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4장 명절 음식 , 그 넉넉함의 향연
  • 6. 햅쌀로 만든, 솔잎 향 그윽한 추석 송편
  • 수확을 의미하는 추석
이정기

신라 3대 유리왕 9년(32)에 왕이 육부(六部)를 정하고 이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왕녀 두 사람이 각각 부내의 여자를 거느려 편을 나눈다. 7월 16일부터 매일 아침 일찍 육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고 을야(乙夜, 밤 10시경)에 파하며,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의 많고 적은 것을 살핀다. 지는 편이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때 가무백희(歌舞百戲)를 행하니 이를 가배라고 한다.227)『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

기록에서처럼 추석의 유래는 신라의 가배(嘉排)에서 찾는다. 신라에서 여공(女工)을 장려하기 위해 서울 안의 여자를 두 편으로 나누고 7월 15일부터 길쌈내기를 시작하여 8월 15일에 승부를 가리도록 하였다. 지는 편이 음식을 차려 이긴 편을 대접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함께 놀고 즐기는데, 이러한 행위를 가배라고 한다는 기록이다. 이것이 추석의 유래가 되었고 고려 가요 「동동」에도 8월 15일을 가배라고 하였으니 그 명칭이 고려 때까지도 이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와 조선에서는 가배보다 추석이나 중추(中秋)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그러나 추석의 유래는 여전히 신라의 가배에서 찾고 있다. 이 두 명칭은 시기나 용도의 차이는 없으나 중추의 용례가 추석보다 훨씬 많다. 조수삼은 『추재집(秋齋集)』에서 8월 15일을 추석이라고 하면서 이 말은 중추에 달구경을 하는 저녁, 혹은 가을(秋)에 햇곡식을 수확하여 농사가 마무리된 때를 저녁(夕)과 같은 것으로 여겨 이르는 것이라고 하였다. 시기를 기준으로 가을의 중심(中秋)을 뜻하는 중추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추석이 더 의미가 깊은 말인 듯하다. 그러나 두 용어의 선후나 중요도를 따질 수는 없다.

요즘은 한가위라는 우리말 표현도 익숙하다. 가배를 우리말로 표기하면 가위가 되는데, ‘가위’에 해당하는 음을 빌려 표기한 한자가 가배이다. 가배를 발음하면 ‘’가 되고 그 뜻은 ‘가운데(中)’ 혹은 절반(半)의 어근인 ‘갑’에 명사형 접미사 ‘-이’가 붙은 형태이다. 따라서 추석은 가을의 중간, 가을의 반이라는 뜻이 된다. 추석을 의미하는 중추절(仲秋節)도 가을의 세 달인 7·8·9월을 초추, 중추, 종추로 나누었을 때 중추인 8월, 8월에서도 가운데 날인 15일을 의미한다.

추석의 풍습으로는 단연 풍성한 보름달을 구경하는 달맞이가 있다. 고 려시대에는 왕도 추석에 각종 연회를 베풀고 달구경을 했는데, 예종 때 왕이 문신들을 거느리고 중광전에서 달구경을 하고 영월시(詠月詩)를 지으니 문신들이 이에 화답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충혜왕은 내탕고(內帑庫)에서 오종포(五綜布) 100필을 내어 신궁(新宮)에서 중추에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또한 우왕은 중추에 6도의 창우(倡優, 광대)를 불러 동강에서 각종 놀이를 베풀었는데, 국고로 이 놀이의 비용을 써서 재정이 탕진될 정도였다. 특히 달구경(看月·賞月)은 추석의 시제(詩題)로도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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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15일이면 으레 떠오르는 보름달이지만 추석의 보름달은 유난히 더욱 크고 밝게 느껴진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여(李畬, 1645∼1718)는 『수곡집(睡谷集)』에서 “가을 달은 거울 같이 둥글고 밝은데, 정월 대보름달은 이에 절반도 못 미칠” 정도라고 극찬하였다. 1년에 한 번 뜨는 추석 보름달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1년을 기다리는 수고로움을 감수한다는 이야기이다. 달 속의 옥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고 산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로 추석 보름달은 신비스러운 존재였다.

달구경에 빠질 수 없는 것은 역시 술 한 잔의 즐거움이다. 어떤 이는 술독과 술잔이 달구경(賞月)을 즐긴다고 하면서, 술을 마시면서 달구경하는 즐거움을 시로 읊고 있다. 여기에 주변의 가까운 강에서 술을 벗 삼아 뱃놀이를 하면서 추석의 만월을 구경하는 것이야말로 금상첨화이다. 상상해 보라. 무더운 여름을 지내고 서늘해진 가을 밤, 강가에 작은 배 한 척을 띄우고 그 안에 휘영청 밝은 달을 싣고 마음 꼭 맞는 벗과 함께 가득 담긴 술독에서 술 한 잔씩을 기울이며 달구경하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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