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3장 특별한 날, 특별한 음식
  • 4. 돌아가신 분도 산 사람처럼
  • 성복전(成服奠)과 상식
윤성재

사람이 운명하였을 때, 장례를 치르기 전에 영좌(靈座) 앞에 간단히 주 과(酒果)를 차려 놓은 예식을 전(奠)이라 한다. 전은 세상을 떠난 조상신의 영혼이 머무르기 위한 것으로, 아침에 올리는 것을 조전(朝奠), 저녁에 올리는 것을 석전(夕奠)이라 한다. 전은 조상신을 대접하는 제사의 의미가 강하므로 거기에 쓰는 음식을 제품(祭品)이라고 한다. 제품에는 밥·국·찬과 함께 포·과실·술을 올리는데 밥·국·찬 등 상하기 쉬운 것은 차렸다가 잠시 뒤에 치우지만 과실·포·술은 새로 전을 올릴 때까지 두었다가 교환한다.

매달 1일과 15일에는 삭전(朔奠)과 망전(望奠)을 올리는데, 평소보다 제품을 좀 더 풍성하게 한다. 다만 삭전이 망전보다 더 풍성하다. 보통 소채(蔬菜, 나물), 청장(淸醬, 간장), 미식(米食, 떡), 면식(麵食, 국수), 반(飯, 메), 국, 고기, 생선, 비저접(匕箸蝶,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는 접시), 쟁반, 숙수(熟水, 숭늉)를 차린다. 매일 새벽에 모두 조곡(朝哭)을 하고 조전을 올린다. 조전은 해가 뜨면 지내고 석전은 해가 지기 전에 지낸다. 조전을 드릴 때 석전을 치우고, 석전을 드릴 때는 조전을 치운다. 이 전은 시신이 무덤에 들어간 뒤에는 제(祭)로 바뀐다.

또한 식사 때는 살아계실 때와 마찬가지로 찬품(饌品)을 진설하는데, 이것을 상식(上食)이라 한다. 상식은 성복 후부터 탈상(脫喪)까지 올리는데, 죽은 조상을 섬기되 살아 계신 조상 섬기듯 한다는 의미에서 아침저녁으로 올리는 음식이다. 아침상식(朝上食)은 조전 뒤에, 저녁상식(夕上食)은 석전 전에 각각 거행한다. 차림은 밥(메), 국, 반찬, 비저접, 쟁반, 차(숭늉)로 차린다. 과일은 갖추지 않는다. 상식 음식과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을 접시를 마련하고, 술을 따르고 메 뚜껑을 열고 수저를 꽂고 젓가락을 바로 놓고, 한 끼 먹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에 국그릇을 물리고 숭늉을 올리고 조금 뒤에 물린다. 그러므로 장송 의식 기간에는 조전-아침상식-저녁상식-석전의 순서로 상을 차리지만, 실제로는 조전과 석전 때 같이 올리는 경우가 많다. 상식은 살았을 때와 같이 섬기는 것이므로 국을 왼쪽에 놓고 밥을 오 른쪽에 놓으며, 전은 죽은 이를 섬기는 예식이므로 밥을 왼쪽에 놓고 국을 오른쪽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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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선생계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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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전에 오르는 음식은 어떤 종류였을까? 조선 후기에 윤행임(尹行恁, 1762∼1801)은 1798년(무오년) 5월 6일 어머니 조씨의 상을 당했을 때의 일을 『읍혈록(泣血錄)』에 자세히 기록하였는데 그 가운데는 조전과 석전에 대한 기록도 보인다. 그는 조전에는 제철 과일 두 그릇, 포(脯)·해(醢)를 한 그릇씩 놓고, 흰죽(白粥)이나 콩죽(豆粥), 율무수단(薏苡水團), 창면(昌麵), 미식원미(味食元味)182)원미(元味)는 쌀을 팥 타듯 체로 쳐서 싸라기를 만들어 쑨 죽이다. 결국 미식원미는 ‘맛있는 죽’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한 그릇을 철에 따라 종류를 바꿔서 올린다고 하였다. 또 석전에는 제철 과일과 포와 해를 올린다고 하였다. 이렇듯 전의 제품에는 반드시 포와 혜가 올려졌다. 하지만 꼭 그렇게 간단하게만 차리는 것은 아니었다.

