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4장 명절 음식 , 그 넉넉함의 향연
  • 1. 한 그릇에 한 살 더 먹는 설날 떡국
  • 새 해 첫 음식, 세찬
이정기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이날 시절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세찬(歲饌)이라 하고, 이때의 술을 세주(歲酒)라고 하였다. 정월 초하루 찾아 온 손님들에게 내놓는 세찬의 상차림(歲饌床)은 어떠하였을까. 예나 지금이나 설날에는 역시 떡국만한 음식이 없다. 떡국은 한자어로 병탕(餠湯) 혹은 탕병(湯餠)이라 하며, 길게 뽑아낸 흰 떡을 어슷하게 썰어 고깃국에 넣고 끓여낸 음식이다. 떡국은 설날 차례에도 쓰이고 손님을 대접할 때에도 내놓았던 음식이다. 『경도잡지(京都雜志)』에도 세찬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으로 떡국을 들고 있다. 옛 속담에 나이를 물을 때 ‘떡국을 몇 그릇 먹었냐’라고 할 정도로 떡국은 새해의 첫 음식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세시잡영(歲時雜詠)」에서 “밉기도 하여라 흰 떡국, 작은 동전처럼 동글동글하네. 사람마다 나이를 더하게 하니, 측은하고 슬퍼서 먹고 싶지 않네.”라고 읊었다. 이는 떡국을 먹으면 나이 한 살을 더 얻게 된다는 뜻으로, 설날 먹는 떡국을 첨세병(添歲餠)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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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만두국
떡만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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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정(權用正, 1801∼?)의 『세시잡영(歲時雜詠)』에는 떡국을 읊은 칠언시가 있다.202)권용정(權用正), 『세시잡영(歲時雜詠)』, 탕병(湯餠).

백옥처럼 순수하고 동전 같이 작은 것 / 溫如白玉小如錢

세찬으로 내올 때에 좋은 말을 전하네 / 歲饌來時賀語傳

인사 온 아이들 더 먹도록 권하니 / 恭喜兒童添喫椀

큰집의 맛좋은 음식은 매년 한결같네 / 大家滋味一年年

이 시에서 떡국에 넣는 떡은 백옥처럼 하얗고 순수함을 상징한다. 이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 깨끗하고 엄숙한 의식을 위한 음식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설날에 지내는 차례상에는 떡국이 빠짐없이 올라가며,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이를 떡국차례라고 불렀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설날 풍속으로 제일 먼저 떡국 만드는 법을 자세하게 적고 있다. “좋은 쌀을 가루로 내어 체에 치고 물로 고수레를 한 다음, 시루에 쪄서 안반 위에 놓고 떡메로 친다. 이를 조금씩 떼어 내어 손으로 비벼 둥글고 길게 만드는데 마치 문어발 같이 늘어놓는다. 펄펄 끓여 놓은 장국에 떡을 동전 모양 같이 썰어 국 속에 넣는데, 끈적끈적하지 않고 부서지지 않은 떡이 잘 된 것이다. 여기에 돼지고기, 쇠고기, 꿩고기, 닭고기를 넣기도 한다.”라고 하였다.203)김매순(金邁淳),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정월(正月) 원일(元日). 떡국을 끓이는 방법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 대부분의 집에서는 떡메를 이용하여 떡을 만들지 않고 방앗간에서 기계로 떡을 뽑아내거나 이미 썰어 놓은 떡을 구입하여 사용한다.

『열양세시기』에서는 떡국 외에 설날의 음식으로 강정을 들고 있는데, 한자어로 강정(羌飣·江精), 건정(乾丁)이라고 한다. 여기에서는 강정 만드는 법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강정은 물을 타지 않은 순수한 술에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떡같이 만들고 가늘고 얇게 잘라 말린다. 말려 놓은 찹쌀 덩어리는 끓는 기름에 넣으면 푸하게 일어나면서 둥둥 뜬다. 이렇게 튀겨진 모양이 꼭 누에고치 같다. 튀겨낸 찹쌀에 엿을 바르고 볶은 흰 참깨를 묻히거나 볶은 콩가루를 묻힌다.”라고 하였다.204)김매순, 『열양세시기』 정월 원일. 누에고치 모양의 찹쌀 덩어리에 깨를 묻히면 깨강정, 콩가루를 묻히면 콩강정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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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강정
여러 가지 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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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물인 이안중(李安中, ?∼?)은 「비년사(肥年詞)」에서 설날의 즐거움을 노래하였다.205)이안중(李安中), 『현동집(玄同集)』, 「비년사(肥年詞)」 설날에는 여러 가지 풍요로운 음식을 먹어 몸에 살이 오르기 때문에 시의 제목도 ‘비년(살찌는 해)’이라 한 것이니 매우 재미있다. 이 시에서는 설날에 먹는 음식으로 특히 떡국과 강정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중 강정에 대해 읊은 부분은 강정 예찬론에 가깝다.

붉은 강정 사이사이 흰 강정 섞였으니 / 紅剛正間白剛正

빙과는 무색하고 약과도 못 미치네 / 氷果無光藥果劣

둥글기는 여지 같고 달기는 꿀 같아 / 圓如荔枝甘如蜜

이 끝의 파삭파삭 소리는 흰 눈이 부서지는 것 같네 / 颯颯齒頭碎寒雪

강정의 알록달록한 색감만으로도 눈을 뗄 수 없겠지만, 강정은 당시 흔하지 않았던 빙과나 약과의 맛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달고 맛있다. 더구나 강정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들리는 바삭바삭하는 소리와 기분은 소복이 내려 쌓인 하얀 눈 위를 걸을 때 들리는 사박사박하는 소리와 그 기분에 비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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