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3장 특별한 날, 특별한 음식
  • 3. 국수는 언제 먹여 주나
  • 두 켜의 시루떡, 봉채떡
윤성재

혼례 전에 신랑 집에서는 혼서(婚書)와 채단(采緞)을 함에 담아 신부 집으로 보낸다. 이를 보통 ‘함들이기’라 한다. 신부 집에서는 함을 받기 위해 떡을 시루째 준비하여, 함이 오면 받아 떡시루 위에 놓고 함을 연다. 이 떡을 봉채떡 혹은 봉치떡이라 한다.

봉채떡은 전통적인 예서(禮書)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들어 와 송나라 주자(朱子)의 『가례(家禮)』가 당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면서 조선의 예서들은 사례(四禮), 곧 의혼(議婚), 납채, 납폐, 친영(親迎)을 혼례 절차의 모범으로 삼았다. 그러나 남자 집에서 혼례를 올리는 중국식(친영)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특정 계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여자 집에서 혼례를 올렸고, 또한 혼례 절차도 가문과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어 실제 혼례는 예서의 혼례 절차와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인다. 봉채떡에 대한 기록이 미흡한 것도 그러한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래서 1599년 간행된 예서에 와서야 봉채떡에 대한 기록이 처음 보인다.

확대보기
봉채떡
봉채떡
팝업창 닫기

이에 따르면, 옛날부터 있었던 혼례 관행 가운데 비교적 높은 생활수준에 있던 사람들이 행하던 혼례 절차로, 신부 집에서 함을 받아 미리 마련한 백설기 시루 위(白雪甑上)에 놓고 함진아비와 횃불잡이에게 수고비를 준다고 하였다.160)황비수(黃泌秀), 『현토 주해 사례편람(懸吐註解四禮便覽)』, 「재래관행혼례급신식혼상례(在來慣行婚禮及新式婚喪禮)」, 납폐(納幣), 1958 ; 문옥표 외, 『조선시대 관혼상제(冠婚喪祭)』 1-관례·혼례편(冠禮·婚禮篇), 정신 문화 연구원, 1999, 174∼175쪽(44) 재인용. 이것이 현대에 와서는 붉은 팥고물을 얹은 시루떡으로 변하였다. 지금 봉채떡으로 쓰이는 시루떡은 찹쌀 세 되에 붉은 팥 한 되를 고물로 하여 시루에 두 켜로 안치고 위 켜 가운데 대추 일곱 개와 밤을 둥글게 박아 찐 떡이다. 봉채떡을 찹쌀로 만드는 것은 부부 금실이 찰떡처럼 잘 화합하기를 바라는 뜻이며, 떡을 두 켜만 안치는 것은 부부 한 쌍을 뜻한다. 붉은 팥고물은 액을 면하게 되기를 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붉은 색은 양의 색으로 음인 액을 쫓는다는 뜻이 있으니, 돌날 붉은 수수경단을 만들거나 동지(冬至)에 팥죽을 먹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떡 위에 박는 대추와 밤은 자손 번창을 상징하는 과실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