표 ‘윤행임의 어머니 조씨의 상례 때 전에 올린 물품’은 발인 전 6월 한 달 동안 조씨의 전에 올려진 제품을 기록한 것이다. 날마다 지내는 전의 제품에 각각 며느리, 손자며느리뿐 아니라 맏아들의 측실이나 종손부(從孫婦), 심지어는 이웃에 사는 사람까지도 제품을 준비하여 전을 드렸다. 때로는 제문(祭文)까지 준비해 오기도 하였다. 제물(祭物)은 형편에 따라 마련하여 차이가 큰지만, 국에서 식혜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차려 보내 물질적인 도움과 어려운 일손을 도와주는 관습을 엿볼 수 있다. 때문에 송시열은 시집가는 딸에게 “남의 제사를 차려 보내거나 아비 벗에게 치전(致奠)을 장만하거나 할 때 모두 내 집 제사같이 하고, 남에게 가는 것이라 하여 부정히 하면 심덕에 해롭고 복이 손상하느니 부디 조심하라.”고 특별히 당부하기도 하였다.183)송시열(宋時烈), 『우암선생계녀서(尤庵先生戒女書)』, 「제사 받드는 도리」(국립 중앙 도서관 소장 古-3652-16). 제품은 국수나 떡, 적, 밀과, 실과, 포, 해가 기본이며, 용안이나 밀조(蜜棗), 건포도 등과 같이 값지고 구하기 힘든 제품도 올랐다. 해삼찜, 전복숙(熟), 생복숙 또한 흔한 음식이 아닌데, 아마도 조씨 부인이 왕실 이외로는 가장 높은 정경부인(貞敬夫人)이었던 것과 관련이 깊은 듯하다.

<표> 윤행임의 어머니 조씨의 상례 때 전에 올린 제품
날짜 올린이 실제 올린 제품(祭品)
6월 19일 둘째 며느리 이씨 국수, 각색 떡, 포, 해
약과, 중계, 각색 다식, 감사과(甘絲果)
6월 19일 둘째 며느리 이씨
황률, 잣, 능금, 자도, 정과, 수정과
생선전, 편육, 연계찜, 어만두
양탕(羘湯), 어탕(魚湯), 계탕(鷄湯), 치탕(雉湯)
육적(肉炙), 간적(肝炙), 어적(魚炙), 꿩 통째로 한 마리
6월 20일 용현의 아내 신씨 국수, 각색 떡, 포, 해
약과, 중계, 각색 다식, 차수(叉手)
수박(西瓜), 사과, 자도, 잣, 대추, 정과, 수정과
생선전, 편육, 간전(肝煎), 삼복찜(蔘鰒烝), 어회(魚膾)
계탕, 간탕(肝湯), 어탕, 해삼탕
육적, 어적 두 꽂이, 계적(鷄炙)
6월 22일 맏아들의 측실(側室)
박씨
국수, 각색 떡, 포, 해
약과, 중계, 각색 다식
수박, 황률, 사과, 정과, 수정과
간전, 어전, 삼복찜, 어회
계탕, 양탕, 어탕
육적, 어적 두 꽂이, 계적
6월 22일 종손(從孫) 상현의
아내 황씨
국수, 각색 떡, 포, 해
약과, 중계, 각색 다식,
사과, 능금, 대추, 수박, 수정과,
어전, 어만두, 삼복찜
족탕(足湯), 양탕, 어탕, 계탕,
육적, 어적 두 꽂이, 계적 한 마리
6월 23일 손자 응현의 아내
이씨
국수, 각색 떡, 포, 해
약과, 중계, 각색 다식
사과, 능금, 대추, 정과, 수정과
어전, 편육, 연계찜
양탕, 어탕, 계탕
육적, 어적 두 꽂이, 치적(雉炙)
6월 24일 서손(庶孫) 봉현의
아내 조씨
국수, 각색 떡, 포, 해
약과, 중계, 각색 다식
사과, 수박, 자도, 황률, 정과, 수정과
어전(간전을 곁들임), 삼복찜. 어회
양탕, 어탕, 계탕
육적, 어적 두 꽂이, 계적
6월 25일 막내딸 이실(李室) 수단(水團), 각색 떡, 포, 해
약과, 중계, 각색 산자, 각색 차수, 각색 다식
잣, 포도, 수박, 사과, 능금, 정과, 수정과
간전, 어전, 갈비찜
육탕, 양탕, 어탕, 계탕, 소탕(素湯)
수상화(水霜花, 상화떡), 감주(甘酒),
육적, 족적(足炙), 계적 한 마리, 어적
6월 25일 재종손(再從孫) 승현 적리(赤梨), 능금, 포도, 수박, 사과, 옥수수
계적
6월 28일 손녀인 이칭의 아내 국수, 각색 떡, 포, 해
능금, 사과, 대추
어만두, 즙적(汁炙, 화양적, 화양느르미)
계탕, 잡탕
계적
6월 28일 서종질(庶從姪) 행정 사과, 능금, 자두
계적
6월 28일 조카 행민의 아내
이씨
국수, 각색 떡, 포, 해
능금, 자두, 참외
어채
치적 한 마리
6월 28일 손녀인 홍용묵 아내 국수, 각색 떡, 포, 해
약과, 중계, 각색 다식, 각색 차수
능금, 사과, 적리, 포도, 잣, 정과, 수정과
어전, 편육, 연계찜, 삼복찜
양탕, 계탕, 어탕, 치탕
육적, 족적, 어적, 계적 한 마리
6월 28일 손서(孫壻) 이칭 사과
계적 한 마리
6월 30일 맏딸 민실(閔室) 국수, 각색 떡, 포, 해
능금, 사과, 잣, 동과산(冬瓜橵)
어전, 해삼찜, 편육
양탕, 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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