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4장 명절 음식 , 그 넉넉함의 향연
  • 5. 삼복 무더위를 쫓는 개장국
  • 얼음 동동, 가슴 속까지 시원한 음료수
이정기

복날에는 푹 삶은 개장국과 뜨거운 팥죽이 더위를 물리치는 음식으로 최고였다. 그러나 역시 덥고 열이 나면 차갑고 시원한 음식을 찾게 마련이니, 시원한 수박화채와 제호탕 한 그릇이면 더위를 잊을 수 있다. 개장국이나 팥죽이 더위에 지친 몸을 보해주는 역할을 한다면, 얼음을 띄운 찬 화채와 제호탕(醍醐湯)은 좀처럼 멈출 줄 모르는 땀을 식혀주는 역할을 한다. 유만공(柳晩恭, 1793∼1869)은 「복일(伏日)」이라는 한시를 지어 복날의 음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읊었다.225)유만공, 『세시풍요』, 「복일(伏日)」. 더위를 이길 수 있는 음식으로 뜨거운 음식보다 더운 날씨에 어울리는 시원한 음료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무더위에 땀 흘리며 먹는 뜨거운 죽 / 炎天熱粥汗流漿

더위 씻는 방책이라 전하는 말 못 믿겠네. / 未信傳言滌署方

어찌 부귀한 집 제철 음식상에 / 何似貴家時食案

맑고 시원한 한 그릇의 제호탕만하리오. / 醍醐一椀剩淸凉

(복날에 팥죽을 먹으면 더위 먹는 병이 없다고 한다.) / (伏日食荳粥云無暑病)

수박 주발에 수정 같은 얼음 부셔 놓으니 / 瓜椀淸氷劈水晶

차가운 기운이 삼복 더위를 물리치네 / 冷然一氣制三庚

부엌에는 양을 요리하는 모습 보이지 않고 / 庖廚不見羔羊宰

집집마다 죄 없이 달리던 개만 삶는다네. / 無罪家家走狗烹

(복날에 개국을 먹는다.)  (伏日食戌羹)

이 시에서는 삼복의 절식으로 얼음을 띄운 수박화채와 시원한 제호탕을 들고 있다. 무더운 날씨에 뜨거운 팥죽을 먹으며 땀을 흘리기보다 더위를 식히기에는 역시 시원한 음료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 시의 뒷부분도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시원하게 탁족(濯足)이나 목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역시 무더위에는 차가운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마시는 시원한 음료가 제격이다. 여름 제철 과일인 수박의 속을 파내어 그릇을 만들고 여기에 수박 덩어리와 얼음을 부셔 넣고 만든 수박화채는 생각만 해도 뼛속까지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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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화채
수박화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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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생소한 제호탕도 갈증 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었던 듯하다. 제호탕은 조선시대에 내의원(內醫院)에서 만들어 단옷날 왕에게 올렸으며, 왕은 이를 신하들에게 하사하였다. 단옷날 왕에게 올려진 제호탕은 궁중에서 여름 내내 더위를 이기기 위한 음료로 마셨다. 곧 제호탕은 단옷날을 기점으로 만들어 여름 내내 마셨던 셈이니, 단오 절식이라고만도 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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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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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탕은 오매육(烏梅肉, 매실의 껍질을 벗기고 짚불 연기에 그을려 씨를 빼고 살을 말린 것), 초과(草果, 생강과의 신맛이 나는 열매), 사인(砂仁, 생강과의 쭈글쭈글한 열매인 축사밀(縮砂蔤)의 씨), 백단향(白壇香, 단향과의 상록 교목) 같은 약초를 가루 내어 꿀에 버무려 놓았다가 끓는 물에 타서 이를 식힌 후에 마시는 우리나라 전통 음료이다. 이렇게 귀한 약초를 재료로 하여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궁중에서 왕이 먹던 음료이니, 이 시의 설명처럼 제호탕은 일반 백성들이 모두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동의보감』에는 제호탕에 대해 “더위를 피하게 하고 갈증을 그치게 하며 위를 튼튼하게 하고 장의 기능을 조절하여 설사를 그치게 하는 효능이 있어, 단옷날 이것을 마시면 여름을 잘 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제호탕은 여름에 마시는 시원한 음료일 뿐만 아니라 여러 약초로 만들어 더위에 지친 몸을 보해 주는 약효도 있었다.

수박화채나 제호탕 외에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시원한 음료로 수단(水團)이 있다. 이진망(李眞望, 1672∼1737)은 『도운유집(陶雲遺集)』의 「복일(伏日)」에서 “아이나 어른들은 더위와 목마름으로 곤란하고, …… 흰 경단(玉團)은 얼음물에 잠겨 붉은 이슬처럼 잔에 가득하네”라 읊고 있다.226)이진망(李眞望), 『도운유집(陶雲遺集)』, 「복일(伏日)」. 복날에 더위로 타는 듯한 갈증을 얼음물에 경단이 동동 떠 있는 음료가 단숨에 해소시켜 줄 듯한 느낌이다. 여기에 묘사하고 있는 경단이 떠 있는 붉은 빛의 얼음물은 수단을 가리킨다. 수단은 쌀가루를 쪄서 둥글게 빚어 끓는 물에 데쳐 오미자를 우려낸 물에 띄워 시원하게 먹는 일종의 화채이다. 『동국세시기』 등에서는 수단을 음력 6월 15일 유두(流頭)에 먹는다고 하였으나 이 또한 유둣날만 먹었던 음식은 아니다. 음력 6월 15일의 유두와 음력 6∼7월에 드는 삼복은 시기도 겹치기 쉽고, 풍습 또한 흡사하다. 조수삼이 월별로 세시풍속을 적어 놓은 『세시기(歲時記)』에는 6월 15일에 개장국을 먹는 풍습을 적고 이후 삼복에 대한 설명에는 유두와 같다고 하였다. 또한 『해동죽지』에도 유두물맞이와 같은 풍습이 복날 풍습으로 기록되어 있다. 유두와 삼복의 풍습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이기기 위한 측면에서 동일하며, 음식도 같은 측면에서 분명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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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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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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