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4장 명절 음식 , 그 넉넉함의 향연
  • 1. 한 그릇에 한 살 더 먹는 설날 떡국
  • 나이순으로 마시는 도소주
이정기

세찬상에 으레 떡국과 강정이 올라간다면, 어른에게는 음식과 함께 도소주(屠蘇酒)를 내어 온다. ‘도소(屠蘇)’란 잡귀를 몰아내고 사람의 정신을 깨운다는 뜻으로, 설날 아침에 세찬과 함께 마시는 찬술이다. 설날에 마신다고 하여 세주(歲酒)라고도 한다. 이 술을 한 해가 시작되는 첫날 마시면 한 해 동안 사사로운 기운을 없애고 오래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이처럼 도소주는 벽사(辟邪)와 기복(祈福)의 의미를 담고 있다. 도소주는 설날의 대표적인 술이지만, 술을 담그는 법이 명확하지 않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도소음(屠蘇飮)이라 하여 백출, 대화, 도라지, 천초, 계심, 호장근, 천오 같은 약재를 일정하게 썰어 베주머니에 넣어 섣달그믐에 우물에 넣었다가 1월 1일 이른 새벽에 이것을 꺼내어 청주 2병을 넣어 끓인 후에 마신다고 하였다. 그런데 반드시 이 재료만으로 도소주를 담근 것 같지는 않다. 도소주를 만들지 못하였을 때에는 다른 약주와 청주를 도소주라고 하여 마시기도 했으며, 향료와 계피 등을 넣어 약주처럼 마시기도 하였다. 이처럼 정월 초하루에 마시는 술을 그냥 도소주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

도소주를 마실 때에는 젊은 사람은 한 해를 얻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마시고, 늙은 사람은 한 해를 잃는 것이기 때문에 뒤에 마신다고 한다. 이렇게 도소주를 마시는 순서에 대한 규칙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나이 들어감을 쓸쓸해하며 읊은 여러 시에서 찾을 수 있다. 신정(申晸, 1628∼1687)이 『분애유고(汾厓遺稿)』 「원조(元朝)」에서 “도소주를 제일 나중에 마신다고 한탄하지 말게나, 이 몸도 역시 일찍이 소년이었다네”라고 노래한 것이나 임상원(任相元)이 『염헌집(恬軒集)』 「정사원일(丁巳元日)」에 “도소주를 마실 때에 내 나이 많아졌음을 깨달았네”라고 한 시구가 그러한 예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거나 역병이 돌아 곡식이 부족하게 되었을 때, 혹은 사치를 금하기 위해 심심찮게 금주령이 내려졌다. 금주령이 내려지면 술 빚는 것 또한 엄격하게 단속하였다. 부유한 양반집에서는 밀주(密酒)를 담가 명절마다 먹을 수 있었겠지만 일반 민가에서는 먹을 양식도 없는데 술을 담글 곡식이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이덕무는 「세시잡영」에서 “관가에서 내린 금주령이 두려워, 도소주조차 담그지 못하네. 백성들이 어찌 알겠는가, 큰 항아리에 청주가 넘치는 줄을”이라고 읊었다. 실제로 국가에서 금주령을 내리면 일반 백성들은 법이 무섭기도 하고 곡식도 넉넉지 않아 세주(歲酒) 담글 엄두도 못 내었다. 그러나 부유한 집의 술 항아리는 차고 넘쳤다.

설날은 추수의 의미가 있는 추석만큼이나 먹을 것이 풍성하다. 그래서 유만공(柳晩恭, 1793∼1869)은 『세시풍요(歲時風謠)』에서 “황우(黃牛) 고기 썰어 놓고 흰 떡도 수북하니 한 해 중에 이때가 가장 풍요롭네. 기름진 음식으로 설날 배불리 먹으면 일 년 내내 배고프지 않네”라고 설날의 풍요로움을 노래하면서, 이 구절 마지막에는 설날 아침에 배불리 먹으면 일 년 내내 굶주리지 않는다는 속신(俗信)이 있음도 설명하고 있다.206)유만공(柳萬恭), 『세시풍요(歲時風謠)』, 「정조(正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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