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4장 명절 음식 , 그 넉넉함의 향연
  • 6. 햅쌀로 만든, 솔잎 향 그윽한 추석 송편
  • 햅쌀로 빚은 송편과 신도주
이정기

추석은 갖가지 결실을 보는 때이다. 수확의 시기이니 먹을거리도 매우 풍성하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기대에 비해 추석 명절 음식에 관한 기록은 그리 풍성하지 않다. 추석날 조리하여 먹는 특별한 음식이라면 송편이나 토란국 정도이고, 햅쌀로 지은 밥이나 햅쌀로 빚은 술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음식에도 그해 농사에서 새로 수확한 쌀이 원료가 되었다는 의미 외에 명절과 관련된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지는 않다. 아마도 조리하지 않고 그냥 먹을 수 있는 과일이나 열매가 풍성하기 때문이겠다.

옛사람들은 농사지은 첫 과일이나 곡식을 먼저 사직과 조상에게 올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데, 이를 천신(薦新)이라 한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는 국가에서 각 월마다 종묘에 천신하는 물품 목록이 있고, 일반 가정에서도 한식, 단오, 추석, 동지에 사당에 천신한다.228)『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수록되어 있는 천신 품목은 정월에 청어, 2월에 빙송어, 3월에 고사리, 4월에 죽순, 5월에 보리·밀·오이·가지·앵두·살구, 6월에 벼·기장·피·조·가자·동과 능금, 7월에 연어 배, 8월에 감·대추·밤·신도주, 9월에 기러기, 10월에 귤·감·꿩·뱀장어·참새·도미, 11월에 천아(백조)·과류·어류, 12월 바다에서 생산되는 이름 있는 어류과 산토끼 같은 것이다. 『세시풍요』에도 처음 붉어진 대추와 벌어진 밤송이 같은 가을의 첫 열매를 상신(嘗新)한다고 하였는데, 상신은 그해에 새로 수확한 곡식을 먼저 종묘나 사당에 제사 지낸 후에 맛보는 것을 말한다.

추석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이날 제상에는 메(제삿밥)와 갱(제삿국)을 올리지 않고 햇곡식으로 빚은 송편을 올린다. 메와 갱을 놓지 않기 때문에 숟가락은 놓지 않고 젓가락만 놓는다. 제상에는 송편과 함께 그해 추수한 과일들을 진설하여 한 해 농사를 무사히 끝나게 해준 조상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차례가 끝나면 온 가족이 모여 제사 지낸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을 한다. 음복은 제사 후에 행해지는 의례적인 절차 가운데 하나이지만 추석차례 후의 음복은 앞서 설명한 상신의 의미가 있다.

정학유의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번역하여 칠언시로 지은 김형수(金逈洙)의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 ‘8월’에는 추석 무렵의 풍성 한 수확과 분주한 장터, 차례상에 올릴 제물(祭物) 준비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중 음식과 관련된 부분만 살펴보면, “포를 뜬 조기와 말린 북어, 추석 가절(秋夕佳節)에 사용할 제물(祭物)일세. 오려 송편과 햇수수로 빚은 술, 박나물 볶아 내고 토란으로 국 끓여, 정갈하게 차린 물품 선산(先壟)에 제사하고 이웃에 나눠주며 기쁜 정을 함께 하네” 하였다.

