 많이 세우거나 듬성듬성하는 것으로 신분의 제약이 있었다 한다.

미투리는 삼, 왕골, 부들 같은 재료로 만든 것을 말한다. 은혜를 갚을 때, 머리털로 신을 삼아도 다 못 갚는다는 말을 한다. 사람의 머리카락과 삼(麻)으로 만든 신이 무덤에서 수습되었다. 서른한 살 젊은 나이에 유복자를 남기고 간 조선시대 이응태(李應台, 1556∼1586)의 무덤에서 나온 신발은 남편을 위해 이응태 부인이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삼은 것으로 밝혀졌다.387)이은주, 「일선 문씨와 이응태 묘 출토 복식 고찰」, 『안동 정상동 일선 문씨와 이응태 묘 발굴 조서 보고서』, 안동대학교 박물관, 2002,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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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리
미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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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왕골이나 부들로 만든 미투리는 돗자리를 짤 때처럼 염색하여 무늬를 넣어 짜기도 했다고 한다. 평양 기생들은 비 오는 날이면 미투리가 젖을까 봐 품에 안고 비를 피해 달렸다고 한다. 1930∼1940년대에는 형편이 어려운 시댁에서 새색시에게 해주는 최소의 선물이 치마저고리와 색이 고운 미투리였다고 한다. 단옷날이면 새색시들은 이 미투리를 꺼내 신고 그네를 탔다고 하니 참으로 근사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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