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5장 천년을 함께한 차
  • 1. 불교 문화와 차
  • 불교 미술과 차 공양상
김지원

불교와 차가 깊은 관련이 있는 만큼 불교 미술에도 차 문화가 반영되었다. 부처에게 차 공양을 올리는 일이 성행했던 만큼 불교 미술에도 차 공양상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차 공양이 보편적으로 이루어진 8∼9세기는 석조 미술이 크게 융성하던 시대로 사찰 안의 탑이나 사리탑, 불상의 광배 등에 차 공양상이 자주 조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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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4사자 석탑
화엄사 4사자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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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에 있는 화엄사는 544년(진흥왕 5)에 연기 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연기 조사는 『화엄사지(華嚴寺志)』에 인도 승려로 인도에서 가져온 차 종자를 장죽전(長竹田)에 심었다고 나온다. 이 기록들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데, 현재로서는 연기 조사를 진흥왕 때 승려가 아니라, 경덕왕 때 황룡사에서 현재까지도 전해오는 신라 『대방광불화엄경(大方光佛華嚴經)』 사경을 완성시키고(755), 이후 화엄사를 대가람으로 중창한 승려로 보고 있다.242)정병삼·김봉렬·소재구, 『화엄사』, 대원사, 2000, 23∼29쪽

화엄사 각황전 뒤쪽 계단을 올라가면 4사자 삼층 석탑(四獅子三層石塔)이 있다. 2층으로 된 기단부 위에 3층 탑신을 올렸는데, 위층 기단은 네 마리의 사자 기둥으로 이루어졌다. 각 모퉁이의 사자 기둥 한 가운데에는 마치 탑신을 머 리로 받치는 듯한 공양상이 서 있다. 공양상은 연꽃 위에 올라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있다. 석탑 앞에는 배례석이 있고 그 앞에 석등이 있다. 석등도 석탑과 마찬가지로 위의 화사석(火舍石, 석등의 중대석 위에 있는 등불을 밝히도록 된 부분)은 그대로지만 아래 간석(竿石, 받침대 모양의 돌)은 세 기둥 안에 공양상을 두어 공양상의 머리로 화사석을 받치는 형태이다. 석등의 공양상은 한쪽 무릎을 꿇고, 왼손에는 찻잔을 들고 있다. 앞의 탑을 향해 차 공양을 올리는 모습이다. 이를 두고 석등의 공양상이 연기 조사이고 탑의 공양상이 연기 조사의 어머니로,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 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실제 이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리탑을 향해 공양상이 차를 올리는 모습임은 분명하다. 사리탑은 부처를 의미하기도, 조사(祖師)를 의미하기도 한다. 석등 안에 차 공양상을 새김으로써 등 공양과 차 공양을 함께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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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 기단 내 차 공양상
석등 기단 내 차 공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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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 석조여래좌상 중대석 차 공양상
청량사 석조여래좌상 중대석 차 공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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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淸凉寺)는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에 있는 절이다. 『삼국사기』에는 최치원이 벼슬할 뜻을 버리고 마음대로 생활할 때 다녔던 절로 나온다. 늦어도 통일 신라 말기 즈음에는 창건된 듯하다. 청량사의 석조석가여래좌상(淸凉寺石造釋迦如來坐像)은 실제 사람처럼 균형 잡힌 어깨와 가슴, 풍만한 얼굴에서 9세기 통일 신라 불상의 특징을 잘 볼 수 있다. 불상은 3단으로 된 사각 대좌 위에 놓여 있다. 대좌의 중대석 네 면에는 한 면에 두 구씩 여덟 구의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합장을 하거나 금강저(金剛杵) 같은 지물을 든 보살상도 있지만, 그 가운데 네 구의 보살이 둥근 찻잔을 들고 부처에게 차 공양을 하고 있다. 찻잔을 얼굴 옆까지 높게 들어 올린 모습도 있고, 가슴 한 가운데 들고 있는 모습도 있다. 찻잔은 부처에게 올리는 차가 담긴 찻잔인 만큼 굽이 높거나 잔 받침이 있는 탁잔으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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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문수보살상
석굴암 문수보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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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은 중앙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보살상, 십대 제자, 사천왕 등이 배치되었다. 석가모니의 오른쪽 제석천 옆에는 문수보살상(文殊菩薩像)이 있는데, 오른손에 찻잔을 들고 있다. 연꽃 위에서 오른발을 내딛어 중앙 석가모니를 향해 차 공양을 올리러 가는 장면이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천의(天衣) 자락은 어깨부터 다리까지 물 흐르듯 내려온다. 찻잔을 가볍게 쥔 오른손은 어깨까지 높이 올렸다. 바람에 나부끼듯 몸을 감싼 천의 자락이 살짝 흔들리고 있는데, 차향도 그 바람을 타고 석굴 가득히 퍼지는 듯하다.

석굴암은 751년(경덕왕 10)에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774년(혜공왕 10)에 완성되었다. 충담사가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에게 차를 올렸던 765년과 같은 시대이다. 8세기에 차 공양이 보편적으로 행해졌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차 공양을 올리는 문수보살상은 석굴암에서만 볼 수 있다. 왜 문수보살이 차를 올리고 있을까?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보살이다. 『법화경』, 『화엄경』 등 여러 대승 경전에서 문수보살은 상수(上首, 가장 상위, 우두머리, 윗사람)가 되어 선지식으로서의 활약상을 보여 준다. 상수 보살인 문수보살이 올리는 차 공양은 석가모니를 향한 구도자의 마음을 대신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물은 불법에 비유된다. 진리에 목말라 하는 구도자에게 지혜의 보살인 문수보살이 불법과 같은 차로 그 갈증을 해소해 주는 것은 당연하다. 문수보살의 차 공양은 석가모니를 위한 차 공양이기도 하지만 불법을 찾아 석굴암 안으로 들어온 구도자, 미래의 부처를 위한 차 공양이기도 하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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