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1장 땅에서 나는 우리 음식 재료
  • 3. 나무에 열리는 음식, 과일
  • 조선시대 장원서에서 했던 일
박종진

조선시대에는 왕실을 비롯한 국가 기관에 필요한 과일을 조달했던 관청으로 장원서(掌苑署)가 있었다. 장원서는 1466년(세조 12) 상림원(上林園)을 개편하여 설치한 관청으로 북부 진장방에 있었다.38)상림원은 1403년(태종 3) 관제 개편 때 공조(工曹)에 소속된 관청인데, 태조 때부터 있던 동산색(東山色)을 개편한 것이다. 연산군 때 일시 폐지되었다가 중종 때 다시 설치되어 1882년까지 존속하였다. 법전에는 장원서가 궁중의 원유(苑囿, 동산과 정원)와 화과(花果)를 담당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주 임무는 궁중과 국가 기관에 과일을 조달하는 것이었다. 조선 후기에 장원서에서 했던 구체적인 일은 『조선 왕조 실록』 등 연대기와 1794년(정조 18) 엮어진 『장원서등록(掌苑署謄錄)』39)서울 대학교 규장각 도서 15060.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당시 장원서가 했던 일 중 과일과 관련된 것으로는 철따라 나온 햇과일을 사당이나 신전에 올리는 천신(薦新), 종묘의 각전(各殿)·왕실의 각전·주요 국가 기관에 정기적으로 과일을 올리는 공상(供上), 왕실 각전의 탄일, 정조·입춘·추석에 과일을 올리는 진상(進上) 등이 있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이 천신인데, 5월에는 앵두와 살구, 6월에는 오얏과 능금, 7월에는 배와 청포도, 8월에는 밤과 대추를 올려서 차례를 지냈다. 이를 통하여 당시 주요 과일의 수확 시기를 유추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과일 중 배·밤·살구·홍시·모과·석류·유자· 귤은 생과색(生果色)에서, 곶감·호도·잣·대추·밤·개암·비자는 건과색(乾果色)에서 조달하였다.

장원서에서 필요한 과일의 조달 과정은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다음 몇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첫째가 각도와 각 읍에서 거두는 공물과 진상이다. 공물이나 진상으로 들어오는 과일은 대동법 시행 이후 줄어들지만 지방 군현으로부터 들어오는 과일은 여전히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였으니, 그것은 18세기 말에 작성된 『장원서등록』에서 확인된다. 둘째 는 장원서의 과수원(東山)에서 생산된 과일을 공상에 충당하였다. 간혹 장원서 소속 과수원에서 과일 생산이 부족할 때는 필요한 과일을 지방에 추가 배정하기도 하였는데, 이럴 경우 장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 두 가지 방법으로도 필요한 과일을 조달하지 못하게 되면 과일을 시중에서 구입하였는데, 과일을 구입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졌다. 한편 정상적인 방법으로 특정 과일을 조달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앞에서 본 예와 같이 개인 집의 과일을 봉하여 진상에 대비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장원서에서는 과일을 저장하여 과일이 나지 않는 철에 대비하기도 하였다. 또 개인이 임의로 왕에게 귀한 과일을 바치기도 하였는데, 이때 진헌한 사람에게는 과일값을 내리는 것이 관례였다. 한편 연산군같이 과일을 좋아했던 임금은 중국에 가는 사신에게 여지, 수박, 참외 등을 많이 사올 것을 당부하기도 하였다.40)『연산군일기』 권57, 연산군 11년 4월 신유.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