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2장 국가 의례의 음식
  • 4. 이웃 국가의 사신을 대접하다
  • 중국 사신의 일정
임혜련
확대보기
영은문 부근
영은문 부근
팝업창 닫기

중국에서 사신이 출발하면 일정과 수행 인원 등을 요동도사를 통하여 의주(義州)에 통고하였다. 의주 부윤(義州府尹)은 평안 감사(平安監司)에게 보고하고, 평안 감사가 이를 한양에 알리면 조정에서는 영접도감(迎接都監)을 설치하고 영접을 위한 제반의 준비를 한다. 중국 사신이 조선 국경으로 들어오면 의주 부윤이나 평안도 병마사가 이들을 영접하고, 조선 조정에서 파견한 원접사(遠接使)가 이들을 맞이하여 한양까지 동행한다.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로 의주까지 동행하였다. 중국 사신 일행은 한양까지 오는 도중에 설치된 역관(驛館)에 유숙하면서 지방 관리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중국 사신 일행은 개성을 지나 한양으로 들어오는 마지막 관문인 홍제원(弘濟院)에 이르러 옷을 갈아입고 모화관(慕華館)에 이른다. 이때 평양이나 개성에 도착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지만 사신 일행 앞에는 고악(鼓樂)·잡희(雜戲)·오산(鰲山)·채붕(綵棚) 등의 흥겨운 놀이와 음악·춤 등이 어우러진 열렬한 환영 의식이 베풀어졌다.

조선 국왕은 모화관에 중국 사신 일행이 도착하기 전에, 교외에서 이들 을 영접하러 왕세자와 백관을 거느리고 행차를 한다. 이러한 영접 의례를 ‘교영의’라고 한다. 사신 일행이 모화관에 도착하면 황제가 보낸 조칙(詔勅)을 조선 국왕에게 전하는 ‘선칙의(宣勅儀)’를 행하게 된다. 이때 조선 국왕은 상대국의 예에 맞추어 인사를 하였다. 즉 청나라 사신이 왔을 경우에는 청나라에서 천자에게 인사드리는 예인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의 방법으로 인사를 한다. 그 다음에는 창덕궁 인정전에서 조선 국왕과 왕세자, 백관이 모두 모이고, 중국 사신과 접견 의식 및 연회가 벌어진다. 이때에는 차를 함께 마시는 다례(茶禮)를 먼저 행하였고, 다음엔 연회가 열렸다. 때로는 다례만 행하기도 하였다.105)『동문휘고보편(同文彙考補編)』 권10, 영칙의절(迎勅儀節) 교영의(郊迎儀), 정전접견다례급연례의(正殿接見茶禮及宴禮儀).

<표> 청나라 사신에게 베푼 잔치의 종류
시기 잔치 이름 잔치 장소
입경 직전 교영의(郊迎儀)
영조·칙의(迎詔勅儀)
교외
모화관
입경 당일 정전접견다례급연례의
(正殿接見茶禮及宴禮儀)
창덕궁
2일째 하마연(下馬宴)
익일연(翊日宴)
모화관
3일째 인정전청연(仁政殿請宴) 창덕궁
4일째 회례연(回禮宴) 인정전 또는 모화관
5일째 별연(別宴) 모화관
돌아가는 날짜가 정해진 뒤 상마연(上馬宴) 모화관
돌아가는 날 전연(餞宴) 모화관
✽『동문휘고보편(同文彙考補編)』 권10, 영칙의절(迎勅儀節) ; 『영접도감연향색의궤(迎接都監宴享色儀軌)』 奎14579 참고.

중국 사신이 한양에 들어온 후 돌아갈 때까지 잔치의 종류를 분류해 보면 표 ‘청나라 사신에게 베푼 잔치의 종류’와 같다. 표를 보면 중국 사신이 한양에 도착하여 돌아갈 때까지 하마연에서 전연에 이르는 공식적인 연회 가 일곱 차례에 걸쳐 열린 것을 알 수 있다. 1800년대에 가면 사신이 승낙할 경우 세 차례로 축소되기도 하였으나 사신을 접대하는 연회의 규모는 대체로 동일하였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