이처럼 추석에 사람들은 차례를 지낸 후 하얀 햅쌀밥(新稻飯)과 토란국(土蓮羹)을 먹고 한식 때처럼 집집마다 성묘를 하러 산소에 오른다. 또한 닭고기(黃鷄), 막걸리(白酒) 등을 준비하여 모든 이웃들과 먹고 마시며 즐긴다.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이때만큼은 햅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았으며, 과실도 풍성하게 차릴 수 있었다. 또한 추석 즈음에는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해지므로 사람들은 여름옷을 벗고 가을옷을 준비하여야한다. 그래서 추석 명절에 맞춰 새 옷을 지어 입는데 이것이 추석빔이다. 이러한 추석의 풍성함을 두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고 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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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차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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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의 때인 추석에 맞게 가장 의미 있는 음식으로는 역시 햅쌀로 빚은 송편(松餠)과 신도주(新稻酒), 토란국을 들 수 있다. 그중 연한 솔잎을 켜켜 이 깔고 큼지막한 시루에 쪄낸 송편이 으뜸이다. 『해동죽지』에서는 8월 15일 중추에 집집마다 쌀떡을 만들어 솔잎을 깔고 쪄서 산소에 올라가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추석송편이라 한다고 하였다. 송편이라는 이름은 솔잎을 깔고 찌는 떡(松餠)이라는 의미이다. 송편을 찔 때에는 시루 바닥에 솔잎을 깔고 떡은 서로 닿지 않을 정도로 떼어 놓고, 다시 그 위에 송편이 보이지 않을 만큼 솔잎을 덮는다. 이렇게 시루에 솔잎과 송편을 번갈아 가며 넣고 떡을 찌면 솔잎 향기가 떡에 은은하게 배고 떡에는 자연스럽게 솔잎의 무늬도 생긴다. 쪄낸 송편은 냉수에 쏟아 손으로 일일이 솔잎을 떼어 내고 건져 참기름을 발라 놓고 그냥 먹거나 꿀에 찍어 먹기도 한다. 송편을 찔 때에는 다른 떡과 달리 오래 뜸을 드리면 좋지 않기 때문에 뜨거운 김을 한 번 씌어 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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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
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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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은 보통 추석 전날 가족들이 모여 빚게 되는데, 떡 반죽을 떼어 엄지손가락으로 구멍을 내고 만들어 놓은 소를 그 속에 가득 넣고 빚는다. 송편은 일정하게 정해진 모양이 없고 만드는 사람마다 다른데, 대체로 모시조개나 반달 모양으로 빚으면 예쁘다. 어떠한 소를 넣고 빚었는지에 따라 팥을 넣으면 팥송편, 콩을 넣으면 콩송편, 대추를 넣으면 대추송편, 밤을 넣으면 밤송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흰 쌀가루에 찌어낸 쑥을 섞어 떡 반죽을 만들면 쑥송편이 된다. 빚어낸 송편의 모양이나 쪄낸 송편을 먹을 때 여러 속신이 있다. 송편을 잘 빚으면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거나 예쁜 딸을 낳는다고 하며, 쪄낸 송편을 깨물어 설익었으면 딸을 낳고 잘 익었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보통 송편의 소는 익힌 것을 사용하므로 송편이 설익는 경우는 드물다. 옛날 아들을 낳기 바라던 마음에서 생겨난 속신이다.

갓 수확한 쌀로 빚는 신도주도 대표적인 추석 음식으로 꼽는다. 신도주는 특별한 양조법이 있는 술이 아니라 새로 추수한 쌀로 빚는 술을 뜻한다. 그래서 이름도 신도(新稻, 새로운 쌀)라고 한 것이니, 신도주는 술의 향이나 맛보다는 새로 수확한 쌀로 빚는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조선 무쌍 신식 요리 제법』에도 신도주는 햇벼로 담그는 것인데 술을 4∼5일 만에 뜨기 때문에 별로 좋은 술이 아니라고 하였다. 더구나 제대로 발효되지 않은 술을 마시면 배도 아프고 좋지 않으며, 이것을 오래 두었다가 먹는 것도 좋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이렇게 급히 담근 신도주를 차례나 성묘에 올리거나 달맞이나 뱃놀이 때 마셨다고 볼 수는 없다. 역시 신도주는 새로 추수한 쌀로 담근다는 명칭상의 의미가 중요하며, 실제로 추석 전에 빚어 놓았다가 추석이 되어서 마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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