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2장 국가 의례의 음식
  • 1. 나라에서 행하는 다섯 가지 의례
  • 조선에서 시행한 다섯 가지 의례
임혜련

길례는 제사를 지내는 의례이다. 국가에서는 누구에게 제사 지낼까? 물론 우리가 조상들에게 제사 드리는 것처럼 왕실의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렇지만 전근대 사회에서 왕실은 곧 국가였던 만큼 조상뿐만 아니라 좀 더 다양한 대상들에게 제사를 지냈다. 길례에서는 제사의 대상을 천신(天神)·지기(地祇)·인귀(人鬼)의 세 가지로 분류하고 제사를 지냈다. 곧 국가에서는 하늘·땅·사람에게 제사를 지낸 것이다. 이 세 가지 대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구체적인 의식의 절차와 의미가 길례의 내용이며, 이는 유교 정치의 질서 의식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59)이범직, 『한국 중세 예사상(禮思想) 연구-오례(五禮)를 중심으로-』, 일조각, 1991, 230쪽.

가례는 왕실의 여러 경사스러운 의례들이 포함된다. 즉 왕세자 왕세제 왕세손 등을 책봉하는 의식, 왕세자 왕세손 등의 관례 의식, 왕을 비롯한 왕세자·왕세손의 혼례 의식, 왕의 등극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정치 의식, 왕비의 책봉 의식, 대왕대비 왕대비 대비 등에게 존호(尊號)를 드리는 의식, 왕 실 가족들의 생일연 등이 있다. 또한 중국의 황제에 대한 의례도 포함하고 있는데, 황제와 황태자의 생일 축하 의례가 그것이다. 이 밖에도 나라를 다스리는 입장에서 관료들과 백성들에 대한 배려 역시 가례에서 행하는 의례이다. 과거 시험과 노인들을 위한 연례(宴禮) 의식도 가례에 속한다. 이렇듯 가례는 왕실을 비롯하여 나라 전체가 기뻐해야 할 일들에 관한 의례의 절차를 정리하고 있다. 그런 만큼 가례의 의식에는 음식이 많이 필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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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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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례는 손님을 대접하는 의례이다. 국가의 손님이란 누구일까? 바로 외국에서 오는 사신들이다. 즉 빈례는 외국의 사신을 접대하는 의례를 정리해 놓은 것이다. 이는 사대교린(事大交鄰)이라고 하는 조선시대 외교 정책과 연관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큰 나라인 명나라를 섬기고, 이웃 나라인 일본, 여진 등과는 친하게 지낸다는 사대교린 정책을 시행하였다. 빈례의 종류로는 중국에서 온 사신인 조정사(朝廷使)에게 왕과 왕세자, 종친이 연회를 여는 의식이 있다. 또한 일본을 위시한 이웃 나라의 사신인 인국사(隣國使)가 가져온 서폐(書幣)를 접수하는 의식과 인국사에게 연회를 여는 의식이 있다. 그렇지만 빈례에서 중요하게 대접했던 손님은 사대의 대상인 중국의 사신이었다.

군례는 군사와 관련된 의례를 내용으로 한다. 한 나라의 통치자로서 왕은 군대를 통솔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군례의 내용에는 군대의 규모 상태와 병마(兵馬) 등을 검열하는 열병(閱兵) 의식, 무술을 조련하는 강무(講武) 의식, 싸움터에 나가는 출정(出征) 의식, 적을 죽이고 귀나 목을 잘라 임금에게 바치는 헌괵(獻馘) 의식, 전쟁의 승리를 알리기 위하여 베나 비단에 글씨를 써서 매다는 노포(露布) 의식 등의 예절이 있다. 곧 군례는 대내적인 질서 유지와 왕권의 강성함을 과시하는 효과를 보여 주는 의례였던 것이다. 고려시대의 군례에는 군대의 출정 의식이 중심 내용이었던 데에 비하여 조선시대에는 출정 의식은 없어지고, 활쏘기를 통하여 왕과 신하가 유대를 공고히 하였던 대사례(大射禮) 의례가 군례에 포함되었다. 이는 문치주의를 지향했던 조선 사회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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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의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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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례는 장례와 관련된 의례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한번은 죽는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은 주변 사람들에게 큰 슬픔을 가져다준다. 그렇기 때문에 흉례는 나라의 의례 중에서 가장 슬픈 의례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죽은 사람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과정으로서 매우 중요한 절차라고도 할 수 있다. 흉례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국가의 상례인 국장(國葬)이다. 왕이나 왕비, 왕세자 등이 죽었을 때 그들을 장사 지내는 의례야말로 왕조 국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행해야 할 의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장 의례와 함께 상복과 관련된 내용도 흉례에 정리되어 있다. 『국조오례의』에 정리된 흉례는 총 91개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황제거애의(爲皇帝擧哀儀)·성복의(成服儀)·거림의(擧臨儀)·제복의(除服儀)의 4개조는 중국의 황제가 죽었을 때 우리나라 조정에서 행할 의례들이다. 그리고 국휼고명(國恤顧命)으로부터 왕세자빈위부모조부모거애의(王世子嬪爲父母祖父母擧哀儀)까지 86개조는 국장 또는 왕실 중심의 상례 의식이다. 마지막의 대부사서인상의(大夫士庶人喪儀) 1개조만 민간의 상례 의식에 관한 내용이다. 이렇듯 흉례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국가 또는 왕실의 상·장례였으며, 그리하여 국가 또는 왕실의 상례 의식은 민간의 상례 의식에 비해 장엄하고 대단히 복잡하게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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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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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살펴본 바가 국가의 다섯 가지 의례인 ‘오례’이며, 여기에는 각기 의례를 시행하는 절차가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또한 다양한 의례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절차에 따라 음식을 올리기도 하고 또는 음식을 먹으면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었던 것이다.

의식주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며, 그중에서도 음식은 생명의 유지, 활동의 에너지원으로 특히 중요하다. 또한 음식은 그것을 조리하고 차려 놓고 먹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한다. 이는 하나의 나라 또는 민족의 식생활 문화로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음식 문화는 여러 시대를 거쳐 계승되었다. 우리나라 전근대 사회의 음식 문화 중에서 가장 화려하면서도 발전된 것을 꼽으라면 ‘오례’를 시행하면서 먹었던 음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오례 때 차린 음식의 종류에는 제례에 차리는 제사상, 외국사신을 접대하는 영접 진연상, 상례의 진행 과정에 올리는 음식, 그리고 혼례와 양로연을 비롯한 각종 잔치 음식들이 있다. 이렇듯 국가 의례를 위해 만들고 차린 음식들은 우리의 전통 음식 문화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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