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2장 국가 의례의 음식
  • 6. 나라의 큰 슬픔, 국상을 치르다
  • 입관하여 발인까지
임혜련

왕이 임종하신 그날에 시신을 새 옷으로 갈아입히는 습(襲)을 한다. 습을 하고 나면 전(奠)을 처음으로 올리게 된다. 전은 상례를 치르는 동안에 영전에 음식물 올리는 것을 말한다. 습을 한 후에는 시신의 입에 쌀과 진주를 넣는 반함(飯含)을 하였다. 반함에 쌀과 진주를 쓰는 것은 시신의 입을 차마 비울 수 없기 때문이며, 그것을 먹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반함을 한 후에는 상 밑에 얼음을 넣어 차갑게 하고 그 위에 평상을 놓고 시신을 모셨다. 그리고 혼백(魂帛)을 만들어 영좌(靈座)에 올려놓는다. 영좌는 붉게 칠한 교의(交椅)를 남향으로 설치한 것이다. 또한 영좌 앞에는 붉은 비단에 ‘대행왕재궁(大行王梓宮)’이라고 쓴 명정(銘旌)을 설치하였다. 명정은 죽은 자의 관직명을 쓴 깃발을 의미한다. 명정을 설치하는 것은 이름을 명백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죽은 사람은 얼굴과 형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구별하기 위해 표시하는 것으로 죽은 자를 사랑과 공경의 마음으로 기리면 서 도리를 다 하는 것이다.120)『예기』 4편, 단궁(檀弓) 하(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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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銘旌)
명정(銘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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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돌아가신 지 3일째가 되면 우선 사직·종묘에 대신을 보내어 상례를 고한다. 그리고 19벌의 옷을 시신에게 입히는 소렴(小斂)을 행한다. 왕이 돌아가신 지 5일째 되는 날에는 대렴(大斂)을 하는데, 시신을 90벌의 옷으로 감싸는 것이다. 왕의 시신을 관인 재궁(梓宮)에 넣고, 네 귀퉁이에는 평상시 빠진 치아·머리털·깎은 손톱과 발톱을 넣는다. 이로서 입관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입관 후 상복으로 갈아입은 후에는 왕세자가 즉위를 한다. 왕세자의 즉위는 선왕의 장례절차가 진행 중에 치르기 때문에 간략하게 시행하였으며, 그날 즉위 교서를 반포한다. 입관 후 왕은 유교 예법에 따라 5개월 동안 국장(國葬)을 치렀는데, 이 기간 동안 재궁을 모시는 곳을 빈전(殯殿)이라 하였다. 빈전은 왕이 임종한 곳에서 편리에 따라 적당한 건물에 설치했다. 빈(殯)이란 집 내부에 시신을 가매장한 장소를 뜻하며, 손님이란 의미의 빈(賓)과도 통하였다. 자식의 입장에서 돌아가신 부모를 빈에 모실 때는 손님처럼 모신다는 뜻으로, 죽은 자와 생전에 맺었던 혈연의 정을 점차 정리하라는 의미였다. 이 기간 동안 뒤를 이은 왕은 빈전 옆의 여막에 거처하면서 수시로 찾아와 곡을 함으로써 어버이를 잃은 자식의 슬픔을 다하였다.121)신명호,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 문화』, 2002, 돌베개. 빈전에서는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전(奠)을 올리고 상식(上食)을 올리게 된다. 이렇게 5개월이 지나면 장사를 치르게 된다.122)이상의 의례의 절차는 『국조오례의』 권7, 흉례(凶禮)를 참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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