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2장 국가 의례의 음식
  • 6. 나라의 큰 슬픔, 국상을 치르다
  • 전과 상식
임혜련

상례를 치르면서 신에게 올리는 것이 바로 전이다. 전은 상례를 치르는 동안에 영전에 음식물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상례에서 올리는 음식들은 명기(明器)를 사용한다. 명기는 음식을 올리는 그릇인데, 귀신의 그릇을 의미한다.123)『예기』 3편, 단궁 상(上).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죽은 사람으로 대하는 것도 예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기는 살아있을 때와 같은 것을 상징하여 만들되 다만 거칠고 열악하고 작게 만들어서 사용한다. 그래서 대나무 그릇이나 광택이 없는 자기 그릇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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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전을 올리는 것은 습(襲)을 한 후 반함을 하기 전이다. 왕이 사망한 후 왕세자가 즉위하기까지 상례의 절차를 진행하면서 습 이외에 소렴·대렴·성복 등에 전을 올린다. 전을 올릴 때에는 상을 차린 후에 술을 따르는 것이 공통점이다. 즉 전을 담당하는 대전관(代奠官)이 상 앞에 가서 세 번 향을 올린 후에 술을 따라 영좌 앞에 올리는데, 석 잔을 올린다. 그리고 절을 하고 일어나는 것이 전을 행하는 절차이다.

전은 영좌 앞쪽에 협탁(俠卓)과 찬탁(饌卓)이라는 두 상을 놓고 차렸다. 찬탁에는 네 줄로 진설을 하는데 남쪽이 상위이다. 첫째 줄에는 중박계(中朴桂), 둘째 줄에는 홍백산자(紅白散子), 셋째 줄에는 약과(藥果), 넷째 줄에는 각색실과(各色實果)를 올린다. 그 밖에 면(麪), 병(餠), 탕(湯)을 좌우에 나누어 올린다.124)『국조오례의서례』 권5, 흉례, 예찬주준도설(禮饌酒樽圖說) 습전(襲奠). 1800년 정조가 승하하였을 때에 올린 전을 보면 각색실과로는 잣, 개암, 건시, 대추, 밤, 비자를 사용하였으며, 병류로는 송고병, 산삼병, 자박병, 유사병을 올렸다. 면으로는 탕면(湯麵)을 사용하였는데,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탕면 을 사용하였다. 탕으로는 잡탕이 올라갔으며 정조의 상례에서는 찜(煎蒸)을 하나 더 올린 것이 특징이었다.125)『정종대왕빈전혼전도감의궤(正宗大王殯殿魂殿都監儀軌)』, 일방의궤(一房儀軌), 제전기수식(祭奠器數式) 奎13637. 협탁에는 각색소채와 실과, 탕, 면 등을 올렸으며, 잔이 세 개 준비되었다. 술은 청주(淸酒)를 사용하였다.

왕의 시신을 입관한 후 5개월 동안 장례를 치르면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영좌 앞에 음식을 올렸다. 조석전(朝夕奠)과 조석상식(朝夕上食)이 그것이다. 특히 조석상식은 왕이 살아 있을 때 식사를 하신다고 생각하면서 올리는 것이다. 조전(朝奠)은 해가 뜰 때, 석전(夕奠)은 해가 질 때 올린다. 원래는 조전을 올린 후에 치우지 않다가 석전으로 교체를 하지만, 여름철에 날씨가 더워 부패할 염려가 있을 때에는 조전을 올린 후에 상하는 음식들은 치웠다. 석전 역시 이튿날 아침 조전을 올리기 전까지 그대로 두었다.

조석전에 올리는 음식은 아침저녁으로 같다. 찬탁에 다섯 줄로 진설하는데, 남쪽을 역시 상위로 한다. 첫째 줄에는 약과, 둘째 줄에는 각색실과, 셋째 줄에는 소과(蔬果), 넷째 줄에는 떡과 면·탕을 놓고, 마지막으로 다섯째 줄에는 잔을 세 개 놓는다.126)『국조오례의서례』 권5, 흉례, 예찬주준도설 조석전(朝夕奠).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전을 올리고 술을 따르고 곡을 함으로써 죽은 왕에 대한 예를 극진히 하였다.

상례를 치르는 5개월 동안 매일 식사 시간이 되면 식사를 올렸는데 이를 상식이라고 한다. 상식도 역시 아침과 저녁에 올렸다. 상식에 올리는 찬품은 평상시와 같았는데, 고기를 쓰지 않는 것이 오랫동안 내려온 전통이었다. 상식은 죽은 왕이 평상시 식사를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으로 하는 의례인데, 상을 진설하고 음식을 차려 놓는 것은 같으나, 죽은 사람의 밥이므로 밥은 왼쪽에 놓는다.

상식에 올리는 상차림은 탕·적·김치·생채·숙채·식해·장 등이 올라간다. 그런데 정조의 국상에서의 상식 진설도를 보면 고기와 고기를 사용한 탕이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의례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조선 후기 상례의 변화는 또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정조의 국 상에서 주다례(晝茶禮)를 행했던 것이 조선 초기와 달랐다. 주다례는 조석전, 조석상식 중간인 낮에 차를 올리는 의례였다. 약과·떡·수정과·실과·야채·세면을 올리면서 작설차(雀舌茶)를 함께 올렸다. 차를 올릴 때도 역시 청주를 올리는데, 조석전이나 상식에서 술을 석 잔 올리는 것과 달리 주다례에서는 술을 한 잔만 올렸다.127)『정종대왕빈전혼전도감의궤』, 일방의궤, 제전기수식. 이렇듯 5개월의 국상 기간 동안에 죽은 왕에게는 매일 아침과 저녁, 또 그 중간에 음식들이 진설되었다. 이는 죽은 왕의 혼을 위한 것이면서도 왕이 평상시에 먹었던 음식들을 진설함으로써 망자에 대한 예를 지극히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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