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4장 명절 음식 , 그 넉넉함의 향연
  • 3. 진달래꽃으로 지진 삼짇날 화전
  • 봄, 꽃 그리고 꽃전
이정기

고려시대에도 음력 3월 3일에 봉은사의 태조 진전(眞殿)에 제사를 지내고, 시냇가에 잔을 띄워 놓고 술을 마시는 계음(禊飮) 행사를 하고, 상사시(上巳詩)를 짓는 풍속이 있었다. 또한 국가에서는 이날을 속절로 삼아 관리에게 휴가를 주었다. 이렇게 삼짇날이 되면 제사를 지낸 후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면서 풍류를 즐겼다. 이를 답청(踏靑)이라 하는데 봄에 피는 꽃들을 구경하고 새로이 돋아난 풀을 밟으며 봄이 오는 것을 즐기는 놀이이다. 그래서 삼짇날을 가리켜 답청절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예전에도 삼짇날에 답청하는 풍속은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양반집 선비들에게도 재미있는 놀이이자 행사였다. 고려와 조선시대 문집에 답청을 하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가 많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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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발한 벚꽃
만발한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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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청과 비슷한 말로 화류(花柳)라고 하여 전국 각지에서 피어나는 봄꽃을 구경하는 꽃놀이가 있는데, 이를 상화(賞花)놀이라고 한다. 요즘에도 봄꽃이 막 피기 시작하는 4월이 되면 진달래꽃 대신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구 경하러 전국 곳곳으로 사람들이 몰린다. 봄기운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여의도 벚꽃 축제, 진해 군항제, 제주 왕벚꽃 축제 등이 열린다. 이때가 되면 여의도 윤중로는 밤낮으로 꽃구경 나온 사람들 때문에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붐빈다. 하얗고 탐스럽게 핀 벚꽃에 바람이라도 시원스레 불면 하얀 눈꽃 송이가 날리듯 장관을 이룬다. 꽃놀이는 있지만 삼짇날의 풍속은 이미 사라졌고 이날을 명절로 여기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 그렇지만 아직도 지방에서는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놓고 진달래화전을 부쳐 먹는 풍속을 간혹 볼 수 있다. 최남선은 『조선 상식』에서 삼짇날의 답청과 꽃놀이를 지방에 따라서 ‘화전한다’라고 하였다 하니, 삼짇날과 화전은 뗄 수 없는 관계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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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화전 부치기 1
진달래화전 부치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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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화전 부치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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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화전 부치기 3
진달래화전 부치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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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음력 2월 말에서 3월까지 매화, 철쭉꽃, 복숭아꽃, 살구꽃, 배꽃, 제비꽃, 그리고 봄의 상징인 개나리와 진달래꽃이 핀다. 여러 꽃 중 철쭉꽃 같은 것은 독하여 먹을 수 없지만 진달래꽃은 식용이 가능하다. 진달래꽃은 한자어로 두견화(杜鵑花)라고 하며, 이것으로 봄내음 물씬 풍기는 꽃전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봄에는 향기롭고 푸른 풀이 땅을 덮고, 다양한 색깔의 꽃들이 피어나 절경을 이룬다. 눈이 즐거워 먹지 않아도 배부를 것 같지만 먹을 거리가 빠진다면 완전한 꽃놀이라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삼짇날의 대표적인 절식으로 화전을 꼽을 수 있는데, 꽃놀이 가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꽃이 재료가 된다. 화전은 동산에 핀 진달래꽃을 그대로 옮 겨 놓은 듯하여 보기에도 아름답고, 진달래꽃으로 전을 부쳤으니 꽃향기도 은은하게 나며, 찹쌀로 빚어 만들었기 때문에 쫄깃하게 씹히는 맛은 미각까지 자극한다.

