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2장 국가 의례의 음식
  • 3. 왕과 왕비가 혼인하다
  • 동뢰연과상
임혜련

동뢰연상·좌협상·우협상에서 6색 과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유밀과에 해당한다. 유밀과는 진짜 과일이 아니고 가짜로 만든 것이어서 조과(造菓)라고 부른다. 유밀과는 과실을 모방한 데서 비롯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유밀과를 조과류로 통칭하였다.92)장지현, 『한국 전래 조과류(造菓類) 제조사 연구』 상, 성동 문화, 1996, 11쪽. 그래서 연상·좌협상·우협상을 동뢰연과상(同牢宴果床)이라고도 부른다. 이 동뢰연과상은 꽃으로 장식이 되어 있다.93)이때 사용된 꽃은 복숭아꽃, 목단화, 국화, 가지화, 유자화, 복분자화, 포도화, 감꽃, 오이꽃, 연꽃, 월계화 등이 있다(김상보, 앞의 책, 2003, 276∼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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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장식하여 유밀과를 차린 과상은 고려시대의 연회에서 이어져 내려온 상차림이다. 유밀과는 통일 신라와 고려시대에 불교가 융성하면서 차를 마시는 풍습이 성행함에 따라 함께 많이 쓰였다. 고려시대에는 연등회나 팔관회 같은 국가적인 큰 행사에서부터 사사로운 연회나 제향에 이르기까지 유밀과를 많이 쓰게 되면서 사치와 낭비가 심해지자 여러 차례 유밀과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하였다. 1192년(명종 22)에는 유밀과 금지령을 내리면서 잔치를 차릴 때에 서로 다 잘 하려고 곡식을 흙과 모래처럼 쓰고 기름과 꿀을 구정물같이 하찮게 생각하여 보기 좋게만 하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소모되는 것이 적지 않다고 하면서 유밀과의 사용을 금지하고 과실로 대용하도록 명을 내리고 있다. 그렇지만 유밀과는 입속에서 슬슬 녹고 달콤한 맛 때문에 금령을 무시하면서 계속 쓰였다.94)이성우, 『한국 식생활의 역사』, 수학사, 1993, 68∼69쪽.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유밀과의 사용을 금지하였다. 이는 혼인하는 집에서 차리는 유밀과상이 거의 사방으로 12자나 될 정도로 매우 사치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이에 헌수(獻壽)와 혼인, 제향 외에 유밀과를 사용하면, 길에서 공불(供佛)을 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장 60대에 처하기도 하였다.95)『태조실록』 권35, 태종 18년 1월 계유 ; 『경국대전』 권5, 형전(刑典), 금제(禁制). 금령에도 불구하고 유밀과는 여전히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연회 때에 빠지지 않는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왕실 혼례에서도 유밀과를 많이 쓰는데, 이는 동뢰연상을 아름답게 차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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