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7장 우리 옷을 밀어낸 양장과 양복
  • 5. 우리 옷 제자리 찾기
최은수

생활 한복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은 100여 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생활 한복은 개량 한복, 변형 한복, 실용 한복이라고도 하며 전통 한복에 비해 편하고 활동하기 쉬운 기능적이면서도 한복의 전통성을 느낄 수 있는 옷을 말한다. 개량복이란 명칭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진 후, 쓰개치마를 벗고 나서 생긴 것이다. 1890년대의 저고리가 극도로 짧아져 아무리 조심하여도 겨드랑이의 살과 치마허리가 보였으므로 기능적으로 편리한 개량복의 필요성을 신문과 여성 단체가 주장하였다. 1906년 11월 22일 『만세보』의 「의제 개량(衣制改良)-여자 의제」, 1907년 6월 19일자 『제국신문』의 「부인의 의복을 개량할 일」이란 논설에서 “저고리나 적삼은 앞뒤 섶을 조금 길게 하여 수구와 도련에는 선을 두르거나 양복 모양으로 무엇을 아로새겨 달고 치마는 도랑치마로 하되 통치마로 만들어서 걸음을 걸을 때에 치맛자락이 벌어지지 않게 하라.”441)김미자, 「개화기(開化期)의 여자 복식과 사상(思想)에 관한 연구」, 『서울여자대학교 논문집』 18, 1989, 414∼415쪽.고 하였다.

1950년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름에 개량 한복이라는 통치마에 단추 달린 짧은 소매 저고리를 총장과 여교수들이 입은 후 전문직 여성들 사이에 유행하였다. 1970년대에는 생활 한복, 변형 한복이란 용어를 사용하 였는데, 치마저고리에 개량할 곳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통치마는 활동하기에 편리하였으므로 이후 계속 생활 한복으로 입혀져 왔다. 그러나 전통 한복은 여전히 예복의 자리를 지켜 왔으며 혼인, 회갑 등 우리나라 전통 의례에서는 당연히 입는 것을 예의로 여겨 왔다.

언제부터인지 혼인 예식장에서조차 전통 한복을 입은 사람들을 구경하기 쉽지 않고, 신랑 신부가 폐백 드릴 때 입던 한복도 대여해서 입는 일이 많아졌다. 한복 관련 학자들과 업계에서는 이러한 사태를 해결하는 방안을 고민하였고, 이에 한복 입는 날까지 제정하게 되었다. 1996년 12월 4일 문화 관광부에서 제정한 ‘한복 입는 날’은 국민들의 한복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국민의 축제로 승화시키기 위한 행사로 선포식과 세미나가 있었다. 또한, 고궁 무료 입장을 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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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는 날 기념 패션쇼
한복 입는 날 기념 패션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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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97년 12월 4일과 1998년 12월 17일에도 기념 세미나와 전시회를 가졌고, 1999년 12월 4일 한복 입는 날 선포 3주년 기념행사는 민간단체가 주도하고 문화 관광부가 후원하는 행사로 탈바꿈하기 위하여 ‘한복 사랑 운동 협의회’를 구성하였다. 이 행사는 점차 전 국민들이 동참할 수 있는 ‘한복 사랑 운동’으로 발전시키고 연중 행사로 지속시키기 위하여 ‘한복의 날’로 확대시켰다. 이후 한복의 날 행사는 사단법인 한국 복식 학회, 한국 의상 협회, 한복 문화 학회가 연합하여 만든 한복 사랑 운동 협의회가 주도하였다.

올해로 11년째를 맞이하게 되면서 그동안 한복의 고급화·대중화·기성복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앞으로도 갈 길은 먼 듯하다.

1996년에 만든 선언문의 취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선언문에는 21세기 문화 대국을 지향하기 위해서 고유문화와 전통에 기반을 두어야 함을 역설하며, 잊혀져 가는 전통과 민족 자긍심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각오로 한복 입는 날을 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그 세 가지 목표를 보면 첫째, 한복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둘째, 한복 입기를 일상화하며 셋째, 한복을 현대에 맞게 재창조하며 더 나아가 본격적인 산업화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자문화 인식의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일상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442)문화 관광부, 「한복 입기 운동 선언문」, 1996.

