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5장 천년을 함께한 차
  • 2. 일상 속에 들어온 차
  • 차 문화의 산물, 고려청자 다완
김지원

좋은 차에는 이에 알맞은 좋은 찻그릇과 관련 다구가 갖춰져야 안성맞춤이다. 중요한 국가 행사나 불교 의례 때 진다 의식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쓰는 찻그릇과 다구도 중요하였다. 또, 차 생활이 일상화되어 가면서 귀족들은 값비싼 다구를 마련하였다. 고급 차 생활의 유행은 고급 다구의 제작을 불러일으켰으며 그중에서도 도자기 산업을 발전하게 만들었다.

서긍은 고려의 도자기에 감탄하여 『고려도경』에 많은 기록을 남겼다. 그는 고려인들이 차 마시기를 좋아하여 다구를 잘 만드는데 금색 꽃무늬가 있는 검은 잔(金花烏盞), 비취색 작은 찻그릇(翡色小盞), 은화로(銀爐), 찻물 끓이는 세발 솥(湯鼎)이 있다고 하였다. 또 궁궐에서는 대부분 금칠한 것을 썼고 혹은 은으로 된 것도 있지만 푸른색 도기(靑陶器)를 귀하게 여긴다고 하였다.267)『고려도경』 제26권, 연례(燕禮), 연의(燕儀) ; 『고려도경』 제32권, 기명 3, 다조(茶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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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음각초화문화형탁잔
청자음각초화문화형탁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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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긍이 말한 비취색 작은 찻그릇과 푸른색 도기가 바로 오늘날 비색 청자 혹은 순청자라고 부르는 고려청자이다. 서긍은 다른 다구는 중국과 비슷하다고 하면서도 고려청자에 대해서는 색과 형태에 관심을 보이며 감탄한다. 이는 1123년 당시 뛰어난 순청자 찻잔의 모습을 알려 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서긍이 봤던 비취색의 작은 찻그릇은 1146년 안장된 인종의 장릉(長陵)에서 출토된 청자음각초화문화형탁잔(靑磁陰刻草花文花形托盞)과 비슷하였을 것이다. 탁잔은 왕이나 신하에게 올리는 진다용 찻잔으로 잔 받침이 따로 있었다. 의례에서 왕에게 차를 올릴 때는 다른 곳에서 차를 다린 뒤 들고 들어와 뚜껑을 열어 차를 권하였다. 차를 잔에 담아 들고 갔다면 차가 쏟아지지 않도록 잔 받침이 있거나, 들고 가는 동안 차의 향이 날아가지 않게 뚜껑이 있는 탁잔을 사용했을 것이다.

고려청자의 제작은 자기소(瓷器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완성된 청자들은 공물(貢物)로 국가에 바쳤다. 각 소에서 만든 도자기는 바닷길을 이용하여 개경으로 조운(漕運)한 다음 왕실, 관청, 귀족 등이 사용하였다. 고려청자의 특징인 상감 기법은 1150년대에 제작한 청자에 처음 시문(施紋)되면서 점차 발전되어 녹색 청자에 흑백의 상감 문양이 조화를 이루는 독창적인 도자기로 완성되었다.

찻그릇에는 주로 국화꽃, 나비, 구름과 학, 풍경이 상감되었다. 차를 마시면서 꽃을 감상할 수도 있고, 구름 속을 날아다니는 학을 볼 수도 있다. 고려인들의 멋이 가장 잘 드러난 찻그릇은 포류수금문(蒲柳水禽紋, 갈대·버 드나무·연못·동물 등의 문양)을 상감한 청자이다. 포류수금문은 상감 청자의 전성기인 13세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양으로 찻그릇 안쪽에 버드나무와 갈대, 하얀 오리를 새겼다. 여기에 차를 따르면 실제 연못 주변 풍경이 된다. 차가 만들어 낸 푸른 연못 사이를 한가롭게 헤엄치는 오리,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버드나무와 갈대, 그야말로 찻그릇 속이 바로 연못이 된다. 시원한 차향은 마치 소나무 숲과 대나무 숲에 스치는 바람과 같다. 찻그릇을 들면 손 안에 가득 풍경이 담긴다. 차를 마시면서 내가 자연이 되고 자연이 내가 될 수 있다. 문양을 찻그릇 안쪽 세 곳에 새겼기 때문에 차를 마시는 이도 볼 수 있고, 차를 함께 나누는 친구도 볼 수 있다. 청자 찻그릇의 푸른색은 차의 색을 더욱 빛나게 해준다. 고려인들은 차 맛을 음미하며 마시는데 그치지 않고 차를 찻그릇과 함께 보고 즐기려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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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상감국화문탁잔(靑磁象嵌菊花文托盞)
청자상감국화문탁잔(靑磁象嵌菊花文托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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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이렇게 고려 도자기 문화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였다. 차도 중국에서 들어왔지만 고려에서 새롭고 독특한 차 문화를 만들어 냈다. 고려청자도 처음에는 중국 도자를 본떠서 만들었지만, 고려인들의 일상생활 속에 차가 깊숙이 스며들면서 중국보다 더 뛰어난 고려인들의 독창적인 도자 문화가 새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특히 고려청자로 된 다구들은 형태나 기법에서 정교하고 품격 있는 귀족적인 멋을 가지고 있어 중국으로 수출까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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