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1권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 전통의 흐름
  •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 전통의 흐름을 내면서
  • 삼국의 불교 수용과 발전
정병삼

4세기 삼국시대에 우리나라에 수용된 불교는 발생지 인도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중국 문화와의 교섭 속에 정착된 중국 불교였다. 삼국 불교는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의 문화 차이만큼 서로 다른 양상을 띠며 이해되고 수용되었다. 왕권 중심의 강력한 국가를 지향하던 삼국은 당시 고도의 사상 체계를 갖추고 있던 불교에 대해 왕실을 중심으로 깊은 관심을 갖고 국가 발전의 디딤돌로 삼고자 불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고구려가 372년(소수림왕 2)에 전진(前秦)의 순도(順道)를 통해 삼국 중 가장 먼저 불교를 받아들였다. 3년 후에는 성문사 등 사찰을 지어 불법을 장려하였다. 백제는 384년(침류왕 1)에 동진(東晉)에서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불교를 가져오자 왕이 궁중에 맞이하여 공경하였다. 고구려와 백제는 거의 동시에 남북조 불교를 수용하였는데, 이 공식 수용 이전에 두 나라는 이미 불교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신라는 불교 수용이 늦어 527년(법흥왕 14)에야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가 공인되었다. 훨씬 전부터 신라 사회에 불교는 알려졌으나 공식적으로 인정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법흥왕은 율령을 공포하고 지방 제도와 중앙 조직을 개편하여 지방 세력을 중앙에 집중시키면서 이에 걸맞은 새로운 이념 체계로서 보편적인 불교 원리를 수용하였다. 불교는 이 시기 사회 변화에 따른 새로운 국가 정신의 확립에 기여하고 강화된 왕권의 우월성을 확보하는 데 힘이 되었다. 또한, 중국의 제반 문화 현상을 폭넓게 전수해 옴으로써 새로운 문화 창조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삼국의 불교는 그동안 전통 신앙인 무교(巫敎)가 맡던 사상적인 역할을 정교하면서 탄력적인 사유 체계와 다양한 문화 복합체로 대신하였다. 이를 통해 초부족적인 국가 정신의 확립에 기여하고 왕권 중심의 국가 체제를 이룩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특히, 신라는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국가 체제를 정비해 나가고 왕권을 강화시켜 나갔기에 처음부터 왕권과 밀착된 상태에서 불교가 수용되고 진전되었다. 전통 신앙과 연결된 귀족들의 종교적 권위를 박탈하는 대신 인과응보설(因果應報說)에 근거한 윤회전생설(輪回轉生說)을 통해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귀족들의 특권을 옹호해 주기도 하였다.

신라 초기 불교의 중심 교리는 업설(業說)이었다. 삼국이 초기에 불교에 가졌던 기대는 불법을 믿어 복을 구하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정법에 따라 세상을 통일하고 선정을 펼친다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이상적인 군주로 여겨져, 하늘의 권위를 빌던 기존 성왕 관념을 대신하였다. 이 전륜성왕의 치세에는 미륵불이 출현한다고 하는데, 이는 진흥왕 때 조직화된 화랑 제도의 정신적 기반을 이루었다.

신라에서는 여기서 나아가 신라 왕실과 부처를 동일하게 여기는 진종설(眞種說)이 성립되었다. 진평왕은 자신과 왕비의 이름을 석가의 부모 이름과 같이 하고 그의 딸인 선덕여왕의 이름은 부처의 이름으로, 조카인 진덕여왕은 경전 주인공의 이름으로 하였다. 이러한 불교식 왕명은 신라 왕실을 불교적으로 신성화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 밖에도 종래의 천신(天神) 신앙을 중심으로 한 무교 대신 이 땅이 오래 전부터 불교와 인연이 있다는 불연국토설(佛緣國土說)이나 팔관회(八關會), 백고좌회(百高座會) 같은 불교 행사 그리고 밀교적 방법에 의해 병을 치료하는 등의 불교 신앙이 자리 잡아 갔다.

한편, 불교의 수용과 진전은 중국 승려의 왕래와 원광(圓光)이나 자장(慈藏) 같은 중국 유학승의 활동을 통해 선진 문물이 들어오는 통로가 되었으며, 황룡사 같은 여러 장대한 사원의 건립은 건축, 조각, 공예 등 미술과 음악을 비롯한 제반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기도 하였다.

불교 사상도 상당한 성과를 축적하였다. 고구려에서는 승랑(僧朗) 이래 삼론(三論)에 대한 이해가 진전되어 많은 승려가 이의 연구에 집중하였고, 이 밖에 보덕(普德)의 열반학도 높은 수준을 이루었다. 백제에서는 계율학(戒律學)에 특히 관심이 깊어 많은 성과를 이루었고, 혜현(慧顯) 등의 법화(法華) 사상도 뛰어났으며 삼론과 열반학(涅槃學)도 깊이 있게 다루어졌다. 신라에서는 원광의 섭론(攝論)과 자장을 비롯한 여러 승려의 계율학 이외에도 법화, 화엄(華嚴)의 독송과 밀교 등 다양한 교학이 연구되었다. 점찰법회(占察法會)를 통해 참회 신앙이 소개되고 미륵 신앙이 널리 수용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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