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1권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 전통의 흐름
  • 제1장 불교의 수용과 신앙의 시작
  • 2. 삼국의 불교학
  • 고구려의 불교학
김남윤

고구려에서 불교에 대한 이해는 격의 불교에서 시작되었다. 불교 공인 이전에 동진의 고승 지둔 도림은 고구려 도인에게 축잠 법심(竺潛法深)의 덕을 칭찬한 편지를 보냈다. 지둔과 축잠 두 사람은 당시 중국 불교계에 크게 유행하고 있던 격의 불교의 대표적 학장이었다. 도림의 서신을 받은 고구려 도인도 상당한 수준을 갖춘 승려였을 것이므로 고구려에서 격의 불교를 이해하는 수준이 높았음을 엿볼 수 있다.

격의 불교는 불교의 교리를 설명하는데 노장 사상(老莊思想)을 빌어 설명하는 것이다. 중국 불교 초기에는 반야(般若)·공(空)을 노장 사상의 ‘무(無)’로써 해석하였다. 이처럼 노장 사상으로 불교를 설명하는 것이 중국에서 처음에 불교를 이해하는 방법이었다.

격의 불교에서 시작된 고구려의 불교학은 중국과 교류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의연(義淵)은 576년(평원왕 18) 승상 왕고덕(王高德)의 청에 따라 북제(北齊)의 고승 법상(法上, 495∼580)에게 가서 불법의 시말 연유와 『십지론(十地論)』·『지도론(智度論)』·『지지론(地持論)』·『금강반 야론(金剛般若論)』 등에 관하여 자세한 것을 묻고 돌아왔다.29)『해동고승전』 권1, 석의연(釋義淵). 법상은 혜광(慧光) 문하의 뛰어난 제자로서 십지·지지·능가(楞伽)·열반(涅槃) 등의 경론을 강하였고, 북제 문선제(文宣帝)의 존숭을 받아 소현 대통(昭玄大統)이 되어 200만이 넘는 승니를 이끌었다는 고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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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지 곧, 『십지경론』은 세친(世親)의 저술로 보리류지(菩提流支)와 늑나마제(勒那摩提)가 511년 한역(漢譯)하였고, 북제의 혜광이 연구하여 지론학파(地論學派)가 성립되었다. 당시 고구려에도 지론학이 알려져 왕고덕 같은 귀족이 관심을 가지고 그 저자와 저술 연기에 대한 것을 알아보게 하였을 것이다. 불법 시말에 대한 법상의 답변은 “주(周) 소왕(昭王) 24년 갑인(甲寅)에 부처가 탄생하였다.”는 것이었다. 이 연대는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써 온 불기(佛紀)와 일치하는 것으로 이때부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30)고익진, 앞의 책, 117쪽.

반야 사상이 노장 사상과 구분되어 본격적으로 이해된 것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이 중국에 들어와 용수(龍樹)·제파(提婆)의 대승론서(大乘論書)들을 번역하면서부터였다. 그가 번역한 『중론(中論)』·『십이문론(十二門論)』·『백론(百論)』을 바탕으로 하여 삼론학파(三論學派)가 성립되었다. 삼론에서는 모든 존재는 연기할 뿐이고 독자적인 존재성(自性)은 없다고 보아 특히 공(空)을 강조하였다. 중국에서 삼론학은 6세기 중반부터 1세기 동안 성행하였다.

이 무렵 고구려에서도 삼론학 연구가 활발하였던 듯하다. 고구려 출신의 승랑(僧朗)은 6세기 초에 중국 강남에 머물며 삼론학의 기초를 닦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삼론학은 승랑의 사상을 기점으로 신삼론(新三論)이라고 하는데 승랑은 공(空)의 면과 가(假)의 면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 실상이며 이것이 곧 중도(中道)라고 하였다. 중국에서 활동한 승랑은 고구려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의 사상은 삼국과 일본으로 전해졌다. 승랑 이후 삼론학이 융성한 시기에 중국에서 활동한 고구려 출신 삼론학승으로 실법사(實法師)와 인법사(印法師)가 있었다.

고구려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학승들도 주로 삼론학자였고 이들은 일본 불교에 큰 역할을 하였다. 혜자(慧慈)는 595년(영양왕 6) 일본에 건너가 백제승 혜총(慧聰)과 함께 쇼토쿠 태자(聖德太子)의 스승이 되어 법흥사(法興寺)에 머물며 법을 펼치다가 616년(영양왕 27) 귀국하였다. 이들은 모두 ‘삼론학의 학장이며 『성실론(成實論)』에 통하였다.’고 전하고 있어 교학적 기반은 삼론학으로 보인다. 혜관(慧灌)은 중국에서 삼론을 집대성한 길장(吉藏)에게 직접 수학한 뒤 625년(영류왕 8) 도일하여 백제승 관륵(觀勒)에 이어 2대 승정(僧正)이 되었고, 삼론을 강하여 일본 삼론종의 시조로 숭앙되었다. 도등(道登) 또한 628년(영류왕 11) 중국으로 가서 길장에게 삼론을 배운 뒤 일본으로 건너가 공 사상을 전하였다.

