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3장 특별한 날, 특별한 음식
  • 2. 생일날 잘 먹으려고 이레 굶는다
  • 다시 시작하는 생일, 회갑의 큰상
윤성재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61세가 되는 해를 회갑년(回甲年), 갑년(甲年)이라고 한다. 자기가 태어난 해로 ‘다시’ 돌아왔다는 뜻으로 환갑(還甲)이라고도 하는데, 환갑(換甲), 주갑(周甲), 회갑(回甲)은 모두 갑(甲)이 다시 돌아왔다는 뜻이다. 한자 ‘화(華)’ 자가 ‘십(十)’ 자가 여섯 개와 ‘일(一)’ 자 한 개로 이루어져 61이 된다고 하여 화갑(華甲)이라고도 한다. 오늘날에는 회갑이나 화갑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지만, 처음에는 환갑(換甲)이라 하였다. 1296년(충렬왕 22) 왕의 나이 61세에 환갑은 운수가 사나운 해(厄年)라는 술자(述者)의 말을 듣고 은혜를 베풀어 죄인을 풀어 주고 용서하였다고 한 것이 처음 보이는 기록이다.154)『고려사』 권31, 세가31, 충렬왕 22년 2월 병인. 이를 보면 환갑에 대한 의식은 적어도 13세기 이전부터 있어 왔고, 환갑을 액년으로 인식하였던 듯하다. 그러다가 조선 숙종대(17세기) 이후 환갑잔치의 사례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하고, 조선 후기에 이르면 환갑은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례(大禮)가 되었다. 이때에는 부모의 환갑 의례를 베풀어 드리는 것이 자식 된 도리이며 효행의 으뜸 이라고 생각하였고, 환갑을 맞은 자신도 자신의 장수를 여러 사람들에게 자랑하고자 하는 의미도 강해졌다.155)최종호, 「한국인의 환갑 의례 연구」, 영남 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1988, 21쪽

그런데 환갑(換甲)이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갑(甲)이 바뀐다(換)는 것인데, 이는 인생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고려 말 정사도(鄭思道) 묘지명(墓誌銘)에 “무오년(1378, 우왕 4)에 공의 갑자(甲子)가 돌아와 ‘다시 시작’하였으나, 명성과 절의가 조금도 이지러진 곳이 없었다.”라는 내용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환갑 의례는 출생의 시발점에서 가장 먼 인생의 종착점에 위치하는 의례로 인생의 마지막 시기라는 의미를 강하게 갖는다. 아이가 태어나면 첫 돌을 시작으로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를 했던 것이 환갑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고,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이루는 것이다. 이에 항간에서는 환갑잔치를 산제사(生祭祀)라고도 하고, 제사상을 드리는 것과 같이 괸 음식상(高排床)을 차리고 자손들이 술을 올리며 큰 절을 한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서는 회갑 이후의 생일상에는 미역국을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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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회갑상
현대의 회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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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갑상의 상차림을 큰상이라 하는데, 큰상은 혼례, 회갑, 회혼(回婚) 때나 받을 수 있는 가장 화려하고 경사스러운 잔칫상이다. 큰상은 음식을 원 통형으로 높이 괴어 올리며, 마른 문어나 마른 전복 등을 꽃이나 봉황 모양으로 오린 것을 올려 화려하게 꾸민다. 높이 괴는 것을 고배(高排)라고 한다. 이렇게 차린 큰상은 보기만 하고 먹을 수는 없으므로 망상(望床)이라고도 부른다. 상차림에 음식을 괴는 것은 경사스러운 날 음식이 돋보이고 풍요롭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괴는 음식은 계절이나 집안의 경제적 사정에 따라서 다르지만, 음식의 가짓수와 괴는 높이의 치수는 홀수로 하였다. 올리는 음식은 유밀과(油蜜菓), 과실(果實), 건과(乾果), 떡, 전과(煎果), 전유어(煎油魚), 건어물(乾魚物), 육포(肉脯), 어포(魚脯) 등으로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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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맷상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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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상은 먹지 못하는 상이기 때문에 잔치의 주인공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따로 상에 차려낸다. 이것이 입맷상이다. 음식은 대체로 국수를 주로 한 면상으로 차리는데, 반찬에 속하는 조림이나 젓갈, 장아찌 등은 놓지 않고 김치나 나박김치 등을 올렸다. 1800년대 요리책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나온 입맷상 상차림을 보면 둥근상 위에 12시 방향으로 놓인 장김치를 시작으로 시계 방향으로 숙란, 찜, 전유어, 수육, 국수, 수정과, 생실과, 탄평채(坦平菜)를 놓고 상 한가운데 초장을 놓는다. 자손들이 올린 잔을 받으면서 이 상 위의 음식을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도록 상을 차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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