그러나 개량 한복이 유행하면서 저 옷이 과연 개량 한복인가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한복’을 개량한 옷이라고 하였지만, 얼핏 보기에는 한복 중에서 일복이나 노동복을 개량한 것이 아닌가. 저 옷을 입고 어떻게 외출을 하고, 공식적인 자리에 나갈 수 있을까 할 정도로 품위가 없어 보였다. 물론 그 중에는 그렇지 않은 옷도 있었지만, 개량 한복이라고 명명하여 선전하는 옷들은 대부분 세탁이 편리하고, 입기에 편한 점들만 강조한 옷이었기에 이런 폐단이 생긴 것 같다.

1980년대 후반부터 개량한 우리 옷은 ‘생활 한복’의 개념으로 디자인되어 기성복의 형태로 일반인과 가까워지기 시작하였다. 1997년 5월 17일자 『일간스포츠』에서는 생활 한복이 “활동에 편하며 통풍이 잘되어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신세대에 의해 외출복이나 근무복으로 선택되는 경향이 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이러한 옷은 전통 한복의 모습과는 달라서 디자인을 보면 면, 마, 모시 등을 주로 이용하여 옷고름 대신 매듭단추를 달거나 소매나 허리 품을 줄여 활동성을 강화한 것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한복 고유의 멋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도 있으나 한복의 일상화 라는 차원에서 널리 입혀져야 한다는 긍정적인 의견들이 우세하다. 이는 노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한복의 범위를 유행에 민감한 다른 계층까지 넓혔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으로, 전통 한복과 생활 한복이 어째서 달라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개량 한복이라는 이름이 붙은 옷은 대부분 질감이 아주 거친 마나 면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우선 보기에 마치 마대 자루를 둘러 입은 모양새 같다. 바지는 대님을 매는 형태를 살린 것도 있지만, 대부분 주름을 잡고 단추를 꿰게 만들었거나 단추 없이 주름만 몇 가닥 잡아 막 끼어 입도록 한 것이 많다. 허리끈도 바지에다 박은 것, 바지 허리춤에 구멍을 내어 허리끈을 꿰게 한 것 해서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게 하였다. 얼핏 보면 일제강점기 국민복이었던 몸뻬를 닮은 것 같다. 저고리의 고름은 한결같이 없앴다. 풀어지기 쉽고 일할 때 거추장스러운 옷고름 대신에 플라스틱 단추나 매듭단추를 달고 동정도 아예 없애거나 다른 천으로 동정 모양을 내어 박음질해 놓았다. 말할 것도 없이 저고리 길이도 길어졌다. 팔을 뻗치면 겨드랑이 살이 보일 듯 말 듯하던 짧은 저고리의 폐단을 없애고 가슴을 칭칭 동여매야 하는 치마말기도 허리께로 내려왔다.

한복을 편한 옷으로 만드는 것은 좋지만, 깃과 섶이라는 한복의 기본 형태를 완전히 무너뜨린 옷을 과연 우리 옷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 옷에다 ‘좋게 고친 한복’이라는 뜻의 개량 한복이란 이름을 붙여도 괜찮은 것일까? 그 옷들이 누가 봐도 정말 입고 싶은 아름다운 우리 옷이 될 수 있을까?

옷감도 대부분 손질하기 쉬운 면직물을 많이 쓴다. 여름에는 마나 모시를 쓰기도 하지만, 이런 것들도 열에 아홉은 중국산이다. 국산 삼베나 모시, 명주를 쓰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옷 가격이 너무 비싸다. 중국에서 화학 염료로 염색해 온 옷감들은 우리의 전통 색과는 너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요즘 유행하고 있는 개량 한복 중 칙칙 한 갈색의 갈옷은 본래 제주도 농부들이 들에 나가 일할 때 입는 옷이었다. 제주도에서 나는 땡감으로 물들인 이 갈옷은 땀이 잘 배지 않고, 오물이 붙어도 별로 표시가 나지 않고 더러움도 덜 타기 때문에 노동복으로 입혀졌던 것이다.

