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2장 국가 의례의 음식
  • 1. 나라에서 행하는 다섯 가지 의례
  • 국가의 의례, 오례
임혜련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고 불릴 만큼 예(禮)를 중시하였다. 예라는 것은 각자의 직분을 확실하게 해줌으로써 인간 사이의 관계를 올바르게 묶어 주는 것이다. 이렇듯 예를 중시한 나라답게 유교 사상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정착되면서 예의 형식과 절차도 정리되었는데, 이것이 ‘오례(五禮)’이다. ‘오례’는 고려시대에 정리된 후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조선에서는 국가의 의례를 정리하여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1474)라는 책을 편찬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국가의 의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국가라는 큰 집에서 치러야 할 의례는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흉례(凶禮)의 다섯 가지로 정리되었다. 이러한 ‘오례’를 기본으로 삼아 그 예의 형식을 엄격하게, 원칙에 입각하여 시행하였던 것이다. 의례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일생에서 통과 의례적인 성격을 지니는 관례(冠禮), 혼례(昏禮), 상례(喪禮), 제례(祭禮)의 관혼상제(冠婚喪祭)이다. 이는 중국의 주자(朱子)가 쓴 『가례(家禮)』에서 정리한 네 가지 가정 의례이다. 그러나 국가 의례는 제사 의례인 길례, 혼인과 책봉(冊封) 등의 의례인 가례, 외교 관계를 위한 의례인 빈례, 군사의 중대사에서 드리는 군례, 상례인 흉례로 분류한 것이다.

조선 왕조를 건국한 사대부들은 유교적 이념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으며, 그 결과 유교 의례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조선 사회에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현재 우리의 생활 풍습 중에는 조선시대의 유산이 많이 남아있다. 관혼상제도 역시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국가의 의례였던 ‘오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생소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는 국가 의례가 일반 가정 의례와는 매우 다른 형식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굴곡 많은 근현대사를 겪으면서 왕실 문화가 잘 보존되지 않았던 데에 커다란 원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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