이처럼 여러 삼론학승이 일본에 건너가 불교를 전하고 활동하였다면 고구려에서 불교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것도 삼론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왕명으로 일본에 파견되었고 그전에는 국내에서 학승으로 활동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귀국하지 않고 중국에서 활동하거나 일본에서 생을 마쳤던 것은 고구려 말기에 불교보다 도교를 더 숭상하였던 사정과도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삼론 외에 소승과 천태(天台) 사상도 연구되고 있었다. 지황(智晃)은 살 바다부(薩婆多部)에 능하였다고 전하는데31)『속고승전(續高僧傳)』 권8, 담천(曇遷). 살바다부는 인도의 소승 20부파 중 하나인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를 가리킨다. 설일체유부의 교학은 4세기 후반 전진에서 아비달마(阿毘達磨) 문헌이 전역된 이래 비담 학파(毘曇學派)를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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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파야(波若, 562∼613)는 진(陳)나라에 들어가 천태학 강의를 듣고 596년(영양왕 7)에는 천태산으로 천태 지의(天台智顗, 538∼597)를 찾아가 선법(禪法)을 구하였다. 지의로부터 수선(修禪)의 가르침을 받고 천태산에서 16년 동안 수행하였다고 한다. 파야가 지의를 찾아간 596년은 지의의 천태 사상의 중심이 되는 천태 3대부(『법화문구(法華文句)』·『법화현의(法華玄義)』·『마하지관(摩訶止觀)』)를 완성한 뒤였다.

천태종은 『법화경(法華經)』을 근본 경전으로 하는데 지의가 개창한 후 크게 성행하였다. 용수의 중관(中觀) 사상을 근본으로 하는 점은 삼론학과 같지만 강력한 실천적 관심(觀心)의 방향으로 전개한다는 데에 특징이 있다. 지의는 ‘반야 법화 일치’ 사상을 계승하여 교상(敎相)과 관심, 이론과 실천의 둘을 완벽하게 조직한 사상 체계를 확립하였다.

보덕(普德)은 『열반경』을 강하는 승려였는데 고구려 말에 도교가 성행하자 650년(보장왕 9)에 남쪽 완산주로 방장(方丈)을 옮겼다. 그는 본디 평양 성에서 『열반경』 40권을 설하였다고 하고 대보산(大寶山)에 영탑사(靈塔寺)를 세우고 머물렀다고 한다.32)『삼국유사』 권3, 흥법 보장봉로(寶藏奉老) 보덕이암(普德移庵) ; 탑상 고려영탑사(高麗靈塔寺).

중국에서 『열반경』은 동진의 법현(法顯)이 418년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을 번역하고 북량(北凉)의 담무참(曇無懺)이 421년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을 번역하며 성행하였다. 또 양나라에서 종래의 학설을 집대성한 『대반열반경집해(大般涅槃經集解)』가 편찬되고 열반학파가 형성되었으나 후일 삼론학과 천태학으로 흡수되었다.

보덕이 강의한 『열반경』은 40권이므로 북본(北本)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불교는 삼론학이 주가 되었는데 중국에서 삼론은 『열반경』의 여래장(如來藏) 사상을 수용하여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사상을 전개한 것이 특색이다. 보덕의 『열반경』 연구도 삼론에 입각해 『열반경』을 연구하고 강한 것으로 추측된다. 보덕에게는 11명의 고제(高弟)가 있어 법을 전하고 절을 세워 독자적 학계를 형성하였다. 신라의 원효(元曉)와 의상(義相)도 보덕에게 ‘열반(涅槃) 방등교(方等敎)를 전수받았다’고 전한다.

그런데 고구려 말에는 나라 사람들이 다투어 오두미교(五斗米敎)를 신봉하고,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적극적으로 도교를 수입하는 한편 유·불·도 삼교의 정립을 의도한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정책에 따라 도교를 존숭하였다. 이에 보덕은 이것이 ‘좌도로 하여금 정도에 짝하게 하여 국조(國祚)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 염려하여 여러 번 간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650년 완산주 고대산(孤大山)으로 방장을 옮겼다고 한다.

고구려에서 불교 공인 이후 불경의 전래와 교학 연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6세기 후반에는 당시 중국에서 널리 연구되고 있던 『십지론』, 『지지론』 등의 논서와 그 사상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학승들이 배출되었다. 지론·열반·천태·소승 등 다양한 불교학이 전해져 있었으나, 격의 불교와 공 사상에 대한 추구를 기반으로 삼론학 연구가 가장 활발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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