『동국세시기』에는 화전을 만드는 방법을 간단히 언급하고 있는데, “진달래꽃을 따다가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놓은 후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둥글게 떡을 만들어 기름에 지진다.”216)홍석모(洪錫謨),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삼월(三月) 삼일(三日).고 하였다. 실제로 요즘도 찹쌀가루와 진달래꽃을 한 곳에 넣고 버무려 화전을 지지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면 꽃의 모양이 흐트러져 꽃의 원래 모습을 잃게 된다. 그래서 찹쌀전을 먼저 지지고 전의 바닥이 노릇하게 구워졌을 때 깨끗이 씻어 놓은 진달래꽃을 얹어 익힌다. 하얀 찹쌀전에 분홍색 진달래꽃이 놓여 있는 모습은 따뜻하고 화사한 봄날을 상징하듯 매우 싱그럽고 어여쁘다. 삼짇날의 화전은 대개 진달래꽃으로 만들기 때문에 진달래화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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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화전
진달래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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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화전
여러 가지 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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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선 무쌍 신식 요리 제법』에는 두견전병(杜鵑煎餠, 진달래꽃전병)과 화전의 항목이 달리 나온다. 두견전병은 찹쌀가루에 삶은 밤을 으깨어 소로 넣고 기름에 지지는데, 이때 진달래꽃의 술을 따서 대추를 박듯이 얹는다고 하였다. 반면에 화전은 전병과 만드는 방법은 같지만 전병은 작게 만드는 데 비해 화전은 접시만큼 크게 부쳐서 먹기 좋게 썰어 설탕에 묻 혀 먹는다고 하였다. 실제로 요즘 만들어 먹는 화전은 직경 5㎝ 내외로 보기에도 좋고 먹기에도 간편하게 만들어 전병과 비슷한데, 옛 요리책에 의하면 화전은 그보다 훨씬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꽃전(花煎) 항목도 있는데,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둥글게 빚어 가운데 구멍을 파고 주변을 마치 꽃이 핀 것처럼 만들어 기름에 지져 낸다고 하였다. 이것은 실제 꽃잎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반죽에 여러 가지 색을 물들여 꽃처럼 빚어내는 것이다. 찹쌀 반죽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냉수로 반죽하면 기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소금물을 끓여 더운 김에 반죽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삼짇날의 진달래꽃은 꽃놀이의 으뜸이며, 화전의 재료로 여러 봄꽃 중에 그 가치가 훨씬 크다. 더구나 답청이나 꽃놀이를 가서 진달래꽃을 따 꽃술을 세어보기도 하는데, 이는 진달래꽃의 꽃술이 많은 것으로 그해 풍년을 점치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의 명절 풍습에 담긴 신앙 체계를 엿볼 수 있으며, 이는 명절을 중요하고 길하게 여기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삼짇날의 진달래화전처럼 꽃을 이용하여 화전을 지져 먹는 날이 또 있는데, 바로 음력 9월 9일 중양절이다. 이때는 양력으로 10월 중순∼11월 초순쯤이 되는데, 한여름을 지나 완연한 가을로 접어든 시기이다. 단풍이 색색으로 예쁘게 물들고 노오란 국화가 만발한 산에 올라 가을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게 되는데, 삼짇날의 답청이나 꽃놀이와 같다. 노랗게 핀 국화를 따다가 진달래화전과 동일한 방법으로 만드는데, 이 또한 화전이라고 하며 삼짇날 진달래화전과 구분하여 국화전이라고 한다. 국화전과 함께 배와 유자, 석류를 썰어 꿀물에 탄 화채를 만들어 먹었다. 그런데 화전을 만들 때 진달래꽃이나 장미는 많이 넣어도 좋지만 국화는 많이 넣으면 맛이 쓰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화전의 재료로 진달래꽃은 봄에, 장미는 여름에, 국화는 가을에 이용한다.

삼짇날 답청 가서 먹는 화전과 함께 쑥떡도 오래 전부터 이날의 절식이 다. 쑥은 흔히 캐어 먹을 수 있는 풀이지만, 봄철의 쑥은 부드럽고 향이 그윽하여 국이나 떡에 많이 애용하였다. 새로 나온 어린 쑥에 쌀가루를 섞어 쪄 내면 술상에 으뜸 안주로 친다. 낮에는 부녀자들을 위주의 한 꽃놀이와 화전이, 밤에는 남자들을 중심으로 한 술자리와 쑥떡이 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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