승복인지 한복인지 모르겠다. 개량 한복의 형태를 보면 불교 신자들이 절에서 입는 옷과 그 모습이 많이 닮아 있다. 남자 저고리처럼 길이가 길고 진동이 긴 웃옷이며 일제 때 입었던 몸뻬처럼 생긴 바지를 입은 여자 보살들이 절할 때나 일할 때 입는 그 옷에서 개량 한복이 나온 것 같기도 하다. 승려들이 입는 승복이나 여신도들이 입는 옷을 입어 본 이들은 누구나 그 편안함에 탄복한다고들 하니 이 승복 비슷한 옷들이 마치 개량 한복인 양 온갖 빛깔을 띠고 퍼져 나갔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회색이나 갈색류의 칙칙한 색감의 개량 한복을 입고 다니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한복의 색감은 전통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특히, 이런 색감의 개량 한복은 이른바 민중 예술을 한다는 이들이나 운동권 젊은이들이 의식적으로 입기 시작하면서 꽤 퍼져 나간 듯하다.443)김희진, 「그런 개량 한복은 차마 못 입겠다」, 『샘이 깊은 물』, 뿌리 깊은 나무, 1997.

김희진이 쓴 글에서 보듯 개량 한복이 직물이나 옷의 모양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평상시에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자, 활동에 편한 옷을 만들자, 세탁이 편리한 옷을 만들자라는 조건만 충족시키는 한복을 만들다 보니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 같다. 한복 입는 날을 제정하면서 고민하였던 문제를 바로 현실에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의복은 보통 토털 패션이라고 말하듯,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종합적으로 조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신중하게 오랜 기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서 개량 한복이 만들어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21세기의 세계는 하나의 시장이 되고, 서로 다른 문명의 충돌, 수많은 생활양식의 혼재, 치열한 경쟁, 갈등의 무대가 되고 있으므로 그 고유성과 독창성이 부가된 상품만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게 되고 무한경쟁 시대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므로 생활 한복은 전통에 뿌리를 두되 21세기의 특성에 맞게 재창조된 것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디자인이어야할 것이다.

한복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현재 착용하고 있는 전통 한복은 계속 착용하여 한복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고, 생활 한복은 전통성에 뿌리를 두고 21세기의 특성에 맞도록 디자인하여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문화 상품으로서 가치를 지닐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생활 한복과 전통 한복에 관하여 정부와 산학이 협동하여 꾸준히 연구해야 할 것이다. 생활 한복 디자인에 필요한 전통적인 복식 자료의 연구는 많이 축적되었으나 디자이너들의 자료 활용이 적은 것 같다. 디자이너들은 자료를 디자인에 이용하는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른 전공 분야(양복, 양장, 디자인, 박물관)와 전통 장신구, 전통 문양, 전통 생활 도구, 전통 식물 염료 등의 현대화 작업이 필요하며 소비자의 개성과 주체성이 강조된 생활 한복의 다양한 디자인이 요구된다. 앞으로는 세계의 소비자의 기호에 부합할 수 있는 맞춤 복식의 기성복 시대가 될 것이다.

앞으로는 고령화의 가속화로 인하여 노인의 신체적 특성과 취향에 맞는 제품이 요구될 것이므로 환경 친화적 제품 디자인의 개발이 필요한 때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소재가 개발되어야 하며, 독특한 개성을 원하는 현대인의 감각에 맞춰 창조적인 다양한 제품 연구가 시급하다. 인체에 해를 주지 않고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소재, 신체의 면역력을 향상시키고 건강하게 하는 기능성 가공 상품이 미래의 한복을 기대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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